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을 장독대에 묻으세요!
지난주 한 손님이 급매물을 사서 전세를 놓고 싶다며 찾아왔다.
가격 조정까지 도와드렸 건만,
'값이 떨어지면 어떡하죠?' '전세가 잘 맞춰질까요?' 쉴 새 없이 전전긍긍했다.
"그럼 그냥 하지 마세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투자를 적극 권하는 중개사는 아니다.
10년 전, 부산에 사는 60대 여성 B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파트 급매를 사서 월세를 놓고 싶다고 했다.
마침 저렴한 매물이 있어 소개했더니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매매 계약한 집은 임차인 전출 일자가 3달 후라 그 시기에 맞춰 월세를 놓기로 한 것인데,
계약 다음 날부터 B 씨가 매일 전화를 해댔다.
"월세 보러 온 사람 있나요? 안 나가면 어떡하죠? 이러다 공실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럴 때마다 '걱정 마라 아직 시간이 있다'고 안심시켜도 온 세상의 근심 걱정을 다 끌어안은 듯한 B 씨는 혼자 죽어갔다. 당시에는 전월세 매물이 귀할 때라 중개사 입장에서 세 맞추는 것에 대해 아예 걱정을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월세 안 맞춰지면 잔금이 부족하다고 한 걱정을 하길래 '만약 그런 일 생기면 잔금은 제가 맞춰 드릴테니 염려 놓으세요!' 라고까지 했다.
한번 뭔가에 꽂히면 아무리 이해를 시켜도 거기서 못 헤어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B 씨가 그랬다.안심시키면 그때뿐 날이 갈수록 죽어가는 목소리가 되더니, 일주일째 되는 날은 온 동네 중개사무소에 물건을 뿌렸다.
기간이 길다 보니 다른 중개사무소에서도 별로 신경을 안 썼던지, 열흘째 되는 날 전화해서
'혹시 세가 날짜에 맞춰지지 않으면 잔금을 꼭 대납해 준다고 약속해달라'고 했다.
나를 못 믿어서 온 동네방네 물건을 흩뿌린 사람을 어찌 믿고 대납을 약속하겠는가
"그건 아니죠! 월세 놓는 걸 저한테 전속으로 의뢰하시면 혹시 날짜가 안 맞춰졌을 때 우선 대납을 해드리고 월세 잔금 때 회수하면 되지만, 온 동네에 물건을 다 뿌려놓으셔서 어디서 계약할지 모르는 상황에 어떻게 대납하나요?"
매매 계약 시 딱 한번 얼굴을 봤을 뿐인 B 씨는 나의 거절이 밤잠을 설치게 했는지 다음날 다시 전화가 왔다.
"너무 걱정돼서 도저히 잠을 못 자겠어요. 그냥 본전치기라도 팔아주세요!"
하.... 너무나 시달리던 터라 정 그러신다면 팔아드린다 하고 당시 매입가보다 2000만 원을 더 올려 매수인을 붙였다. 워낙 급매물이다 보니 금액을 올려도 바로 손님이 붙은 것이다. 물론 정식으로 등기 치고 양도세 내고 넘기는 조건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더니 B 씨는 너무 고마워하면서 3일 후로 계약 시간을 잡았다.
그런데 또 다음날,
취득세 내고 양도세 내면 남는 게 얼마 안 되니 그냥 등기 안 치고 넘기게 해달라고 했다.
"저는 불법 중개, 미등기 전매는 안 합니다.
그리고 어떤 매도인이 자기 집을 2000만 원이나 더 받고 파는 매수인을 위해서 계약서를 다시 써주겠나요? 그냥 원칙대로 진행하셔야 합니다"
라고 했더니, 그다음 말이 가관이었다.
"그러면 제가 남는 게 별로 없으니 중개보수를 받지 마세요!"
계약한 지 보름 동안 혼자 죽네사네 하다 본전치기라도 넘겨 달랄 때는 언제고,
순이익이 천여만원밖에 안 되니 중개보수를 받지 말라고?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안됩니다!!"
3시간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여기저기 알아보니 OO시 부동산협회 간부라면서요?
부동산은 원래 찔리는 것도 많다는데 어디 얼마나 잘하고 있나 내가 신고 좀 해볼까요?
세금신고는 제대로 하시나? 높으신 분이 그러다가 망신당하면 어쩌시려고~
그러니 중개보수 받지 마세요~"
헐~~~~
중개업을 장기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의뢰인들은 수 틀리면 중개사를 잿밥 삼으려 한다는 것.
단순 변심이거나 혹은 중개사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걸로 협박 아닌 협박을 일삼는 게 다반사다.
언젠가는 세입자가 만기 전에 이사를 나간다 하여 새로운 세입자를 맞췄는데,
잔금 날이 2달 후로 잡혔다.
그런데 기존 세입자가 갑자기 잔금을 한 달 정도 앞당겨달라는 요구를 했다.
당시 나는 독감에 걸려 링거를 맞고 누워있는 상황이었던터라 중개보조원이 이사 올 사람한테 전달을 했더니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고 했단다.
그러나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들이닥쳐서 삿대질을 하며 난리를 쳤다.
요지는 중개사가 감히 날짜 당기는 것을 빨리빨리 연락 안 해주고 시간을 끈다 그런 식으로 일하면서 중개보수는 왜 받아먹냐...
하이라이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생긴 것도 이상하게 생겨놓고 일도 이상하게 하네?
그렇게 생겨먹었으니 일을 제대로 하겠어?"
헐..... 너무 황당해서 화도 안 났다. (그 손님은 중개사보다 5살쯤 많은 여성분이었다).
그리고 이사 나가는 날에 '이사 날짜 조정을 빨리 안 해줘서 중개보수를 다 줄 수 없다'며 우수리(?)를 빼고 주었다. 그냥 웃으면서 받았다.
아무튼 중개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협박이고 뭐고 연연하지 않는다. 그냥 법대로 원칙대로만 중개하면 그만이지 뭐.
그래서 B 씨에게도 단호히 선언했다.
"그러세요~ 여기저기 신고하시고 월세를 놓든 되팔든 다른 부동산 통해서 하세요.
저는 오늘부로 이 물건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도록 하겠습니다. "
했더니 바로 잘못했다고 수수료 다 줄 테니 계약 진행해 달라고 했다.
안 내켰지만 마음 다잡은 뒤 계약 진행해 주고 중개보수도 받았다.
고맙다며 손을 잡고 고개를 조아리는 B 씨에게 나는 기어코 말했다.
"앞으로 부동산이고 주식이고 절대 투자하지 마세요.
계약 다음 날부터 그리 안달복달하실 거면 앞으로 집값이 오르거나 내릴 때마다 병원 실려가시겠네요.
투자하실 성격 못되니 그냥 돈 생기면 장독대에 묻어두세요.
돈 버는 것보다 정신 건강이 더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나는 그분을 잊었는데 그분은 나를 못 잊었었나 보다. 1년 후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 중개사님 말대로 그 집 샀어야 했어요.
이제 중개사님 하라는 대로 할게요. 다시 집 사주세요!"
당연히 거절했다.
중개업을 오래 하면서 느끼는 건, 돈이 돈을 부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의 품성도 돈을 부른다.
저 사람 참 좋은 사람이네 복 받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들은 그 후 어디선가 만나도 역시 잘 살고 있더라.
꼭 좋은 물건에 투자를 해야만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좋은 마음, 여유 있고 배려하는 마음,
그 모든 것이 좋은 기운으로 돌아와 돈도 벌게 해 주고 잘 살게 만들어준다.
결국 좋은 투자의 요건은 복합적이며 '사람됨'으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