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바이런, 쇼펜하우어, 니체, 벤담, 밀
19세기가 되었고 다윈의 등장했어요. 다윈의 진화론과 적자생존을 바탕으로 생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철학계에도 이 여파가 밀려들어왔는데요. 진화와 적자생존은 우주에 목적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유도했습니다. 기계적인 세계관에 맞서 생물학적인 유기체 우주관이 또 다른 지적 열쇠가 됐어요. 세계는 신의 설계 아래 화살 저럼 날아가는 존재였다면 이젠 꾸물꾸물 나아가는 생명체 같은 존재가 되었죠.
헤겔은 이 세계의 목적성을 탐구한 철학자입니다. 그의 세계는 국가 중심에요. 절대 정신과 절대 이념을 통해 국가를 정신화했어요. 국가에서 그치지 않고 전 세계를 거대한 하나의 총체로 놓았죠. 헤겔에게 분리된 개별성은 없어요. 전체는 복잡한 체계예요. 분리된 사물은 오류이고, 전체만이 실존합니다. 따라서 실체와 이성은 동일하고, 복잡한 전체는 곳 정신적인 절대자입니다. 국가는 이러한 전체, 절대자에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해요. 국가는 마치 도덕적 생명체와 같아 국가 구성원의 의무는 국가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할수록 구성원 역시 전체에 가까워지며 동시에 이성에 가까워지고, 자유로워지죠. 헤겔은 각 국가에 대해 평가하길 동양에선 한 사람만, 그리스 로마에선 몇 사람만, 독일인의 세계에 와서야 모두가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며 프로이센 제국이야말로 최선의 국가상이라 했어요. 헤겔의 이론은 전쟁과 독재를 정당화했어요. 모든 것을 순수 논리와 이성에 호 괄하느라 사물의 다양한 속성을 무시해버렸죠. 러셀은 헤겔의 논리가, 한 사물에 대해 하나를 알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전 제론적인 착각에 의해 전계 된 철학이라 평하며, 오류인 전제로 논리를 극한까지 전재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라 하였습니다.
이때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등장합니다, 첫 시작은 바이런이에요. 바이런은 ‘내 긍지를 낮추는 것은 전부 거짓’이라는 말로 유명하죠. 그다음은 쇼펜하우어인데요. 쇼펜하우어는 ‘의지’를 강조하며 세계의 현상들은 의지가 객관적으로 드러난 것뿐이라 했어요. 그 의지란 사람이 살아가려는 생의 의지에 기반하고, 그 의지로 드러난 세계의 현상은 관념의 표상으로 이어지죠. 만약 개인이 의지를 포기하면 모든 현상도 사라지게 돼요.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현상의 무상함을 깨달아 의지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라고 했어요. 쇼펜하우어는 현생 부정을 주로 다뤘고, 따라서 그의 논리 속에 짙은 삶의 염세를 느낄 수 있죠. 러셀은 이런 염세를 보며 삶을 낙관하느냐 염세하느냐는 기질의 차이일 뿐이라며 넘기고, 그가 강조한 의지에 더 가치를 둬요. 쇼펜하우어는 세계를 의지로 설명하면서 지성 혹은 이성보다 의지가 더 우월하다고 했죠. 이런 우월한 의지 학설은 니체, 베르그송, 듀이 등이 받아 발전시켰고,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요.
