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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Jul 20. 2023

40. 위성통신 사업전략 I (2)

“실사 관점에서 보면 확인해야 할 게 2 가지겠네요. 가장 중요한 건 잭 말대로 FCC가 스펙트럼 사용을 허가할 거냐는 문제죠. 이건 저희 미국지사 파트너 분들이 확인할 수 있겠죠? FCC 위원들과 관계도 있고, 관련 청문회에도 참석했으니 뭔가 추가 정보가 나오겠죠. 


두 번째는 수요예요. 이 모든 상황은 3G에서 4G로 전환되며 모바일데이터 수요가 폭증하고 이에 따라 통신사들이 추가 스펙트럼을 확보해 수요에 대응하게 된다는 가정하에 가능하죠. 수요 증가가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면 라이트 사가 원하는 시나리오는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이건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전국망을 구축하려면 단기간에 거대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데 투자회수가 늦어진다면 이자와 차입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거예요. 수요가 단기간 내에 투자를 회수할 수 있을 만큼 폭발적으로 늘 것 인가, 이게 핵심 질문이 되는 거죠.”


“정확히 보셨습니다, 김 부장님. 그 두 가지가 바로 저희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나는 김 부장과 회의실에 자리를 잡고 출국 전까지 꼼짝 않고 라이트 사 사업계획서를 검토했다. 사업계획서는 꼼꼼했다. 넘치는 디테일을 보면 잭이란 사람이 얼마나 철저히 사업을 준비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건 아니었다. 우린 사업 계획서를 검토하며 차분히 확인해야 할 항목들을 점검했다. 스펙트럼 확보와 4G 수요부터 비즈니스 모델, 경쟁사 동향, 네트워크 관련 기술까지 최대한 자세히 살폈다. 


진 에크만을 비롯한 어센트 전문가들도 라이트 사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질문을 보내왔다. 나는 김 부장과 함께 질문 카테고리를 나누고 트리 형태로 구조화했다. 하루쯤 시간을 투자하니 이슈트리는 완성됐다. 잭이 희대의 사기꾼인지 천재인지 가늠할 수 있는 완벽한 시험지였다. 이제 출정 준비는 완료됐다.


뉴욕 도착 후 공식적인 첫 일정은 테라글로벌과의 미팅이었다. 미팅은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록펠러센터에 있는 테라글로벌 본사에서 진행됐다. 


록펠러센터는 성공한 사업가들이 자산을 과시할 목적으로 빌리는 전형적인 트로피 오피스였다. 잭은 그중에서도 가장 임대료가 높다는 꼭대기 층에 오피스를 임대해 록펠러센터 전망대 탑오브 더락에 버금가는 전망을 볼 수 있었다. 통유리창으로 된 널찍한 로비 창가로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보고 있자니 경관 자체만으로 압도되는 것 같았다. 


잭은 그 로비를 등에 업고 마치 자신이 맨해튼 소유주인 양 의기양양 히 등장했다. 잭은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로 커리어를 시작해 헤지펀드 매니저를 거쳐 테라글로벌 자산운용사를 창업했다. 이탈리아계 답게 곱슬의 긴 금발과 검은 뿔테 안경이 어우러진 세련된 모습이었지만 굳게 다문 입술에선 유대인 특유의 깐깐함이 드러났다. 


그와 처음 조우한 순간부터 그가 성공한 사업가이자 1.5조 자산가란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감색 슈트에 와이셔츠 단추는 두 개쯤 풀어헤친 차림의 그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끼고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모든 게 계산된 듯 보였다. 현대통신이 세운 미국의 벤처투자사와 미팅을 한 후 모건스탠리와 두 번째 미팅을 하고 우리와는 맥킨지를 만나기 전 세 번째 미팅이었다. 


맥킨지가 전략 실사를 담당하고 우리가 기술 실사를 담당했으니 통상적이라면 맥킨지를 먼저 만나야 했지만 잭은 우리와 미팅을 먼저 주선했다. 체면을 세워 준 걸까? 그러면서도 넥타이를 풀어헤친 차림새에선 우릴 낮잡아 보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나도 모르게 사념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냉정함을 되찾아야 했다.


미팅은 진 에크만이 주도했다. 그는 정보통신 전문가답게 노련히 우리가 준비한 질문을 던졌다. 잭은 네 명의 팀원들과 함께 미팅에 참석했지만 모든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가끔 귓속말로 팀원에게 무언가를 확인하곤 했지만 답변은 스스로 했고 막힘은 없었다. 그가 단순히 사모펀드 투자자가 아니라 경영자로서 사업에 임한다는 걸 몸소 보여주려는 듯했다.


