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알레르기 같습니다.”
의사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 질병도 있어요?”
대답하는 윤희의 목소리에 기운이 너무 없다.
“정신적인 충격이나 스트레스 강도가 세면 특정 행동이나 상황에 심하게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요.”
병원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윤희는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하고 아팠다. 음식을 잘 삼키지 못했다. 이런 증상이 지속되니 씹기만 해도 울렁거리고 메스껍고 배가 꼬였다. 간신히 물이나 커피 주스로 연명했다. 그녀는 점점 앙상하고 예민해졌다.
출간 전에 예약 부수로만 판매 탑 순위에 오를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유명 작가 윤희.
그러나 지난 3년간 그녀는 글 한 줄을 못 썼다.
그녀가 유명해지고 성공 가도를 달리는 동안 고등학생이 된 아들 동혁은 점점 반항적이고 거칠어졌다. 술과 담배에 손을 대는 일이 잦았다. 학교 폭력에 엮이는 일도 많았다. 상담 치료도 소용없었고 윤희와 남편은 힘들고 지쳤다.
사고가 나던 날. 남편은 출장 가고 동혁은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온 동혁의 입에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났다. 동혁은 수영하러 바다에 가겠다고 했다. 지독한 술 냄새, 반쯤 풀린 눈. 윤희는 현관문을 가로막았다. 나가려는 아들을 강력하게 저지했다. 급기야 몸싸움과 욕설이 난무하는 격한 말싸움이 이어졌다. 경찰을 부르려고 하자 동혁이 손에 쥐고 있던 윤희의 전화기를 뺏어서 현관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그때 윤희는 갑자기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 다 맘대로 해라.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윤희는 아들을 놓아줬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해변으로 나간 동혁은 그날 바다에서 죽었다.
‘그 아이가 나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지만 죽으라고 방치했어.’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이 그녀를 병들게 했다. 동혁이 죽은 지 3년. 윤희는 아직 잘 씹지도 먹지도 못한다. 글도 쓰지 못한다.
청소해 주는 사람만 있으면 따로 부엌일 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걱정과 성화에 못 이겨 미란을 들이긴 했다. 그녀는 상냥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러나 말이 많았다. 그런 미란이 서울 사는 딸에게 다녀와야 한다며 친구를 대신 보낸다고 했다. 귀찮았지만 대꾸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미란이 대신 왔어요.”
조용하고 차분한 여자다.
윤희는 뭘 먹겠냐는 질문이 참 귀찮았다. 사실 커피만 있으면 그만이다. 커피를 부탁했다.
그런데 커피 내리는 솜씨가 기가 막혔다. 최고급 원두로 길거리표 싸구려 커피를 내려오는 미란. 윤희는 미란 때문에 일부러 에스프레소 머신을 샀다. 미란의 커피보단 기계가 내린 커피가 훨씬 나았다. 그런데 미란에게 이런 친구가 있었다니. 윤희는 오랜만에 흡족했다. 바닷가 산책도 한참 했다.
집에 돌아오니 고소한 참기름에 섞인 미역국 냄새가 났다. 괜찮았다. 그리고 깨죽을 준비했다는 여자.
순간 윤희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엄마’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음식. 예민하고 잔병치레가 심했던 윤희를 위해 엄마가 끓여줬던 깨죽. 윤희에게 엄마표 깨죽은 만병통치약이었다. 세상 떠난 엄마가 그리웠다. 미역국 냄새가 더 강해진다. 신기하게 식욕이 생겼다.
죽을 한 수저 입에 넣자마자 따뜻한 온기와 부드러움이 혀와 입천장을 가득 채웠다. 몇 번 오물거리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목구멍으로 쓱 넘어갔다. 미역국도 윤희가 좋아하는 맛이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고 들기름과 참기름이 적절하게 들어간 고소 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게다가 유자청을 올린 두부구이는 상큼하고 달콤해 더욱 식욕을 돋웠다.
윤은 3년 만에 음식을 씹고 삼켰다. 목도 아프지 않았다. 그 날밤 잠도 푹 잤다.
