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윤 씨, 숫자 나왔나요? 같이 한번 보시죠.”
한 과장은 엑셀 시트를 펼쳐놓고 진땀을 빼던 나를 보며 말했다.
“여기 이건 뭐죠?”
엑셀을 흝어보던 한 과장이 눈을 지릅떠 나를 쳐다봤다. 한 과장이 이렇게 물을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비율에 대해 지적할 거라 예상했지만 그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전혀 생각지 않았던 ‘감가상각비’란 항목이었다.
“감가상각비가 그대로 있네요. 제대로 반영을 해야죠. 다시 정리해주세요.”
한 과장은 던지듯 말하고 의자를 돌렸다. 나도 모르게 ‘예’라고 대답했지만 등에선 송글송글 식은땀이 맺혔다.
‘감가상각비가 뭐였지?’
‘감가상각비’는 사업부에서 입수한 회계자료에 종종 나왔던 항목이었다. 비용 분석을 할 때는 요약 페이지에 나온 전체 비용만 봤기 때문에 세부 항목까지 신경 쓰진 못했다. 그냥 회계처리 항목 중 하나겠거니 하며 넘어갔다. 안일했다. 한 과장에게 IT용어에 대해 지적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것이다. 급히 ‘감가상각비’가 뭔지 찾아봤다.
‘감가상각’이란 말 그대로 가치의 감소분을 비용처리를 하여 상각 시킨다라는 의미였다. 기업에서 투자로 구입한 설비는 자산으로 등재된다. 설비를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면서 설비는 자연적으로 노후화되는데 이런 설비 가치의 감소분을 자산에서 공제하고 비용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감가상각이라 한다.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노트북을 사서 자산으로 설정했다면, 5년간 일괄적으로 가치가 감소한다고 가정하고, 1년에 20만 원씩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자료를 다시 보니 사업부에서 올린 회계자료에는 감가상각비 항목이 있었지만 IT본부 자료에는 항목자체가 없었다. ‘회계’라는 언어로 표현하기 전 비용이라 순수 회계 항목인 ‘감가상각비’는 누락된 것 같았다. 그리고 보니 운영비용 비중이 낮게 나왔던 것도 이해가 됐다. IT본부 비용에 감가상각비를 추가하면 운영비용은 200억 원이 늘어났고, 비율도 운영비용이 20% 많은 것으로 조정됐다. 여전히 벤치마크 수치와는 괴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조정돼서 다행이었다.
연간 총 IT비용: 2500억 원. 혁신투자: 1000억 원. 운영비용: 1500억 원.
밤새 숫자를 조율해 다시 총비용을 계산한 나는 아침이 돼서야 작업을 마쳤다. 대한통신 건물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한 과장을 기다렸다. 이번에야 말로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도 몰래 미소가 지어졌다.
“마무리하셨나 보네요. 어디 한번 볼까요?”
한 과장은 엑셀시트를 펼쳐 놓고 차례로 보기 시작했다. 나는 숙제검사를 받는 기분으로 초조히 한 과장의 표
정을 관찰했다. 몇 번씩 질문을 하긴 했지만 초반 IT시스템 투자와 비용절감 효과 부분은 별문제 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감가상각비 부분에 오자 한 과장은 다시 한번 면을 일그렸다.
“이거 뭐죠?”
“감가상각비입니다.”
“감가상각비인건 알겠는데 이게 왜 여기 있어요? 어제 정리하기로 했잖아요.”
한 과장은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네. 그래서 정리해 놓은 건데요.”
“그럼 따로 계산을 해야죠. 여기 이렇게 같이 계산을 해 놓으면 나중에 정리하기 힘들어져요. 우린 현금흐름만 보면 되는데 손익계산하고 섞이게 되잖아요.”
한 과장은 다시 엑셀 계산식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거 봐요. 여기 현금흐름 계산할 때 감가상각비를 넣으셨잖아요.”
한 과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등줄기를 타고 또르르 식은땀이 흘렀다. 한 과장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현금흐름’은 뭐고 ‘손익계산’은 뭐란 말인가? 눈치로 봐서는 IT비용에 감가상각비를 더하면 안 되는 것 같았다.
“아. 네. 다시 작업하겠습니다.”
나는 급히 얼버무렸다.
“네. 뼈대 작업은 된 것 같으니 여기만 정리하고 다시 보죠.”
한 과장이 말했다. 나는 삼십 분 정도 구곡간장을 태우며 현금흐름과 손익계산의 차이가 뭔지 찾아봤다. 하지만 얼마 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한 과장에게 상황을 실토하기로 했다.
