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라이온 킹이란 만화영화를 보셨나요? 저도 어렸을 적에 참 재밌게 봤었죠. 그런데 그 라이온 킹에 뒷이야기, 즉 속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본편만큼이나 반전이 있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그 재미에 흠뻑 빠져들 겁니다. 라이온 킹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나요? 사자 심바가 스카 삼촌을 밀어내고 다시 정글의 왕이 됐었죠. 속편은 바로 그 때부터 시작된답니다.
왕이 된 심바는 정글 곳곳을 직접 다니면서 둘러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카 삼촌이 지배하면서 황폐해진 정글을 어디서부터 고쳐야할지 알아보려했던 것입니다. 심바는 오랜 친구이자 아내인 날라에게 말했습니다. “날라, 그동안 삼촌으로 인해 정글이 얼마나 형편없어졌는지 살펴보고 올게.” 그러자 날라는 걱정 섞인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여보,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직접 보고 나면 실망할 거야.” 심바는 날라의 만류를 뿌리치고 정글 순시를 떠났답니다. 날라는 떠나는 심바의 뒷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정글을 둘러보던 심바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에 보지 못했던 화려한 고층 보금자리들이 들어서있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고층 보금자리들 주변에는 형편없는 지저분한 보금자리들이 있었습니다. 고층 보금자리들은 힘센 동물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지저분한 보금자리들에는 힘이 약한 동물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심바가 지저분한 보금자리에서 풀이 죽은 채 지내는 톰슨가젤에게 물었습니다. “톰슨가젤, 여기에서 지내기 힘들지 않니? 왜 이렇게 사는 곳이 수준 차이가 나는 거야?” 톰슨가젤이 답했습니다. “심바, 이게 다 네가 돌아오기 전에 스카와 하이에나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야. 스카와 하이에나들은 힘센 동물들이 더 좋은 보금자리를 더 많이 차지할 수 있게 해줬어. 너희 아버지 무파사 왕이 있었을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스카와 하이에나들이 앞장서서 땅과 보금자리를 차지하고 약한 동물들을 몰아내면서 세상이 험악해졌어.” 옆에 있던 수달이 말했습니다. “이제 여기 정글에서는 스카와 하이에나들처럼 부동산 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거야. 모두들 보금자리를 최대한 확보한 다음에 그걸 다른 동물들한테 임대 주는 집장사를 거지. 요즘 새끼 동물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다들 두 개 중에 하나야. 유튜버 아니면 보금자리 주인이야.” 심바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실제로 둘러본 정글은 과거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보금자리를 가진 동물들은 임대료를 받아 챙기면서 떵떵거리면서 편하게 지내는 반면, 보금자리가 없어 전세나 월세로 지내는 동물들은 언제나 쪼들리는 형편에 고통스럽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보금자리 없는 동물들은 언젠가 자신도 보금자리를 여럿 가진 주인이 돼서 전세나 월세를 받으면서 편하게 살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다스리던 때는 동물들이 이러지 않았는데. 이제 내가 왕이 됐으니 다시 옛날로 돌려놓겠어. 보금자리를 독점하지 않고 골고루 나누고 평화롭게 사는 예전의 정글을 만들 거야.’
심바는 어전 회의를 열었습니다. 심바는 동물들이 부동산 재테크에 목숨 거는 것을 금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정글 곳곳에 공공임대 보금자리를 짓기로 했습니다. 또 보금자리가 많은 동물들이 더 많은 보금자리를 쓸어 모으지 못하도록 세금을 걷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코뿔새 자주가 말했습니다. “심바, 동물들의 욕망을 거스르면 안 된다네. 동물들은 본래부터 자기 보금자리를 늘리려는 욕망이 있는데 그걸 억지로 누르려다간 큰 화를 당하게 될 거야.” 심바가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화라니요? 내가 무슨 화를 당한다는 말인가요?” 자주가 말을 이어갔습니다. “심바, 나는 자네 아버지를 모셨던 공신이야. 무파사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아는가? 자네는 스카 삼촌에게 속아서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야기에는 숨겨진 뒷이야기가 있다네.” 자주는 무파사가 죽게 된 사연을 조용한 목소리로 심바에게 알려줬습니다.
