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바로 나!
(격정적인 드라마의 한 장면)
"너답지 않아"
"나다운 게 도대체 뭔데!"
(잔잔한 음악이 깔리며...)
심리와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말 "나답게".
"나답게"라는 말에 거부반응이 든 건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다.
도대체 나답게라는 게 진짜 뭔데 그렇게들 이야기하는 걸까 그리고 나답게를 외치는 그들이 말하는 나답게는 정형화된 어떤 것이 있는 걸까 아니면 각자의 생각이 모두 다른 걸까?
모르겠는 것은 모르겠는 대로 남겨두기로 한다.
퇴사 이후 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를 한번 연구해볼까?" 하며 자리에 앉아서 마인드맵처럼 이름을 가운데 쓰고 펼쳐나가는 그런 체계적인 연구는 아니다. (다음 취업준비를 위해 하는 분도 있다고 들어보긴 했지만)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지내다 보니,
'아, 내가 이런 걸 싫어하는구나', '이런 것에 자신이 있었군?' 하며 정말 '어쩌다 나연구'다.
나는 체계 속의 비체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체의 개괄적인 흐름을 짜 놓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 세부를 디테일하게 계획하고 하면 아주 몹시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주일의 계획을 짜고, 그중 2~3일 정도를 넘지 않게 사람을 만나고, 한 주 동안 읽을 책과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를 대략 작성해놓는다. 그리고 밤에는 다음날 새벽에 할 일, 오전에 할 일, 오후에 할 일, 저녁에 할 일 정도의 큰 묶음으로만 계획하기.
한번은 계획하다가 아주 신이 갑자기 나서 시간대별로 촘촘히 수험생 시간표처럼 밥 먹는 시간까지 작성한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몹시 지쳤다. 어제의 나를 100번 원망하며 계획표 대실패! 그래서 아주 큰 덩어리 계획만 세워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같은 맥락인 것 같기도 한데, 책모임을 좋아하지만 운영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매주 혹은 매일 책을 일정량 읽어서 인증해야 하는 운영방식의 책모임은 내가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정날까지 책을 다 읽고 책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모여서 다함께 책을 읽고 직후 이야기 나누는 형태로 운영되는 것을 선호한다.
'어쩌다 나 연구'의 시간이 좋은 건 선택의 기준이 점점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호기심에 이것저것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데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시작해보니 나의 선호와 결이 달라서 민폐를 무릅쓰고 중도 탈락하거나, 결국에는 꾸역꾸역 끝까지 가지만 지침만이 남는 경험들을 했다.
시간과 돈은 한정적이고 이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기 위해서는 '어쩌다 나연구'가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정말 놀라운 발견인데,
(생각보다) 나는 너무 재밌다.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