다음 날 윤희는 은근히 여자를 기다렸다. 오늘은 무슨 음식을 해 줄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날씨마저 맑고 쾌청하다. 앞마당에 나와 햇볕을 쬈다. 온몸에 들러붙어 있던 무기력이 가시는 느낌이다.
그녀가 내려온 오늘의 커피. 화창한 날엔 진한 커피보다는 부드럽고 향이 좋은 커피가 제격이다. 여자는 윤희의 바람대로 딱 그렇게 커피를 내려왔다. 윤희는 커피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했다. 불면증 때문에 자제하고 있는데 오늘 커피를 내리다 오래간만에 한 잔 마셨다고 했다. 새삼 커피 마시는 즐거움을 느꼈다는 말에 윤희마저 기분이 좋아졌다.
여자는 점심으로 단호박죽과 배추된장국을 내왔다. 겨울이 다가오면 배추가 맛있어진다며 엄마가 자주 끓여주던 배추된장국. 딱 그 맛이었다. 진하지 않은 된장과 배추의 단맛이 잘 어우러진 맑은 배추된장국. 윤희는 국 한 그릇을 더 먹었다.
이 여자는 어디에 있다 온 걸까? 친정엄마가 날 보러 왔을까? 이 안도감은 뭘까? 온몸으로 온기와 생기가 채워지는 기분이다.
점심을 먹고 나자, 윤희는 갑자기 토실토실한 알밤과 은행이 잔뜩 들어간 찰밥, 부드럽고 눅진한 들깻가루 국물 속에 쫄깃쫄깃한 버섯이 씹히는 들깨 버섯탕을 먹고 싶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다니 윤희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해서 기뻤다. 돌아가는 여자에게 찰밥과 버섯 들깨탕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윤희의 말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오늘은 커피 생각이 나지 않는다. 뭔가 달짝지근한 것을 먹고 싶었다. 윤희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여자가 왔다.
윤희는 갑자기 시어머니가 준 유자청이 떠올랐다. 오늘도 그녀는 오자마자 윤희가 원하는 걸 만들어 줬다.
‘맛있다.’
따뜻한 물에 타온 유자청을 마시자, 기운이 났다. 멀리까지 산책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해변을 걸었다. 천천히 걸었다. 조금 빠르게 걸었다. 그러다 달렸다. 마구 내 달렸다. 몸이 가벼웠다. 심장이 터질 듯 숨이 차다. 가슴이 뻥 뚫린다.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오니 찰밥과 들깨 버섯탕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의 밥상은 매번 소박하지만 정갈하다. 귀하게 대접받는 느낌이다. 그녀가 차려주는 마지막 밥상. 함께 먹자고 했다.
찰지지만 고슬고슬한 찰밥. 온기를 품은 버섯 들깨탕,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매실과 울 외 장아찌.
‘맛있다.’
메말랐던 몸이 생기를 찾는다. 배 속이 따듯하고 세포들이 살아난다. 목에 걸려있던 묵직한 덩어리가 녹아 없어졌다. 음식을 삼켜도 더는 걸리거나 아프지 않다. 어릴 적 자신이 아프면 어서 나으라고 머리와 배, 등을 어루만져 주던 엄마의 손길이 생각났다. 가슴이 환해지고 입가엔 웃음이 번졌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이 이렇게 좋나? 윤희는 앞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여자가 정겨웠다. 마음조차 충만하다.
여자가 사흘간의 일을 마치고 돌아간다. 윤희는 무척 섭섭했다. 그녀가 처음 만들어 준 들깨죽을 잊지 못할 거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충분치가 않다.
음식 만드는 즐거움을 찾게 되어 기쁘다며 대려 자신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여자. 그녀는 자기가 만든 음식처럼 반듯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녀가 돌아갔다. 슬프지는 않다. 이젠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시내에 엄마의 밥상이라는 식당을 개업했다고 했다. 손님이 원하는 건 뭐든 만들어 준다며 밥 먹으러 오라고도 했다. 윤희는 참 좋았다.
윤희의 엄마는 딸을 위해 간절히 신께 부탁했죠. 부디 도와달라고. 그 덕에 희정이 윤희에 가서 치유의 음식을 만들어 준 거죠. 여러분은 누군가의 기도 덕에 기적을 경험하기도 한답니다. -미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