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부엌 장 가장 위 칸에서 자연산 돌 미역을 꺼내 찬물에 불렸다. 미역이 부드러워지는 동안 밥을 했다. 미리 삶아둔 팥을 쌀 위에 얹혀 밥을 했다.
압력에 밥솥 추가 달그락거리는 동안 물을 먹고 부들부들 해진 미역을 참기름과 조선간장을 넣고 달달 볶았다가 불려놓은 마른 표고버섯과 물을 넣고 한소끔 끓였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미역의 바다 냄새가 어우러져 집안이 미역국 냄새로 가득하다.
살이 통통한 참 가자미 2마리를 밀가루옷을 살짝 입혀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엄마 미역국 더. 한 그릇으론 성에 안 차는 거 알면서.”
준호는 미역국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엄마에게 일부러 투정 부리듯 말했다.
“엄마 밤에는 깨죽 좀. 학원 끝나면 허기져. 애들은 편의점 컵라면하고 삼각김밥이 물리지도 않나. 나는 밤에 허기지면 엄마 깨죽 생각이 너무 나는데. 엄마 손맛에 너무 길들여졌어. 나중에 장가도 못 가면 어쩌지?”
“장가를 왜 못가? 이렇게 잘생긴 남자를 여자들이 가만두려고?‘
희정은 미역국 한 그릇을 더 주며 준호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준호는 아침밥을 맛있게 먹고 난 후 가방을 둘러메고 나갔다. 희정은 주방 창으로,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경쾌하게 내달리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혼자 보긴 너무 아까워 자랑이라고 하고 싶었다. 핸드폰을 꺼내 눈부시게 아름다운 16살 가을날의 아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저녁에 들깨죽을 끓이고 있던 희정은 준호가 교통사고로 병원 이송 중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3년 전 오늘이다. 희정은 그날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들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핸드폰에 저장된 아들의 마지막 모습. 희정은 식탁 의자에 앉아 사진 속 아들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눈물 때문에 아들의 모습이 흐릿하다.
“아들 너무 보고 싶구나.”
해변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이 층집. 희정은 입구를 돌아 뒷마당으로 이어진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금요일까지 사흘 동안 희정이 친구 미란 대신 일을 봐주기로 한 곳.
“일거리도 별로 없어. 일주일에 두 번씩 욕실이랑 집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와. 주인 여자 먹을 거 좀 신경 써주면 돼. 빨랫거리 있으면 세탁기에 돌리고. 아참. 커피에 굉장히 민감해. 조금만 식어도 타박 너무 뜨거워도 뭐라 해. 참 별나지? 음식은 통 먹질 않으면서 커피에 집착해. 유명 작가래. 주말이면 남편이 오는데 부인이 음식 씹는 알레르기가 있다나? 뭐라도 먹을 수 있도록 챙겨주라고 매일 전화로 신신당부해. 뭐 먹을지 꼭 물어봐.”
서울에 있는 딸을 보러 간다며 미란이 주인 여자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줬다.
거실은 전체가 통유리 창이다. 확 트인 시야로 바다가 보인다. 넓고 환하다. 거실에는 커다란 소파만 덜렁 있다.
“안녕하세요? 미란이 대신 왔어요. 아침 식사 준비할까요?”
“아뇨 커피 주세요.”
주인 여자는 깡마르고 창백하고 목소리마저 굉장히 저음이다.
주방은 넓고 깔끔했다. 희정은 커피를 찾았다. 싱크대 한쪽으로 에스프레소 추출기, 각종 핸드 드립 용품, 산지별 최고급 원두가 잘 갖춰진 커피 바가 있다. 커피에 민감하다는 미란의 말이 단박에 이해됐다.
희정은 어떤 원두를 골라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에티오피아 시다모를 선택했다. 오전에는 묵직하면서 상쾌한 맛이 어울린다. 원두의 향이 무척 신선했다. 커피는 알맞게 한 잔 반 정도 내려졌다. 희정은 에스프레소 잔으로 맛을 봤다. 향도 온도도 모두 만족스럽다. 커피 입맛이 까다롭다는 주인 여자를 위해 뜨거운 물로 미리 데워 둔 커피잔에 적당히 따뜻한 커피를 따랐다.
희정은 커피광이었다. 밥보다 커피를 더 좋아했었다. 그러나 아들을 잃고 불면증을 겪으며 의사의 권유로 커피 끓었다. 어쩌다 커피가 무척 그리울 때가 있었다. 오늘 오랜만에 마신 에스프레소 컵 한잔의 커피. 희정은 오랜만에 작은 기쁨을 느꼈다.
거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바깥을 바라보던 주인 여자는 희정이 다가가자 정신이 돌아온 듯했다.