“스펙트럼 관련해선 아무래도 저희가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팩트를 제공해 주셔야겠습니다. FCC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미국연방통신위원회) 와는 어떻게 풀 생각이시죠? 저희가 듣기론 가민 (Garmin, 내비게이션 서비스 업체)과 이리디움 (Iridium, 위성통신 서비스 업체)에서 이미 GPS 재밍 관련된 리스크를 근거로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하던대요.”


진이 물었다.


GPS재밍은 테라글로벌이 보유한 스펙트럼을 위성통신과 이동통신 공용으로 쓸 경우 전파간섭 등으로 위성통신 서비스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리스크였다.


“근거 없는 탄원서입니다. GPS 재밍 위험은 없어요. 있다 하더라도 다른 서비스에 크게 영향을 줄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이건 저희가 외부업체와 협력해 진행한 연구용역 보고서입니다. 재밍 관련된 연구 결과는 여기 충분히 언급돼 있으니 검토해 보시죠.”


잭은 고급 인쇄지에 출력해 가죽 포트폴리오에 넣은 보고서 5부를 우리에게 건넸다. 자체적으로 진행한 용역 보고서가 먹힐 리가 없지 하는 생각을 하며 첫 장을 넘겼다. 


나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렸다. 문서 하단에 큼지막히 박혀있던 ‘외부업체’ 로고 때문이었다. 업체는 다름 아닌 미항공우주국, 그러니까 나사 (NASA, National Aeronautics & Space Administration)였다.


“말씀하신 탄원서에도 아마 연구 보고서가 첨부되어 있었을 겁니다. 저희 경쟁사인 가민과 이리디움에서 작성한 보고서죠. 그런 보고서보다는 나사 보고서가 신뢰도는 더 높지 않을까요? 


스펙트럼은 저희 전략의 핵심입니다. 그만큼 저희도 철저히 준비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아까 소개드렸죠, 여기 새뮤얼 아담스 부사장이요. 부사장님, 테라글로벌을 조인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죠? 경력 좀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잭은 웃음기를 머물며 말했다. 의자 팔걸이 한쪽에 깍지 낀 두 손을 올린 체 의자에 편하게 기대 있던 새뮤얼 부사장은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글랜 앤 데커드 파트너였습니다. 정보통신 분야 대정부 업무를 담당했죠. 그전엔 FCC 모빌리티 부서에 있었고요. 기술 관련해선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이건 FCC 내부에서도 충분히 검토된 사항이에요. 


문제라면 이동통신사가 하나 더 생기는 걸 반대하는 버라이즌과 AT&T 로비스트 들과 그들이 부추긴 저희 경쟁사들 뿐이죠. 여기 1차 청문회 트랜스크립트와 요약 보고서입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FCC는 GPS 재밍에 대해선 크게 문제 삼지 않고 있습니다.”


새뮤얼 부사장은 FCC 청문회 보고서를 우리에게 건넸다. 버라이즌에서 10년 넘게 대정부 업무를 이끌다 어센트로 옮겨온 아트 핸슨은 보고서를 우리에게 건네며 ‘글랜 앤 데커드’가 미국 통신 업계에선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 펌이라고 알려줬다.


“그렇다 해도 경쟁이 되겠습니까? 상대는 자산 규모만 수백 조에 달하는 공룡 통신사들입니다. 경쟁 우위를 점유하려면 사업 초기에 그들 못지않게 마케팅 투자를 해야 할 텐데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저희가 가치평가 모델은 검토해 봤는데 이 정도 마케팅 비용으로는 가입자를 유치할 수 없어요. 위성통신 기술이 적용된 단말은 최소 $900 수준입니다. 최신 아이폰 수준이죠. 사용자에게 비슷한 수준으로 단말을 제공하려면 보조금을 최소 $650 정도는 태워야 한다는 얘기예요. 


헌데 고객당 매출은 위성통신 기술이 적용됐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습니다. 다른 스마트폰 고객들과 비슷한 수준에 불과해요. 월평균 $70 정도 요금에 마케팅 비를 제외한 마진을 25%로 가정해도 보조금을 회수하는데만 3년이 걸립니다. 구조적으로 수익 내는 게 불가능한 사업이에요. 저희 계산으로 테라글로벌의 가치평가 모델은 20% 이상 조정 되어야 합니다.”


진 에크만 부사장은 작정한 듯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진이 질문한 부분은 내가 분석한 결과였다. 가치평가 모델을 돌려보면 스펙트럼에 대해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게 큰 도움이 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입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 비용은 라이트 사 같은 스타트업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질문지를 준비하며 난 이 질문이 라이트 사 사업성을 무너뜨리는 회심의 일격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무리 엑셀을 돌려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었다. 자본이 무한정으로 있어 수년간 적자를 버틸 수 있지 않는 한 말이다. 


난 은연중 거만함과 우월의식을 드러내던 잭이 진땀을 빼고 있을 모습을 그리며 잭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잭은 여전히 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입가에는 아차 싶을 정도로 자신감에 찬 미소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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