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욱, 신과 나눈 대화

by Sabina

“100미터 앞에서 좌회전하세요.”


약속 장소인 동천 성당까지 20킬로 남았다. 1시까지 가려면 좀 빠듯하다. 서울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길이 뚫렸다. 승욱은 가속 페달을 밟았다. 수원 요금소를 나와 목적지로 가는 길은 1차선이다. 차는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런데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앞에 가는 빨간색 소형차가 유난히 천천히 가고 있다.


‘아주 기어가네. 기어가! 이 길을 혼자 전세 냈냐? “


승욱이 거칠게 한 소리 뱉었다. 약속 시간이 임박해지니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가라고 후미에 바짝 붙었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반대편 차로로 작은 화물차가 오고 있다. 추월도 여의찮다.


”시발! 빨리 좀 가라고! “


승욱이 짧게 클랙슨을 울렸다. 앞 차의 창문이 열리고 운전자가 주먹을 날린다.


”저게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


승욱은 클랙슨을 길게 더 세게 울렸다. 있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아 앞차를 들이박아 버리고 싶었다.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집이다. 승욱이 멈칫했다.


”아빠 어디야? “


”유나야 어디 긴. 아빠 일하지. “

”아빠 보고 싶어. “


”아이고 오늘 아빠가 바빠서 유나 얼굴도 못 보고 나왔구나! “


”응 그래서 유나가 전화했어. 유나가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나. “


”아 그랬구나! 아빠도 우리 유나 엄청나게 보고 싶지! “


”이따가 일찍 와. “


”아빠가 일 끝내고 우리 유나 보러 빨리 달려갈게. “


”응 아빠 사랑해’“


”아빠도 우리 유나 사랑해! “


혀 짧은 소리를 내며 통화를 마친 승욱. 치밀어 오르던 화가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그 사이 앞차는 저만치 멀리 달아나 버렸다.



일 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아파트 단지와 넓게 펼쳐진 논과 밭. 성당은 농사를 짓는 농가가 모여 있는 마을의 초입에 있었다. 아담하다. 성당 주변에는 전원주택도 제법 있었다.


"어서 오세요."


미카엘 신부가 활짝 웃으며 승욱을 맞이했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얼굴이다.


”김 교수님 연락받으셨죠? 최승욱이라고 합니다. “


”네 얼마 전에 기자님 기사 아주 흥미롭게 봤습니다. “


”제 기사를 보셨다고요? “


”그럼요. ‘성과 속, 종교의 두 얼굴’이라는 특집 기사였죠? “


”하하 제가 그 기사 쓰고 회사 관뒀습니다. “


”저런. 일단 좀 앉으시죠. “


신부는 자리를 권하고 손수 차와 다과를 내왔다.

”그런 훌륭한 기사를 쓰고 왜 퇴사하셨는지 궁금하군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


”신부님 그런 기사 종교인들은 다 싫어해요. 결국 종교 단체도 세금 내라. 돈 좀 그만 밝혀라, 종교가 돈벌이 수단이야? 뭐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기사 나가고 여러 곳에서 고소 고발당했어요. 신도들이 회사 앞에서 자꾸 시위하니까 회사도 점점 부담스러워하고. 뭐 취재 잘해도 쓰고 싶은 대로 쓰지도 못하는 것도 답답하고. 신세 한탄이 길었습니다. “


”그렇군요. 저는 교회도 절도 성당도 세금 내고 수입과 지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기사 내용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참 변화가 힘들죠.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절 찾아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교수님께는 기자님이 취재차 한 번 만나길 바란다고만 들어서요. “


승욱은 일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새 아이디어가 하나 떠 올랐다.


”제가 요즘 퇴사하고 시사 유튜브 채널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취재 후일담을 주로 올리는데, 저번 기사의 보충 취재 차 뵙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만나고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

”아 그런가요? 그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요? “


”사실 저는 모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세례명이 루카죠. 하지만 냉담자가 된 지 오래됐습니다. “


”아 그렇습니까? 하기야 요즘 젊은 분들이 종교 생활을 좋아하지 않죠. “


”신부님 오늘은 이렇게 한 번 이야기를 진행시켜 보면 어떨까요? “


”어떻게? “


”오늘 신부님은 신의 대변인 저는 인간 대표가 되어 서로 결투하는 겁니다. 인간들은 신께 불만이 많으니까요? “


”아 좋습니다. 대화가 아주 재밌겠습니다. “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인간 대표로서 신께 할 말이 참 많습니다. 다. 제가 불경스럽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자신이 보기에도 흡족하다고 했던 에덴동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착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께 따져 보고 싶습니다. 신께서는 왜 자신이 만든 창조물이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는 겁니까? “