“향이 좋네요. 머신 사용하지 않았나 보네요?”
“다시 내려올까요?”
“아뇨. 그냥 주세요.”
주인 여자는 표정 없이 커피잔을 입에 가져가면서 희정에게 주었던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세탁실의 바구니에는 수건 몇 개가 있었다. 세탁기를 돌리고 주방으로 나온 희정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를 보면 주인의 취향과 입 맛을 알 수 있다. 이 집 냉장고는 아내를 위해 이것저것 잔뜩 채워둔 식재료가 남편의 걱정거리 같았다. 값비싼 제철 재료들이 다양하게 있지만 정작 어떤 음식을 만들지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어 보이는 그런 조합이었다.
“산책 좀 다녀올게요.”
도톰한 스웨터를 걸친 주인 여자가 주방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점심은 뭘 준비할까요?”
희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부드러운 걸로 아무거나요. 죽이면 좋겠어요. 이따 돌아오면 아까 마셨던 원두로 커피 한 잔 내려주세요.”
주인 여자가 커피에 만족한 것 같아 희정은 기분이 안심했다.
냉장고 구석에서 들깻가루와 유자청을 발견했다. 값비싼 식자재로 꽉 채워진 냉장고에 어울리지 않는 몰골이다. 라벨이 벗겨지지도 않은 재사용된 병 안에 꽉꽉 눌러 담긴 들깻가루와 유자청. 희정의 마음에 쏙 드는 재료다.
희정은 들깨죽은 만들었다. 반찬으로 두부를 올리브기름으로 살짝 구운 후, 유자청에 간장을 조금 넣어 만든 소소를 뿌렸다. 마른 표고버섯으로 육수 내 들기름과 참기름을 섞어 미역국을 끓였다. 주인 여자는 12시가 다 돼 들어왔다. 나갈 때보다는 생기가 돌았다.
“들깨죽을 준비했어요. 괜찮으세요?”
여자가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희정은 ’ 어쩌지 “ 내심 긴장이 됐다.
”어릴 적에 엄마가 자주 해줬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주세요. “
주인 여자는 희정이 차려준 점심상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우는 걸까? 웃는 걸까? 하지만 걱정과 달리 여자는 천천히 긴 시간 앉아 희정이 만든 음식을 다 먹었다.
”오랜만에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
예의 바르고 정중한 말투다. 뜻밖의 긍정적인 반응에 희정은 기뻤다.
희정은 솜씨 좋은 요리사였다. 그녀가 친구랑 운영하던 시내의 작은 밥집은 늘 손님이 많았다. 희정은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하고 기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떠난 후 삶의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요리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그런 희정이 이런 식으로 남을 위해 요리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들깨죽과 미역국 남은 건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저녁에 드시고 싶으면 전자레인지에 2분만 데워 드세요. 내일 봬요. “
희정은 2시가 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운전하면서 희정은 내내 생각했다.
주인 여자 입맛이 준호가 너무 닮았다고. 깨죽과 고기 넣지 않고 끓인 미역국. 게다가 유자청을 올린 두부구이까지. 모두 생전에 준호가 잘 먹던 음식이다. 신기했다. 표현은 안 했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에 만족해하는 여자를 보며 희정은 요리에 대한 의욕이 일었다.
희정은 몇 년 전에 담가뒀던 묵은 된장을 조그만 유리병에 담았다. 어제저녁밥 이웃집 여자가 주고 간 배추를 깨끗하게 씻어서 지퍼백에 넣었다. 오늘은 된장을 묽게 풀어 배추된장국을 끓일 참이다. 가을이면 준호에게 자주 해줬던 음식이다.
어제 그 집 냉장고에서 진공 포장된 조각 단호박을 봤던 기억이 났다. 단호박 죽을 끓이면 되겠다 싶었다. 배추된장국과 궁합도 좋다. 그러고 보니 아들 준호도 단박죽을 참 좋아했었다. 희정은 아들 생각나 잠시 울적했지만 주인 여자 맛있게 먹일 생각에 묘하게 신이 나기도 했다.
주차하고 보니 주인 여자가 마당에 나와 있다. 가을볕이 화창한 날이다. 희정은 가볍게 눈인사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세탁할 빨랫거리는 없었다. 희정은 우선 커피를 내렸다. 오늘처럼 햇살이 따뜻하고 맑은 날에는 묵직한 커피보다는 부드럽고 향이 좋은 원두가 어울린다. 희정은 예가체프를 내려 앞마당의 벤치에 앉아 볕을 쬐고 있는 여자에게 가져다줬다.
”커피 좋아하시죠? “
주인 여자가 살짝 웃으며 물었다.
”네 커피광이었죠. 지금은 불면증 때문에 자제하고 있어요. “
”어쩐지 커피 내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감사해요. “
‘오늘 점심으로 단호박죽을 끓일까, 하는데요….”
