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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세윤 Jul 21. 2023

41. 위성통신 사업전략 I (3)

답변을 들어보지 않아도 결과가 뻔히 보였다. 잭의 표정이 이미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진 역시 잭의 미소를 알아챘는지 목소리에 긴장을 풀며 공세를 늦췄다.


“그래도 대비는 해 놓으셨겠죠. 어떤 전략을 세우셨을지 궁금하네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여기 사업 계획서에 명확히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 사업의 핵심전략이기도 하고 대외비로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그랬죠. 저희가 타깃 하는 건 일반 소비자가 아닙니다.”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면 역시 위성통신을 쓰는 소규모 고가 고객을 타깃 하겠다는 뜻 인가? 그들이라면 분명 보조금 때문에 서비스를 선택하진 않을 테니 마케팅 비용이 그리 많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타깃 고객층이 너무 작아진다.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굴 타깃 하겠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고, 잭은 그런 나와 눈을 마주치며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저희가 공략하고 싶은 건 소비자가 아니라… 사업자입니다. 라이트 사의 사업모델은 B2C가 아닌 B2B 에요. 저희가 보유한 스펙트럼 자원을 활용해 데이터 파이프를 만든 후 파이프를 도매가로 사업자에게 파는 게 목표죠. 그러니까 버라이즌, AT&T는 경쟁사가 아니라 잠재적 고객사인 거죠!”


등줄기를 타고 찌릿하게 소름이 돋아 올랐다. 이동통신시장에는 크게 2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네트워크 운영하며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MNO고 다른 하나는 MNO에게 네트워크는 빌려 쓰고 서비스만 제공하는 MVNO다. 


잭이 구상하던 모델은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운영하는 네트워크를 빌려주기만 하는 전례 없던 새로운 모델이었다. 버라이즌이나 AT&T 같은 기존 이동통신사가 부족한 대역폭을 확보하기 위해 빌릴 수도 있었고, 신규 MVNO 사업자가 빌릴 수도 있었다. 갈수록 증가하는 모바일 트래픽을 고려하면 수요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잭은 즐거운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우리를 훑어봤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분석한 가치평가 모델이 띄워진 TV 스크린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우릴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비즈니스 케이스에 아직 반영되지 않은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이건 정말 극비사항이고 바로 지난주까지 협상이 이어지던 건이라 얘기를 못 드렸는데요. 아까 버라이즌과 AT&T가 저희 잠재고객이라고 말씀드렸었죠? 한데 그건 거짓말입니다. 버라이즌이나 AT&T가 저희 잠재고객이 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잭은 잠시 말을 멈췄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실컷 이동통신사도 경쟁사가 아니라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다고 피치를 하더니 말이다. 시선은 잭에게 집중됐다. 잭은 마커펜 하나를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저희 최우선 파트너사는 T모바일이기 때문이죠. 현재 T모바일과 독점을 조건으로 협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위성통신망과 스펙트럼을 제공하고 T모바일은 이동통신 인프라를 제공합니다. 저흰 셀 타워를 완전히 새로 짓는 게 아니라 T모바일이 현재 쓰는 타워에 ATC장비만 추가하면 됩니다. 셀타워 구축비용이 삼분의 일로 줄어드는 거죠. 


저희는 단번에 전국망을 확보하고, T모바일은 그동안 네트워크 커버리지가 버라이즌이나 AT&T에 비해 낮다는 오명을 깔끔히 씻어낼 수 있게 됩니다. 아니 씻어내는 정도가 아니라 획기적으로 차별화한다고 할 수 있겠죠. 미국 전 지역에서 위성통신망으로 서비스가 가능하니까요. 버라이즌, AT&T가 서비스할 수 없는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서도요. 통화 품질과 커버리지에 관해선 단번에 선두로 나설 수 있는 겁니다.


아, 그리고 독점은 이통사에만 해당하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버라이즌과 AT&T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업자들은 여전히 저희 잠재 고객으로 남는 거죠. 이것 또한 사업계획서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지금 저희가 협상하고 있는 베스트바이 (Best Buy)나 타깃 (Target)처럼 말이죠.”


순간 진과 아트가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진은 작년 베스트바이 의뢰로 MVNO사업을 검토했다. 진의 표정을 보니 그는 베스트바이가 라이트 사의 고객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 같았다. 


“어센트야 이쪽 산업계 동향을 빠삭히 알고 계시니 제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베스트바이 하나만 고객사로 잡아도 연간 수요가 정확히 2백만 명 나옵니다. 저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잠재 고객사의 수요를 모두 합치면 지금 저희 가치평가에 반영된 규모의 5배 정도 되고요. 하지만 보수적으로 첫해 연도 수요는 지금처럼 유지하는 게 좋겠죠. T모바일과의 파트너십 부분만 반영하면, 저희가 추정할 수 있는 라이트 사 가치는…”


잭은 마커펜을 들고 우리가 분석한 가치 추정치에 ‘X’ 자를 긋고 ‘$6B’라고 숫자를 써넣었다. TV 스크린 바로 위에 보란 듯이 말이다. 임 이사도 김 부장도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잭은 분위기를 압도하며 준비한 내용을 계속 발표했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승리의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우린 간간이 질문을 던졌지만 잭은 초절정고수가 삼류무사를 상대하듯 너무도 쉽게 답안을 제시했다. 쉬는 시간도 없이 3시간을 연이어 진행한 미팅이 끝난 후에도 잭은 지친 기색 없이 활기찬 모습이었다. 버라이즌과 AT&T 고위급 임원들만 십 수년간 상대해 온 진도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록펠러센터에서 다섯 블록 정도 떨어진 어센트 사무실에 모인 건 미팅이 끝나고 한 시간 후였다. 진을 비롯한 전문위원들은 잭이 제시했던 근거들에 대해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조언만 건넸다. 그들은 잭이 늘어놓았던 현란한 언변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잭 팔콘은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을 첫인상만 보고 판단할 순 없겠지만 그가 사기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수사학을 제대로 알고 있었고 신뢰를 주는 법도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 기사나 위키피디아를 통해 쉽게 찾을 수 있던 그의 신상정보만 보더라도 그는 금융계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투자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마치 어떤 계시라도 받은 듯 위성통신 전문가이자 사업가를 빙의하고 나섰으니 분명 숨겨진 어젠다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속이 뻔히 보이는 데 현대통신은 어쩌자고 이런 사업에 말려든 걸까?