”그럴 리가요? 신은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의 존재들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고통스럽습니다. 자연도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신은 이것에 대해 매우 염려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왜 바로잡지 않으십니까? 세상은 전쟁과 약탈과 학살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볼까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단 3개월 동안 악랄한 정치인들의 선동에 넘어간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양심 300만 명 이상을 학살했습니다. 심지어 학살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성직자들도 있었고요. “


”그뿐입니까? 지구 한 편에서는 음식이 남아돌아 처리가 골칫거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아직도 기근과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와 노약자들이 넘쳐나고요. 당신은 왜 침묵하시나요? 왜 세상의 악을 단죄하지 않고 이런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도록 방관하시나요?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


”정의를 실현하고 세상의 모든 악을 벌주면 남아 있을 자가 있으려나요? 질문을 하지요, 전쟁을 일으키고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과 당신이 다를까요? 당신도 아마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때 있을 겁니다. “


”내 가요? 살의를 느끼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십니까? “


”운전할 때 앞에서 꾸물대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가 있으면 막 화내고 그러지 않나요? 가속기를 확 밝아버리고 싶은 충동. 아주 강하게 느낀 적 없나요? 그때 만약 가속 페달 밟았으면? 아마 사고가 났겠죠? 자전거 운전자였다면 죽었겠죠. “


”그건 말이 안 되죠. 맘속으로야 뭔 생각을 못 하겠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전부 행동으로 옮기진 않으니까 그나마 세상이 이 정도로 유지되고 있는 거잖습니까. “


”그래요. 맞습니다. 모든 사람이 품고 있던 악심을 행하지는 않지요. 그런데 그건 누가 한 일일까요? 그것이 바로 신의 뜻입니다. 앞에 가는 자전거를 밀어버리고 싶은 악한 마음이 강렬할 때, 라디오에서 운전자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도록 하고. 문득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아이를 떠올리게 하고. 그렇게 화나고 난폭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신이 아주 많은 걸 한 번에 처리하죠. 이것이 전부 우연의 일치일까요? 일상 속의 작은 우연들이 당신이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섬세하게 계획된 신의 기적이자 사랑이라 생각해 본 적 없나요? 그러니 당신이 악인이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순간에 자기 자신, 타인, 심지어 이 세상까지도 망가뜨릴 수 있는 불쌍한 신의 창조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신이 너무 바빠요. “


”뭐 인간들이 다 잠재적 악당이란 말인가요? “


”아니 그런 말이 아니에요. 당신 안에 비밀의 방이 있다는 걸 아나요? “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


”모든 창조물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랑 평화 감사 같은 신의 마음이 있다면 분노 시기 질투 탐욕도 있잖아요. 그런데 인간들은 마음에 비밀의 방을 하나 만들고 그 안에 온갖 추한 것을 숨깁니다. 나랑은 무관한 것처럼요. 하지만 살인 전쟁 약탈 착취 증오 혐오 다양한 폭력과 파괴 행위는 인간이 마음속 비밀의 방에 감춰 둔 모든 악함이 모여 세상에 펼쳐진 것일 뿐입니다. “


”그래서 세상의 모든 악행은 우리 인간들의 자업자득이란 말입니까? 우릴 만든 신이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습니까? “


”악을 행하는 자를 탓하기 전에, 신이 나서서 세상의 정의를 실현해 주길 기다리기 전에, 당신 마음속의 못 된 것을 잘 살펴보란 말입니다. 그래야 그것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관리할 수 있으니까요. 세상의 악행에 당신의 마음을 보태지 마세요. 빛으로 어둠을 걷어 내듯, 당신 안의 선함으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에 힘을 보태세요. 그러면 사랑과 평화와 정의 기쁨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신의 일이 훨씬 수월해지니까요. 신는 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니 제발 신을 좀 도와주세요. “


승욱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곳으로 오면서 자신이 딸에게 받았던 전화가 신이 준 배려의 선물이었단 말인가? 미카엘 신부가 조용히 승욱을 쳐다보며 웃는다.



가끔 신과 대화해 보세요. 뜻하지 않는 통찰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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