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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Jul 19. 2023

39. 위성통신 사업전략 I (1)

오랜동안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어벤저스 팀이 완성됐다. 프로젝트 담당은 이번에 이사로 진급한 임정혁 이사였고 김한겸 부장도 투입됐다. 항상 두 사람이 조합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가능해졌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ICT 세미나를 하며 알게 된 진 에크만을 비롯해, 네트워크 기술그룹 수석 고문 아트 핸슨, 통신 인프라 전문가 존 루이즈, 기술전략그룹장 케빈 맥까지 어센트 미국 사무소에서 날고 긴다는 파트너들이 모두 전문위원으로 투입된다고 했다.


고작 8주짜리 프로젝트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표가 붙었다. 게다가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건 어센트뿐이 아니었다. 어센트는 기술 실사를 담당하고 사업 실사는 맥킨지, 재무 자문은 모건스탠리에서 맡았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50억이 넘는 프로젝트였다.


도대체 무슨 프로젝트 길래 이렇게 돈을 써대는 거야?


이 정도 인력이 투입되는데 뉴욕 맨해튼에서 8주간 진행되는 실사 (due diligence) 프로젝트라는 정보 외엔 알려진 게 없었다.


실사는 인수합병이나 투자 전 대상 회사의 건전성을 조사한다. 인수나 투자가 성사되기 전까진 극비리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이건 좀 너무한다 싶었다. 프로젝트에 대해 들을 수 있던 건 출국 일주일 전이 돼서야였다.


“논디스클로져(non-disclosure, 비밀유지 협약)도 좋지만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무슨 프로젝트인지는 알아야 뭐라도 준비할 거 아니에요. 현대통신에서 대한통신이라도 인수한답니까?”


김한겸 부장은 볼펜을 딸깍거리며 퉁명스레 던졌다. 회의실엔 임 이사와 김 부장 그리고 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저도 사실 오늘 오전에야 제대로 된 정보를 받았어요.”


“어디 들어나 보죠. 어떤 프로젝트길래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말이에요.”


호들갑은 떨만했다. 스마트그리드 프로젝트 후 현대통신과 관계가 뜨뜬 미지근했는데 이번에야 말로 실력발휘가 필요했다. 맥킨지와 함께 투입되는 상황이라 우리가 맥킨지를 제치고 현대통신의 주요 자문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로젝트 요청이 현대통신 회장실에서 직접 내려왔다는 얘기도 있었다.


“현대통신에서 인수 검토하고 있는 건…”


임 이사는 노트북 가방을 뒤적거리며 문서 하나를 끄집어 테이블에 올렸다. 연필로 한가득 코멘트가 쓰여 있는 걸 보니 임 이사는 이미 검토를 끝낸 것 같았다.


“미국 위성통신 업체예요. 현대통신은 미국 통신시장에 진출하려는 겁니다!”


미국 통신시장? 버라이즌, AT&T, T모바일이 꽉 잡고 있는 시장을 현대통신이 비집고 들어가겠다고? 어떻게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게다가 위성통신은 또 웬 말인가? 하지만 임 이사가 분석한 얘기를 들으며 난 내가 100조 원에 달하는 미국 통신시장을 뒤흔들 엄청난 프로젝트에 투입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현대통신이 인수를 검토하는 건 미국 위성통신 기반 통신업체 라이트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라이트 커뮤니케이션은 테라글로벌이란 사모펀드 사가 위성통신업체 옴니세트를 인수해 만든 회사였다. 옴니세트는 통신용 위성 스카이허브 I과 스카이허브 II를 활용해 위성통신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리디움을 비롯한 위성통신 서비스는 전용단말기를 사용해야 했고 통신비용도 비쌌지만 위성을 사용하다 보니 중계기로 지상망을 구축해야 하는 셀룰러 네트워크에 비해 커버리지가 월등히 높았다. 따라서 오지에서 활동하는 국가 기관이나 운송업체에게는 필수적인 서비스였다.

옴니세트는 보유한 위성을 기반으로 탄탄한 사업구조를 갖추고 있었지만 워낙 서비스 사용료가 비싸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셀룰러 네트워크 커버리지가 지속적으로 확장하며 정부 고객을 제외한 일반 비즈니스 고객층은 조금씩 이탈하는 추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테라글로벌 사 CEO이자 라이트 사 CEO인 잭 팔콘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옴니세트의 위성통신 네트워크를 셀룰러 네트워크와 결합한 하이브리드 네트워크로 개조해 새로운 통신 서비스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게 왜 획기적인 거죠? 위성통신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이상 여전히 서비스 가격은 비쌀 테고 고객 수는 제한적일 텐데요.”


나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단순히 위성통신 네트워크와 셀룰러 네트워크를 통합하는 것 만으로 어떤 경쟁력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위성을 통해 셀룰러 커버리지는 확장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서비스 가격이 낮아지는 건 아니다. 위성통신 서비스 가격은 여전히 높을 테고 게다가 위성통신과 셀룰러 서비스를 연계하려면 단말 가격도 비싸질게 뻔했다. 오히려 따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 수도 있었다.


“실마리는 스펙트럼에 있어요. 모바일 데이터 수요가 폭증하면서 대부분 통신사들이 스펙트럼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요. 앞으로 700 MHz 대 스펙트럼이 옥션에 나오고 하면 상황은 좀 나아지긴 하겠지만 여전히 성장할 수요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일 거란 견해가 많죠.


