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르홀레이, 해안절벽 끝에서 부는 파란 바람

by 성세윤


셀야란드포스를 지나면 링로드를 따라 스코가포스 폭포, 난파 비행기, 디르홀레이 해안절벽, 레이니스피아라 해변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셀야란드포스에서 폭포는 이미 충분히 감상했기에 스코가포스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난파 비행기를 보러 가려 했지만, 여길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내가 실수였다.


링로드에서 난파 비행기까지는 약 6km 떨어져 있는데, 셔틀이 다니지 않는 밤에는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지금은 새벽 4시. 서둘러 길을 찾아본다고 해도 도착 시간이 맞을지 의문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지체된다면 야경은 고사하고 일출을 찍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난파 비행기는 밤에 찍어야 제 맛이지 않나? ‘난파’라는 단어가 떠올라 머릿속에 황량한 모래사장 위에 놓인 비행기와 그 위를 넘실거리는 오로라가 그려졌다. 난파 비행기 주차장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500m. 속도를 줄이지도, 핸들을 꺾지도 않았다. 구글맵 목적지는 디르홀레이로 바꿨다.




디르홀레이는 독수리바위와 코끼리바위 두 곳에서 볼 수 있는데, 나는 우선 독수리바위 쪽으로 가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안개 때문인지 구름 때문인지 시야는 흐릿하고 공기는 축축했다. 주차장 끝에 세운 이정표를 따라 산책로를 걸으며 해안가로 향했다. 디르홀레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사한 정보가 없었기에 해안절벽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대도 의심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지나자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리고 시야가 트였다. 처음 보는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푸른빛을 발하며 번쩍였다. 뭐지? 번쩍이는 걸 보면 오로라 같기도 한데, 파란 오로라는 처음 보는 현상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파란 오로라는 가장 드문 오로라의 종류로, 블루 아워에 가까운 시간대라 하늘도 푸르게 빛을 발해 더 신비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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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끝에 서서 번쩍이는 하늘과 깎아지르는 절벽, 그리고 절벽을 세차게 때리는 파도를 바라봤다. 푸른빛은 디르홀레이의 거대한 절벽 위를 유령처럼 떠다니며 춤을 추고 있었다. 거칠고 어두운 현무암 절벽은 하늘을 떠도는 푸른 오로라와 이상하게도 잘 어울렸다.

아주 오랜 시간, 아무 움직임 없이 서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온 세상이 깊은 물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내 숨결마저 푸르게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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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시끌벅적한 인기척이 들렸다. 포토투어 일행으로 보이는 십여 명의 사진사들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삼각대를 펼쳐 구도를 잡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느긋하게 일출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그건 이미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안개가 낀 흐린 하늘에선 해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코끼리바위 쪽으로 가볼까 하다 구름과 바람의 방향을 확인했다. 코끼리바위 쪽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구름은 디르홀레이 동쪽에 있는 레이니스피아라 해변에서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구름이 이쪽으로 오면 내가 그쪽으로 가면 되는 일이었다. 결심했다. 다음 목적지는 코끼리바위가 아니라 레이니스피아라 해변.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이동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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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가포스: Skógar Campsite

난파비행기: The Plane Wreck Shuttle

디르홀레이 (독수리바위): Dyrhólaey View Parking Lot and WC

디르홀레이 (코끼리바위): Dyrholaey light house parking lot


독수리바위, 코끼리바위 뷰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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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바위 주차장과 코끼리바위 주차장 사이 거리는 2km 정도로 차로 5분 정도 걸린다. 주차 후 10분 내외로 산책로를 걸으면 각각 뷰포인트에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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