“한 과장님. 현금흐름하고 손익계산하고 어떻게 다른 거죠?”
나는 한 과장을 멋쩍게 바라봤다. 한 과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뿜었다.
“세윤 씨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그렇게 잘 아시면서 비즈니스 언어는 익숙지 않으시군요. 또 그러면서 IT는 싫어하시고.”
“네? IT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요.”
“아니긴요. 시스템 아키텍처 그림만 봐도 인상이 일그러지시던데요. 여하튼 본인 커리어를 비즈니스 쪽으로 가져가시려면 회계는 필수예요. 그게 비즈니스에선 가장 기본적인 언어인데 언어도 모르면서 어떻게 소통하겠어요?”
그렇게 티가 났었나? 나는 벌을 받듯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수준급으로 알았지만 실무에서 쓰는 IT용어는 전혀 몰랐다. 시스템 아키텍처도 사실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어 인상을 썼던 것이지 딱히 싫은 건 아니었다. 비즈니스 언어는 한 과장이 지적한 대로 아직 옹알이도 제대로 떼지 못한 수준이었다. 반면 한 과장은 IT전문가면서도 컨설턴트로서 비즈니스 개념 또한 전문가 못지않게 알고 있었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한 과장은 이면지에 표를 하나 그리며 현금흐름과 손익 차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현금흐름은 말 그대로 매년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며 발생한 실제 수입과 지출의 흐름을 뜻한다. IT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한 해 1000억 원을 지출했고 그 시스템을 사용해 연간 300억 원을 번다면, IT 시스템을 구축한 그해 현금흐름은 지출 1000억 원과 수입 300억 원으로 총 700억 원 지출이 된다. 그다음 해에는 지출 0원과 수입 300억 원으로 총 300억 원 수입이 된다. 여기까지는 간단하다. 회계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덧셈과 뺄셈만으로 직관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손익계산은 다르다. 손익계산은 한 기업의 경영성과를 계산하는 것으로 경영활동을 통해 발생한 매출과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소요된 비용을 분석한다. IT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1000억 원을 지출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스템이 향후 5년간 매출 창출에 쓰인다면 그 해 1000억 원의 비용이 전부 발생했다고는 할 수 없다.
여기서 감가상각비의 개념이 적용된다. IT시스템의 가치가 매년 일정한 비율로 5년간 감소한다고 가정을 하면 1년간 사용된 가치는 200억 원이 된다. 즉, 300억 원이라는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사용된 비용은 IT시스템의 상각 된 가치인 200억 원이다. 따라서 손익계산 상으로는 IT시스템 구축이 완료되고 감가상각이 시작되는 해부터 5년간 300억 원의 매출과 2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해 연간 100억 원의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윤 씨는 현금흐름을 계산하듯 시스템 투자액 1000억 원을 모두 반영해 놓고 거기에 손익계산 때 쓰는 감가상각비까지 반영해 버린 거죠. 비용을 중복 계산한 셈인 거예요.
IT비용을 분석할 때는 지출 (expenditure)을 분석하는 거예요. 손익이 아니라 현금흐름 관점에서 비용을 분석하는 거죠. IT본부 자료는 그 관점에서 비용을 정리했기 때문에 감가상각비가 없었지만 사업부 자료는 각 사업의 손익계산 관점에서 회계처리를 위해 정리된 자료라 감가상각비가 있었고요.
결과적으론 IT본부 자료에 없던 감가상각비를 더하는 게 아니라 사업부에서 반영했던 감가상각비를 빼야 했던 거죠.”
“하지만 말이 안 되는대요. 그렇게 계산하면 전략투자와 운영비용 비율이 같아집니다.”
“비율이 같으면 왜 안 되죠? 운영비용이 투자보다 높다는 가설을 세워서요? 그건 가설일 뿐이에요. 분석결과가 가설과 맞지 않다면 가설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야지 가설 때문에 분석 방법을 바꾸면 안 되죠!”
“…”
“세윤 씨나 제 역할은 어디까지나 정해진 규칙에 맞게 분석하는 거예요. 분석 결과가 가설과 다르게 나왔다면 그건 정 상무님께 보고하고 어떻게 해석할지 의논할 일인 거죠. 사실 결과가 그렇게 나올 수 있을 거란 건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그러니까 세윤 씨 분석이 잘못됐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무리는 제가 할 테니 세윤 씨는 이것부터 보도록 하세요.”
한 과장은 <재무회계의 기초>라는 책을 건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