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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Jan 25. 2023

담당선생님을 바꾸겠습니다

귀 기울여야 할 대상

다시 만난 담당의는 남편에게 다시 걷지 못할 것이라 말했던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담당의와 우리는 여러 번 부딪혔다. 그는 추후 아이를 가지게 될 경우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애를 생각하냐며 우리를 꾸짖었다. 우리는 방사선이 남편의 몸에서 제거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구한 것이지, 아이를 가지고 우리가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삶의 조언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번은 남편의 소변색이 너무 탁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묻는 내게 그건 남편의 병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소변 색이 이상했던 것은 오랜 기간 움직이지 못해 생긴 요로결석 때문이었다. 남편은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다른 병원을 찾아 요석 파쇄술을 받아야 했다. 요로결석으로 인한 고통은 흔히 출산의 고통과 비교될 정도라고 한다. 나는   겪어보지 못했지만 고통에 치를 떨던 남편의 모습만큼은 평생 잊히지 않을  같다.


또한 그는 남편에게 조혈모세포 이식을 계속 강권했는데, 워낙 위험하고 큰 수술인 만큼 우리는 신중하게 결정하고자 여러 질문을 했었다. 장단점에 대해 묻는 우리에게 그는 결정에 도움이 될만한 그 어떤 답변도 해주지 않았으며, 포엠스 환자는 모두 조혈모세포 이식을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부작용에 대해 묻자 태연하게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국 담당의를 바꿨다. 그가 나쁜 의사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너무 바쁜 나머지 본인이 생각하는 의사로서의 역할, 즉 남편의 암을 없애는 것 외에 그 어떠한 것에도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환자의 삶의 질까지 생각해야 할 의무는 없으며, 그럴 여력도 없었을 것이다. 환자의 깊은 근심에 관심조차 없는 그가 남편의 담당의란 사실이 싫었다는 점은 부정하지 못하겠으나, 그 점 때문에 담당의를 바꾼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담당의를 바꾼 이유는 그가 늘 단답형으로만 대답하고 그 무엇도 제대로 설명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명해 줘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워낙 희귀한 케이스이고 명확한 메커니즘이 파악되지 않은 병이라 소견을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남편의 상태에 대한 전문가의 소견이 듣고 싶었고, 그를 바탕으로 치료에 대한 결정은 스스로 내리고 싶었을 뿐이다.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희귀암을 앓고 있는 그의 상태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며, 치료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가 아닌 남편이 고스란히 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암 자체보다는 남편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 면에서 그는 우리와는 정말 맞지 않는 의사였다. 그가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리라 생각하지만, 고심하고 던진 질문들이 번번이 무시당하면서 남편은 마음의 병을 얻었다.




우리는 처음엔 매달, 그리고 두 달에 한번, 나중에는 세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았고 그때마다 남편은 검사를 받았다. 병원에서 조혈모 세포 이식을 준비하라고 했을 때 우리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계속 조혈모 세포 이식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혈모 세포 이식을 안 해서가 아니라, 하다가 죽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 생각을 존중하고 싶었고, 조용히 이식을 받게 될 경우의 장단점을 따져 보았다.


이식을 받게 된다면 우선 그의 몸에는 아주 독한 항암제가 투여될 것이다. 이 독한 약은 남편 몸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그 후 조혈모세포를 이식하게 되면 남편의 면역력은 극도로 낮아진다. 완전히 격리되어 무균실에서 생활해야 한다. 면역력이 회복될 때까지 무균실에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정기간이 지나 퇴원한 뒤에는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조심 또 조심하며 견뎌야 한다. 외부와 완벽히 차단하되 보호자는 수시로 환자가 사용하는 공간을 소독해야 하고 반려동물이나 식물도 같은 공간에 함께 할 수 없다. 음식의 선택이나 조리방법에도 제한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다. 극도로 제한된 삭막한 환경에서 외롭게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이식을 받게 될 경우 남편의 마비가 풀린다거나 회복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면 그 모든 것을 감수해 볼 수도 있겠지만, 담당의는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만 했다. 이식을 받고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무엇을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아야 하는 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한 것이다.


답답한 대로 나는 또 의학 논문을 뒤졌다. 포엠스 증후군 환자들의 조혈모이식 전과 후를 비교한 논문을 찾아보니 남편의 수치는 이미 이식 후 환자에 가까웠다. 우리는 남편의 직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조혈모세포 이식은 불필요하다는 전문의의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담당의를 바꾸고 진료를 보던 날 남편의 피검사 수치는 이미 암 환자의 수치가 아니었다. 자리 잡고 있던 암세포가 사라지면서 다시는 못 걸을 정도로 부서졌다던 골반뼈의 빈자리는 알 수 없는 물질로 더 채워졌다고 했다. 암의 흔적은 없었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맥없이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남이 말하는 대로 내 삶이 결정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되 최소한의 확인 과정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어떤 전문가도 아닌 나 자신이다.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과정이 있어야 내가 감내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걸러지고, 나아갈 방향을 바르게 선택할 수 있다. 누군가가 나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고, 누구도 그것을 대신 짊어질 수는 없다. 내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오롯이 내가 짊어져야 하기에, 내가 정말 귀 기울여야 하는 대상은 내 안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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