“네.”
주인 여자의 표정이 어제보다 밝았다.
여자는 산책하러 나가지 않았다. 대신에, 마당에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한참을 어슬렁대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점심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시간에 맞춰 나왔다. 희정은 여자가 자다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주인 여자는 오늘도 희정이 차려준 점심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맑게 끓인 배추된장국이 입에 맞는지 더 달라고 했다. 희정은 주인 여자가 자신이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수록 기운이 났다. 이상했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데 주인 여자가 희정을 불렀다.
“여사님 내일 혹시 은행이랑 밤 많이 넣은 찰밥이랑 버섯 들어간 들깨탕 만들어 줄 수 있어요?”
“그럼요. 마침 냉장고에 재료도 다 있어요. 내일 해 드릴게요.”
희정은 먹고 싶은 음식을 해달라는 그 말이 너무 반가웠다. 아들이 죽은 후 자신에게 밥을 해달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하던 식당마저 정리하고 나서 요리란 걸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대충 아무거나 죽지 않고 살 만큼 먹고 지낸 세월이었다. 져 말라깽이 주인 여자가 오늘따라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희정은 기분이 좋았다.
해변 이층 집에 오는 마지막 날.
거실에 앉아 있던 주인 여자가 희정을 맞이했다.
“저 오늘은 커피 대신 유자청 남았으면 그걸로 뜨거운 차 좀 해주세요.”
“네.”
희정은 집에서 미리 불려 온 찹쌀을 꺼낸 후 유자청을 만들어 여자에게 가져다줬다.
“냉장고의 유자청이랑 들깻가루가 있었다는 사실을 여사님 오고 알았어요. 시어머니가 해서 보내 주신 귀한 건데 이제야 맛을 보내요.”
희정은 집에서 미리 불려 온 찹쌀에 멥쌀을 섞어 주인 여자가 원하던 대로 밤과 은행을 듬뿍 넣고 밥을 안쳤다. 찰밥은 멥쌀과의 적당한 비율이 중요하다. 적당히 찰지고 고슬고슬한 찹쌀과 멥쌀의 비율은 7대 3.
밥이 익는 동안 마른 표고버섯과 다시마로 버섯 들깨탕 끓일 육수를 만들었다. 얄팍하게 썰어 놓은 무와 손질한 버섯을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물에 풀은 들깻가루를 넣었다. 마지막으로 조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했다. 고소하고 담백하니 희정의 입에도 만족스럽다.
희정은 냉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매실장아찌와 울 외 장아찌를 꺼내 들기름과 깨소금만 조금 넣고 머물러 점심상을 완성했다.
“식사하세요.”
산책을 다녀온 주인 여자가 식탁에 앉았다.
윤기 나는 찰밥 위로 탐스러운 밤과 노란 은행이 촘촘히 박혀있다. 고소한 들깨 버섯탕과 정갈하게 담긴 장아찌. 주인 여자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희정을 쳐다봤다.
“같이 먹어요. 챙겨서 오세요.”
희정과 주인 여자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겸상했다,
주인 여자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음식을 씹었다. 아주 흡족한 표정이다. 희정도 맛있게 먹었다.
“그동안 음식을 통 못 먹었어요. 여사님이 해준 깨죽 덕에 입맛이 돌아왔어요. 그날 이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다행이에요. 영영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릴 줄 알았거든요. 신 여사님 안 오실 때면 가끔 음식 좀 해주세요.”
주인 여자는 돌아가는 희정에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저도 너무 감사합니다. 음식 하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 한동안 의욕이 없었어요.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사모님 덕에 요리하는 재미를 되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드시고 싶은 게 생각나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와서 해 드릴게요. ”
희정이 밝게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희정은 아들을 떠올렸다. 사무친 그리움 뒤로 작은 위안과 평화가 희정을 감쌌다.
바닷가 이 층집주인 여자에게 전화가 왔다. 새 책을 출간했으니 시내에서 하는 북콘서트에 꼭 오라고 했다. 희정은 그녀가 유명 작가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던 자신이 웃겼다. 축하의 의미로 맛있는 걸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다.
세상을 떠난 영혼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랑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준호는 자신을 잊지 못하는 엄마가 가슴이 아파 빛이 존재가 되길 망설였어요. 그리고 엄마를 위해 신께 간절히 신께 기도했어요. 세상을 떠난 존재들도 이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행복과 안위를 축복하죠. 준호의 간절한 바람과 기도를 들어주려고 내가 희정과 윤희를 만나게 해 줬죠. 이제 준호는 안심하고 빛의 존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천사들은 더 많은 인간이 빛이 존재가 되길 희망합니다. -미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