마지막 낭만주의자는 니체예요. 니체는 살려는 의지를 너머 서서 더 강해지려는 힘의 의지를 강조하였죠. 니체는 말하자면 귀족적 무정부주의자였어요. 그리스도교식 죄의식을 멸시하면서 이를 고개 숙이는 노예 도덕이라 불렀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쟁취하는 것을 주인의 도덕이라 불렀어요.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위대한 자를 끌어네리는 악한 약자의 도덕이라며 강하게 비난하죠. 진정한 덕은 소수에게만 있으며 그는 위대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한다고 해요. 그런 덕은 질서에 적대감을 표하고 열등한 자를 해한다고 하죠. 개인의 강력한 성장과 우월한 소수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네요. 사실 니체의 이런 발언은 철학 내부에서 보다 문화 예술과 같은 철학 외부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러셀은 니체가 어떤 질병 같은 것이라 비난하지만, 곳 그 질병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고 덧붙입니다. 러셀은 니체가 스피노자에게 했던 말인 ‘병약한 은둔자의 겉치레는 소심하고 상처 받기 쉬운 개성을 얼마나 잘 드러네는가’라고 한 말을 들어 이는 곳 니체 본인의 자기소개에 불과하다며 본격적인 비판을 시작합니다. 러셀은 니체를 일컬어 사랑받을 용기가 없고, 상처 받을까 두려워 공감 능력을 거 새해 오만한 무관심으로 보편적 증오와 두려움을 숨겼다 해요. 또 니체의 우월은 과연 무엇인지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해요. 그것이 선천적인지, 교육에 의한 건지요. 또 고귀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정복자들이 권력을 잡고 마음대로 휘두른다면 그것이 고귀하고 바람직한 것인가요? 그 고귀함과 바람직함은 니체 본인이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또 러셀은 그의 약자 멸시는 윤리보다는 정치학에 그 발을 걸치고 있다 평합니다. 니체가 약자를 멸시하는 까닭은 그 약자들이 뭉쳐 강자보다 더 강해질까 두렵기 때문이죠. 약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이루는 단결성을 이용했고, 그 약자 생존투쟁의 최전선엔 프랑스혁명과 그리스도교 이념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약자가 뭉치지 못하게 비난하는 한편 강자가 뭉치도록 자신의 이념을 설파한 것입니다. 러셀이 평하길 보통 문벌귀족은 평이 안 좋이 때문에 나치나 파시스트 같은 ‘고귀한’ 문벌귀족 모임은 더 평이 안 좋을 것이며 결국 패배할 것이라 예언합니다. 끝으로, 니체는 보편적 사랑을 경멸하지만 러셀 자신은 보편적 사랑이야 말로 세계에 대해 바라는 모든 일을 추진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며, 니체의 추종자가 전성기를 맞는 상황이지만 이런 현상은 금방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어도 좋으리라고 합니다.
그다음은 공리주의자들이 소개돼요. 대표적인 공리주의자는 벤담과 밀입니다. 공리주의자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최대 행복 원리예요. 이 사회의 최대 행복 총량을 올리는 것을 최선의 숙제라고 생각하죠. 벤담은 쾌락을 총량을 지어 계산했고, 밀은 쾌락을 질로 계산했지요. 두 번째는 쾌락에 대한 계산인데요. 이 당시 발전했던 심리학을 이용했어요 쾌락이란 조건반사적 관념으로 사려나 판단이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산정했죠. 다양한 욕구를 선하다, 악하다며 구분하는 여타 윤리학과 달리 공리주의가 말하는 쾌락은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구분하는 의도가 아닌 ‘좋은’ 결과일 뿐이에요. 이런 특성 때문에 공리주의 윤리학은 논증을 통해 반박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실천적으로만 논박될 뿐입니다. 세 번째는 쾌락이 곳 선이라 여긴 것인데요. 고통은 유일한 악이고, 쾌락이 유일한 선이라 했어요. 그래서 금욕이 삶의 질을 높인다거나 하는 관습은 구시대의 적폐라 여겼고, 일반 쾌락을 긍정했죠.
낭만주의자나 공리주의자나 전부 근대 과도기의 사상이었고, 철학적 급진주의자들이었어요. 이들의 영향은 각각 진화론과 사회주의를 사회 저변에 출현시켜준 원인이 되었죠. 공리주의자들은 경제학이나 정치학에 밀접하게 맏닿아 있었고, 새로운 이론인 진화론의 자유 경쟁 이론을 경제학에 넣기 위해 물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다윈의 적자생존은 오히려 낭만주의자들의 영감을 더 자극했고 예상하지 못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됐죠. 반대로 사회주의는 공리주의의 직접적인 결실로서 시작됐어요. 당시 기계가 발달하여 노동자들이 기계로 대체되어가던 시절이었고, 밀려나는 노동자를 보호할 수단이 없었죠. 따라서 당시 경제학자인 로버트 오언은 당시 만연하던 자유지상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최초의 현대적인 사회주의를 만들게 돼요. 오언의 사회주의는 철학 사라 기보단 경제학에 포함되었고 밀이나 벤담 역시 재산 계념에만 집중하는 고전 사회주의의 급진성을 경계하곤 했죠. 그러나 마르크스가 등장하고 사회주의는 철학적 지위를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