스펙트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바로 위성통신이에요. 라이트 사는 위성통신 서비스를 위해 L밴드 1500 MHz와 1700 MHz 사이에 있는 40 MHz정도 스펙트럼을 확보하고 있어요. 버라이즌이나 AT&T가 700 MHz 대 스펙트럼을 확보하더라도 고작 10 MHz 정도를 추가하는 건데 라이트 사는 이미 그 4배나 되는 스펙트럼을 확보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비용이 문제잖아요. 스펙트럼을 확보했어도 위성통신은 비용이 비싸서 수요가 낮은 거 아닌가요? 쓰려는 사람이 없는데 스펙트럼만 확보해서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게 라이트 사 전략의 핵심입니다. 라이트 사는 위성통신 사업으로 허가가 났던 스펙트럼을 이동통신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연방 통신 위원회 (FCC)와 논의 중이랍니다.


그렇게 되면 보조 지상망 시스템 (ATC, Ancillary Terrestrial Component)을 써서 위성망과 셀룰러 지상망을 IP기반으로 연결할 수 있어요. 라이트 사 전략은 전국 단위로 ATC 시스템을 구축해 위성망과 이동통신망 사이 호환성을 확보하겠다는 거죠.”


“네? 아니, 그럼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거 아닌가요? ATC 시스템이 얼마나 하는 진 모르겠지만 그걸 전국 단위로 깔려면 투자가 엄청나야 할 텐데요.”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략이라고 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위성통신 서비스를 이동통신 서비스와 연결하면 사용성이 좋아지긴 했다. 예를 들면 위성망과 이통망 사이 로밍이 되어 일반 이동통신 서비스 사용자도 쉽게 위성통신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위성통신 서비스를 쓸 일이 얼마나 있을까? 무엇보다 가격이 비쌀 텐데 말이다. 여전히 수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휴대폰이 도심지에서나 잘 터지면 되지 로키 산맥 어딘가에서 하이킹을 하거나 네바다 사막에서 오프로드 드라이빙을 즐기는 극소수 인원을 제외하곤 평상시 위성통신을 사용할 사용자는 없지 않은가?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위성통신 시장이 성장할 거라곤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런 식의 계획이라면 위성통신 사업을 할 생각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난 잘라내듯 말했다. 더 이상 고민해 볼 필요도 없는 낙제점 전략이었다.


딸깍. 딸깍. 그때 김한겸 부장은 볼펜 꼭지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굳게 다문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썹은 물결모양으로 일그러졌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두 번 쳤다.


“엄청나네요. 이 잭이란 사람 말이에요.”


“네?”


“모르겠어요? 세윤 씨가 생각한 게 맞아요. 잭은 위성통신 사업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꼬리가 올라갔다. 위성통신 사업을 할 생각이 없다면 잭은 도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순간 빛이 번쩍하며 어둠 속에 숨겨진 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성통신이란 타이틀 뒤로 숨겨놓은 대가의 마스터피스가 말이다. 아니, 그럼 설마? 난 입을 벌린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 부장을 쳐다봤다.


“맞아요. 잭이 하고 싶은 건… 이동통신 사업입니다!”


맙소사! 잭은 위성망과 이동통신망 사이 호환성을 확보해 위성통신 서비스를 확장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가 하려는 건 이동통신 사업 그 자체였다.


“위성통신은 스펙트럼을 확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에요. 일단 스펙트럼만 확보되면 잭은 이동통신 사업을 하려는 거예요. 알뜰통신 사업자처럼 타사 망을 빌려 쓰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 (MVNO, 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가 되려는 게 아니라 버라이즌이나 AT&T처럼 전국망을 갖춘 이동통신망사업자 (MNO, Mobile Network Operator)가 되겠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죠.”

“할당받은 스펙트럼을 활용해 위성과 이동통신의 장점을 모두 살린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이를 위성통신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일반 이동통신 사용자에게 제공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위성통신은 일종의 가면일 뿐이고 실제 사업은 40 Mhz에 달하는 스펙트럼으로 이동통신 사업을 하는 거죠. 이 잭이란 사람은 희대의 사기꾼이거나 스티브 잡스에 버금가는 몽상가겠네요. 엄청난 스케일의 구상이에요.”


“그게 말이 되나요? 사업성이 있는 얘기예요?”


“이 사업의 비즈니스 케이스는 아주 간단해요. 위성통신과 이동통신 사이 등가공식을 만들어주면 되죠. 위성통신용 스펙트럼을 하베스트 하기 위해선 ATC라는 장비가 필요하고, ATC 장비를 활용하면 40 MHz의 스펙트럼을 이동통신 서비스 용으로 쓸 수 있어요. 이동통신사의 스펙트럼 확보 비용과 라이트 사의 ATC 네트워크 구축 비용을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오겠죠. 한번 볼까요.”


김한겸 부장은 마커펜을 들고 바로 계산을 시작했다. 스탠퍼드 MBA 시절 복수학위 프로그램으로 이동통신 시스템을 전공했던 그는 전문가답게 능숙히 문제를 풀어냈다.


“라이트 사가 쓰는 게 L밴드니까 1.6 GHz라고 가정하죠. 그럼 중계기 하나당 커버리지는 700 MHz를 쓰는 이동통신사에 비해선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일 거예요. 버라이즌이나 AT&T가 가지고 있는 중계기 타워 수 가 5만 개 정도 되니까, 라이트 사가 동일한 수준의 커버리지를 가져가려면 10만 개가 필요한 거예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존 이동통신사의 1/4 정도 커버리지를 타깃 한다고 하면 실제 필요한 타워 수는 2만 5천 개인데 여기에 버퍼를 조금 두면 3만 개 정도 타워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스펙트럼 옥션가가 200억 불 정도하고, 셀 타워는 하나 구축하는데 평균 25만 불 정도 들어요. 단순 계산으론 3만 개를 짓고도 100억 불이 넘게 남는 거죠.”


목구멍을 타고 침이 넘어갔다. 잭의 계획대로 라면 이동통신사 하나가 혜성처럼 시장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미국 시장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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