무파사의 죽음은 계획된 암살이었습니다. 사실 무파사는 죽기 전에 정글 부동산 정책을 실시하려 했습니다. 동물들 사이에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보금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통을 겪는 힘 약한 동물들이 점점 늘어나자 무파사는 강력한 부동산 정책을 통해 동물들이 보금자리권을 누릴 수 있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보금자리를 독점하고 있던 힘센 동물들과 하이에나 같은 교활한 동물들이 무파사의 동생이자 경쟁자인 스카를 앞세워서 모반을 일으켰습니다. 무파사가 들소들이 무리지어 달리는 계곡으로 유인되기까지 하이에나뿐만 아니라 다른 힘센 동물들도 계략을 꾸몄던 것입니다.
심바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이들이 저 탐욕스런 동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더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바는 자신이 준비했던 대로 부동산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러자 곳곳에서 동물들이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연일 동물들이 무리를 이뤄 항의 시위를 했습니다. 동물 여론조사에서 심바의 지지율은 계속 떨어졌습니다. 심바는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보금자리가 없는 힘 약한 동물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는데 정작 그 힘 약한 동물들도 자신을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바가 간과한 점은 이미 그들도 부동산 재테크의 노예가 돼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상관없이 어떻게든 보금자리를 많이 마련해서 전세나 월세를 타먹으려는 동물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그런 고통을 겪었으면서 그 고통을 고스란히 더 약한 동물들에게 돌려주려는 모습을 보고 심바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심바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자기 최측근의 행태였습니다. 건넛마을 숲에서 자신과 함께 오랜 세월을 보낸 미어캣 티몬과 멧돼지 품바 역시 고층 보금자리를 여럿 갖고 있으면서 세를 받아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몬이 말했습니다. “심바,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노후는 준비해야 할 것 아닌가.” 티몬은 심바의 서슬에 놀라 보금자리 두 개 중 하나를 팔았습니다. 하지만 두 개 중 똘똘한 한 채인 강 아래 보금자리는 남겨뒀습니다. 심바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품바의 배신이었습니다. 품바는 고층 보금자리를 버릴 수 없다면서 티몬과 언쟁을 하고는 관직을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부동산 정책으로 여론이 계속 악화되자 심바의 입지는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여론조사 지지율은 갈수록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정권을 잃고 그늘진 곳에서 숨어 지내던 하이에나 무리가 이때다 싶었던 듯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글에 있던 동물들도 스카와 하이에나 무리들이 지배했던 시기가 오히려 더 살기 편했다면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심바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30% 선 아래로 떨어지던 그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삼촌 스카가 정글에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스카는 하이에나 무리를 이끌고 서서히 심바와 사자 무리들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스카가 말했습니다. “심바, 이런 때가 오기를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한 번도 포기하진 않았지. 동물들은 원래 탐욕스럽거든. 그 탐욕스러움을 감출 수는 있을지 몰라도 아예 없애버리지는 못해. 심바 너처럼 동물들에게 착하게 살 것을 강요하면 저들은 견디지 못하게 돼. 특히나 네 최측근들의 탐욕을 허용하면서 자신들에게만 청렴함을 강요한다면 억울해서라도 더 견디지 못하지.” 스카가 교활하게 웃었습니다. 스카가 신호를 보내자 하이에나들이 군침을 흘리며 심바와 사자들을 포위했습니다. 그 뒤로는 힘센 맹수들이 2중, 3중의 포위망을 만들었습니다. 심바는 다급한 마음에 다른 동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힘 약한 초식동물들은 쭈뼛쭈뼛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부동산 정책을 마련한 심바가 위험에 처했는데도 초식동물들은 맹수들이 무서워 떨고만 있었습니다. 맹수들이 전월세 임대료를 올릴까봐 걱정돼 눈치만 봤습니다. 스카가 재집권하면 혹여나 자신도 보금자리 주인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애써 외면하는 동물들도 많았습니다. 자주도, 티몬도, 품바도 심바의 친구이기 전에 다(多)보금자리자였습니다.
싸움은 싱겁게 끝났습니다.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심바는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습니다. 심바는 어린 시절 자신을 품어줬던 건넛마을 숲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겼습니다. 티몬, 품바와 함께 지내면서 다른 동물들과 벌레를 함께 나눠먹으면서도 아무 걱정 없이, 욕심 없이 지내던 그 숲 말입니다. 고층 보금자리 없어도 걱정 없던 그 시절, 하늘을 장막 삼고 땅을 자리 삼아 지내도 아무 상관없던 그 시절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심바는 눈물을 흘리며 어렸을 적 지겹도록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