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정서랍 Feb 11. 2024

실전 글쓰기! - 칼럼, 논설문 예시

칼럼과 논설문 차이를 한눈에!

다들 즐거운 설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이번에 가져온 것은 직접 쓴 칼럼과 논설문입니다. 한번 읽어보면 둘이 무엇이 다른지 감이 잡힐 거에요.



칼럼 <우리는 왜 국뽕에 빠질까?>


‘한국의 행보에 미국과 프랑스가 감명 받고 일본이 경악하며 중국이 벌벌 떤다.’


유튜브에서 횡행하는 ‘국뽕(맹목적인 애국심) 채널’의 제목을 정리하면 이렇다. 국뽕 채널이란 편협하고 극단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유튜브 채널을 아우르는 용어다. 다른 버전으로는 ‘한국의 과학 기술에 미국이 무릎 꿇고 전 세계가 경악했다’가 있다. 이쯤이면 세계인들의 하루 일과에는 한국을 보고 경악하는 일도 포함돼 있는 듯하다. 해당 국뽕 채널들은 적게는 몇 십만, 많게는 수백 만 정도의 조회수를 보유하고 있다. ‘잘 팔린다’는 뜻이다. 영상을 시청해보면, 대다수가 거짓말과 왜곡만 늘어놓고 있는 ‘가짜뉴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국뽕 영상들이 인기를 얻을까? 왜 이런 가짜뉴스에 매혹될까? 이유는 ‘소속감과 성취의 부재’다.


원시인 때부터 우리는 집단에 소속돼 있을 때 안정감을 느꼈다. 이는 유전자 깊이 내재된 동물적 본능으로,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있을 때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가족, 연인, 친구를 넘어 회사, 조합, 정치집단 등 다양한 집단이 아직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은 국가에 주목한다. 일말의 노력 없이 태어나기만 해도 ‘국민’이라는 소속이 생기기 때문이다. 타 민족에 배타적인 국수주의자들은 국가 간 경쟁에서 본인이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국뽕 콘텐츠’를 찬양하게 된다. 진실 여부는 상관없다. 오로지 감정이 좋지 않았던 국가들이 경악하면 그만이고, 유럽이 무릎 꿇으면 더할 나위 없으니 말이다. 성취의 부재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N포세대. 경제활동인구에 접어든 현 청년들을 일컫는 용어다. 연애, 취업, 내 집 마련, 해외여행 등 많은 것을 포기하는 탓에 생겨난 별칭이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를 시기하고, SNS를 보며 허탈감을 느낀다. 어쩌면 청년 세대는 희망보단 절망에 더욱 친근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부모 세대의 도움 없이는 서울의 작은 집 한 채 구하기 힘들다. 성취의 부재를 겪는 이들이 국뽕으로 눈을 돌렸다. 칭찬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우러러보고 칭송하는 말에 뿌듯함을 느낀다. 공중파에서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먹고 “비빔밥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에 알 수 없는 고양감을 느낀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칭찬에 목마른 청년들이 단 물을 찾고 있다.


유튜브에서 한국을 논평하는 외국인들은 흥행보증수표다. 국뽕 채널들은 이를 활용해 직접 외국인들을 섭외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모두 아르바이트다. 돈을 주고 외국인들을 고용해 한국에 대해 좋은 말만 해달라고 하는 식이다.


어눌한 한국말로 일본보다 한국이 낫다고 말하면 수십만 조회수 쯤은 우습다. 불닭볶음면을 먹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래도 한국이 좋다고 말하면 돈벌이가 된다. 대한민국의 편리한 대중교통을 보고 눈이 돌아가면 게임 끝이다. 주로 서양인이 나오는 영상의 조회수가 높은 점으로 미뤄보아, 이들은 서양인들을 신격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당한 애국심은 기본 소양이라지만, 도를 지나쳤다.


여담이지만, 반대로 ‘일뽕’도 있다. 일뽕이란 일본을 맹목적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들은 일제강점기가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불러왔고, 일본의 문화가 자국의 문화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내면에도 열등감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이 소속된 환경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소속된 집단 자체를 깎아 내리는 선택을 한다.


아시아인이 열등해야 본인의 열등함이 숨겨지고, 대한민국이 모자라야 본인의 실패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소속 집단이 실패해야, 본인의 처지가 이해된다고 믿는다. 일종의 ‘정신승리’다. 그렇다면, 왜 하필 일본일까? 일본이 관심 끌기에 제격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프랑스를 칭송하는 것보다 일본을 찬양하는 편이 더 큰 반발을 끌어온다. 이에 스스로 깨어있는 존재라 착각하며 ‘자아도취’ 상태에 빠진다.


국뽕이든 일뽕이든,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열등감과 불만족이 뿌리가 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사랑하는 나라가 ‘무궁한 발전’을 하길 원한다면, ‘눈 가리고 아웅’은 답이 될 수 없다. 오로지 냉철한 이성과 객관적 지표를 활용한 문제제기, 개인의 진취적인 성장만이 답이다. 우리는 ‘국뽕 콘텐츠’를 찾아다니기 전에, 스스로의 정신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논설문 <반려동물 의무등록제 필요성>


 KB경영연구소가 2023년 6월에 발표한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국내 반려가구는 552만 가구, 인구로 따지면 1천262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5명 중 1명은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의미다. 그러나 농림축산검역본부 <2022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를 보면 2022년 연간 유기동물 발생 수는 총 11만3천440마리다. 즉, 1년에 한번씩 100명 중 1명은 반려동물을 유기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반려동물 등록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첫째, 반려동물 등록제는 선진국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다. 독일은 반려동물 등록제를 운영하며 이를 어길 시 5천 유로의 벌금을 부과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출국할 시 반려동물 여권 또한 발행해야 한다. 반려견을 기르는 반려인 대부분은 '훈데슬레(반려견 학교)'에 다니며 개가 문제견이 되지 않도록 한다. 독일 일부 주에서는 아예 동물 면허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론과 실기로 이뤄진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반려견을 입양할 수 있다. 매년 반려동물 세금도 내야 한다. 펫샵에서 '구매'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책임감을 심어주는 셈이다. 스웨덴에도 반려견 등록제가 있으며 '보호자가 지켜야 하는 생활 조항'이 존재한다. 생활조항은 반려견에 맞는 실내온도, 산책시간 심지어 공기 암모니아 수치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에 '동물 산책 도우미'라는 직업도 생겼다. 위 두 국가는 '반려문화 선진국'이라는 칭호를 얻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명성이 높다.

 둘째, 반려동물 등록제는 국내에서도 효과를 보이고 있다. 2014년 국내에 도입된 '동물등록제' 이후 2022년 반려동물 등록 건수는 300만 건이 넘었다. 2019년부터 유기견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인다는 것도 반려동물 등록제가 효과를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독일의 경우 반려동물을 유기하면 벌금 한화 3천300만 원을 물고 징역형 3년에 처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벌금 300만 원 부과가 전부다. 아직 반려동물 등록제가 '권고사안'인 탓에, 유기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의무등록제로 바뀐다면 분명 유기동물 개체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그저 샵에서 데려와 질리면 버리는 '장신구'가 아닌, 진정 ‘반려'할 수 있는 문화를 위해 반려동물 의무등록제가 필요하다.



두 글의 차이를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썼는데, 어떤가요? 느낌이 오나요? 말 그대로 칼럼은 쉽게, 논설문은 딱딱하게 느껴지죠?


오늘은 여기서 끝! 남은 연휴 행복하게 지내고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8화 실전 글쓰기! - 에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