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말 자연인 Jul 03. 2022

불화 3

결국 난리가 났다. 이웃 아주머니와 대판 싸운 것이다. 뭐 내가 일방적으로 말로 얻어맞았다.


사건의 발단은 축산과 담당자의 민원처리였다. 이웃 아주머니는 시골에서 개 좀 풀어놓을 수 있지 않느냐며 항의하다 담당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주의에 조심하겠다 했다. 담당자는 이제 괜찮을 것이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추가적인 갈등을 피하고 싶었던 아내에겐 비밀로 하고 진행한 민원처리였고, 이웃 아주머니가 기분은 좀 나쁘겠지만 쫓아와 해코지를 하지 않을 거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필 아내 지인 캠퍼를 초대해 슈필라움에서 동반 캠핑을 하고 있을 때였다. 먼저 도착한 지인 부부에게 나더러 그렇게 살지 말라며 시비를 걸어왔고 내가 오면 그때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고 사라졌다고 했다.


축산과에 민원을 넣으면서 개에게 물리지도 않았는데 물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는 오해와 네이버 카페에도 글을 올려 아주머니와 개를 조리돌림 한 것에 화가 난 듯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찾아가 차분히 이야기를 시도하려고 했다. 현관문을 연 아주머니는 빈정거리는 어투로 개가 무서운데 용케도 찾아왔다며 다다다다 쏘아붙이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말이 느리고 임기응변에 약한 내가 차분하게 대회를 시도하다 결국 언성이 높아졌고 개한테 물렸으니까 물렸다고 하지 소리를 질렀다. 왜 큰 개가 자꾸 앞으로 돌아다니냐고 악을 썼다. 크긴 뭐가 크냐며 더 큰 소리로 되돌아왔다. 더 이상 말이 안 통해 마음대로 하라고 하곤 뒤 돌아 나왔다. 꽤 넓은 공터에 주차 시비를 걸어와 신고하라며 삿대 짓을 했다.


조그마한 동네가 시끄러워졌고 조금 떨어진 곳에 사시는 할머니가 쫓아와 이웃 아주머니 역성을 들었다. 큰 개 두 마리가 작은 개를 쫓았던 사건을 두고 개들끼리 장난친 것을 오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삽시간에  보더콜리 성견 두 마리가 작은 개를 쫓아가 물에 빠뜨린 사건을 개들 장난이라고 했다. 아주머니 인식이 할머니에게 그대로 전이된 것이다. 그제야 아주머니가 나와 친구들 앞에서 개들이 날뛰고 있는데도 제지하지 않고 태연했던 이유가 설명됐다.


좀 이따 이웃 할아버지도 나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며 큰소리치고 사라졌다. 지인 부부와 꼬맹이 두 딸, 내 아들, 만삭의 아내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못 볼 꼴을 보인 것에 대해 모두에게 너무 미안하고 쪽팔렸다.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이웃 간 중재를 요청했지만 허사였다. 개가 산책할 때 우리가 잠시 피해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나는 이웃 아주머니에게 네이버 카페에 글을 올려 기분 나쁘게 한 건 죄송하다고 장문으로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개는 꼭 묶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로 출산 준비 때문에 슈필라움에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이장님도 이웃집에 개를 묶으라는 주의를 두세 차례 했고 이웃집도 조심하는 듯 보였다. 이따금씩 잘못 없는 내가 왜 사과했을까 후회했지만 우리의 안전만 담보되면 그만이었다.


한 번씩 아들과 둘이서 슈필라움에서 캠핑을 했고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평화로웠다. 마늘 수확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또 목줄을 착용하지 않은 개를 데리고 내 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달려가서 카메라를 들이밀고 녹화하려다 아들이 있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축산과에 찾아가서 1시간을 하소연했고 시시티브이 자료로 신고하면서 이웃 아주머니는 20만 원의 과태료를 통지받았다.


그 뒤로 이웃 아주머니는 우리가 없는 날에도 슈필라움 앞으로 얼씬거리지 않았다. 시시티브이가 찍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개를 풀어서 뒷 해변으로 산책하지만 이젠 나만 보이면 더러워서라도 조심하는 것 같다. 한 번 더 신고하면 30만 원이고 그다음은 50만 원이라서 그럴 것이다. 삼 년을 그곳에서 누구 하나 개 목줄 착용을 문제 삼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주말마다 아이 동반 가족들이 갯벌 체험을 하고 있어도 문제없다 생각하고 개를 풀어놓고 지냈다. 그게 그들이 귀촌한 이유였을 테고 우리는 단지 불청객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수년 전에 지인이 갯벌 체험하러 슈필라움 앞으로 놀러 갔다 큰 개 두 마리가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이웃에 미안한 감도 조금 있었지만 이젠 그냥 쌤통이다. 속 좁은 내가 싫지만 아주아주 많이 고소하다.


이번에도 김정운 교수를 소환했다. 최근 강연에서 그의 슈필라움에 태풍이 들이닥쳐 아끼는 책들이 말 그대로 수장되었고 전동차는 파도에 휩쓸려갔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 강연에서 썰 하나 풀 수 있지 않느냐는 사회자의 핀잔에 김정운 교수는 수긍했다. 삶은 기본적으로 어쩌다 한 번씩만 좋은 전체적인 시련인 것이다. Happily ever after는 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웃과 불편해졌지만 차리리 서로 모른 체하고 사는 것이 편해졌다. 여전히 가족과 함께 하는 바다가 좋다. 동시에 옆에 사람이 있는데도 큰 개를 풀어놓고 다니는 사람만 보면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몰상식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화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