“잭 팔콘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어요. 저희가 해야 할 일은 이 사업의 진실된 가치를 평가하는 겁니다. 분명 객관적인 사업성은 분석하고 정의될 수 있어요. 하나씩 차분히 검토해 보죠.”


임 이사는 내 어깨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김한겸 부장은 벌써부터 노트북을 켜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우리가 잭의 마수에서 벗어나 이 사업의 본질을 투시하기 시작한 건 며칠이 지난 후였다.


“이것 좀 보시죠.”


나는 어센트에서 활용 가능한 모든 리서치자료를 바탕으로 모바일 데이터 시장 크기를 비교해 봤다. 모바일 데이터 시장 크기는 라이트 사 가치평가 모델에서 매출을 산정하는 핵심 근거였다. 일차적으로 분석한 데이터는 가정에 따라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했다. 


전체 연결 기기 수는 5천만 대였고, 향후 3년에서 5년 정도 도입기를 지나 그 후 사물인터넷이나 다양한 모바일 기기의 등장에 따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란 예측이 대부분이었다. 


라이트 사가 자체 가치평가 모델에 사용한 성장률은 다른 리서치 기관자료에 비해 낙관적이긴 했지만 오차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조금 더 살펴보니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라이트 사에게 중요한 건 전체 모바일 데이터 시장이 아니라 4G 데이터 시장이었다. 연결 기기 수가 늘어나도 단순 이메일 사용자나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라면 기존 3G 데이터로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굳이 추가금을 지급하며 4G 서비스를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수요가 없다면 통신사들도 공격적으로 네트워크 확장에 투자할 필요가 없었고 상대적으로 4G 데이터 도매사업의 사업성도 떨어졌다. 세대별 데이터를 비교하니 그제야 잭의 꼼수가 드러났다.

“3G-4G 크로스오버가 3년은 빠르게 계산됐네요. 이걸로 가치평가를 했다면 잭이 제시한 수치는 말도 안 되게 고평가 돼있는 겁니다.”


임 부장은 내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어깨너머로 내가 그린 장표를 보던 케빈도 어느새 노트북을 들고 내 옆 자리로 왔다.


“와우. 이거 엄청난 걸 발견하셨네요. 제가 찾은 것도 같이 보시죠.”


케빈이 가져온 건 버라이즌과 AT&T의 네트워크 투자 계획서였다. 경기침체가 예상됨에 따라 4G 투자를 늦추겠다는 내용이었다. 투자 계획서에 명시된 4G 도입률은 내가 분석한 리서치 기관 예측치와 일치했다. 나는 케빈을 보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고, 케빈은 나에게 미소와 함께 피스트범프를 날렸다.


“스펙트럼 얘기도 모두 허풍이었어요.”


아트 역시 이제 갓 뽑은 듯한 문서를 넘겨 보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탄원서를 준비하던 게 가민과 이리디움뿐이 아니더군요. 그들은 민간기업이라 조금 더 빨리 대응했던 것뿐이고, 정말 치명적인 보고서들은 이것들이에요.”


아트가 건넨 보고서에는 미국 국방부와 펜타곤 로고가 박혀 있었다. 라이트 사의 스펙트럼을 이동통신 용도로 사용할 경우 국가재난망 스펙트럼과 간섭 현상이 발생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시작으로 우린 잭이 제시했던 사업성의 근거들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거만했던 잭의 태도 때문인지 진을 비롯한 미국 인원들도 사실관계를 확인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정부기관과 통신사 인맥을 총동원해 수많은 데이터와 내부 정보를 캐냈고 이를 잭이 사용했던 가설과 대조하며 그의 위선을 파헤쳤다. 


T모바일은 라이트 사와 접촉은 했지만 정보만 파악했을 뿐 진지하게 파트너십을 고려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베스트바이를 비롯해 잭이 언급했던 잠재고객들도 실무진들을 접촉해 보니 모두 초기 논의 단계라며 선을 그었다.


모든 데이터를 종합해 본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사업이 낙관적으로 전개된다는 가정 하에 라이트 사가 이동통신 사업 진출에 성공하고 T모바일과 같은 대형 통신사를 고객사로 유치한다고 해도 라이트 사의 최종가치는 마이너스 5억 달러였다. 25억 달러를 투자해 사업을 일으켜도 영원히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었다. 

만약 사업이 비관적으로 전개된다면 결과는 더 참담했다. 마케팅 등 투자금은 15억 달러로 줄지만 수익성도 급격히 악화되며 최종가치는 마이너스 40억 달러에 이르렀다. 


결론은 자명했다. 이 사업에 투자해선 안 됐다. 결과를 모두 모아 전체 회의를 마친 날, 우린 잭이 숨기고 숨겨놓은 이 사업의 실체를 파악했다며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보였다. 


헌데 임 이사의 표정은 웬일인지 착잡하게만 보였다. 진의 표정도 밝지 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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