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스피아라, 검푸른 파도의 외침

by 성세윤

레이니스피아라 해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중 하나로 손꼽히며, 검은 화산 모래 해변과 주상절리 현무암 기둥, 할사네프셀리 해식동굴, 바다 위로 솟아오른 레이니스드란가르 해식기둥과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 덕분에 그 이름을 알렸다.

원래는 디르홀레이나 레이니스피아라 둘 중 한 곳만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디르홀레이에서는 이미 환상적인 풍경은 본 후였고 마침 름이 밀려오던 터라 행선지를 바꿨다. 아니나 다를까 디르홀레이에서 출발할 즈음부터 안개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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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스피아라에 가려면 해안에서 내륙으로 들어가 크게 돌아야 했다. 그런데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안개는 점점 더 짙어졌다. 풍경은 흐릿해졌고 가까운 것과 먼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나는 헤드라이트 불빛만을 의지하며 어둠과 안개를 뚫고 달렸다.

언덕을 하나 넘고 해변에 다다르자 공기의 밀도가 변했다. 안개는 점차 옅어지고, 마치 커튼을 젖힌 듯 회색빛 세상이 서서히 실루엣을 드러냈다.

해변에는 이미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해식기둥이 잘 보이는 곳에 삼각대가 일렬로 펼쳐져 있었고, 모래사장에는 바다를 배경 삼아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그때 해식동굴이 있는 절벽 뒤편에서 구름이 금빛으로 물들며 풍경을 드러냈다. 파도는 거세게 밀려왔고 우뚝 솟은 해식기둥은 그 웅장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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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진회색 구름 위로 태양이 떠오르며 풍경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진한 황금색에서 희뿌연 연노랑색으로 바뀌고 다시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빛은 안개처럼 대기를 채운 미세한 물방울 사이로 끊임없이 산란됐다. 파도는 하늘을 향해 황금빛으로 솟았다가 푸른빛으로 떨어지며 거세게 출렁였다. 해변을 서성이던 사람들은 풍경의 일부가 된 듯 넋을 잃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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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해식바위였다. 바다 한복판에 우뚝 솟은 바위들은 마치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고독한 신들처럼 보였다. 파도는 그들과 신화 속 전투를 벌이듯 거세게 몰아쳤다. 마치 먼바다에서부터 분노를 안고 달려온 듯, 쉼 없이 밀려들고 부서졌다.

그리고 문득, 나는 그 신들의 전투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나'라는 작은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저 파도를 뚫으면 태양까지 갈 수 있을까? 저 바위 위에 올라서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그곳에 올라가면 소용돌이에 휘말려 산산이 부서지지 않을까?

분명 자연 앞에서 인간은 수많은 좌절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동경과 욕망의 대상이다. 좌절한 인간만큼 많은 인간이 그 파도를 뚫고 나아갔을 것이고, 저 바위 위에 올라섰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해변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마치 잠들어 있던 신화가 깨어나는 듯, 풍경 속 깊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영혼이 내 정신 속에 피어올랐다. 빛과 파도와 바위는 각기 다른 언어로 나에게 속삭이며 멋진 신세계를 향해 나아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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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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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스피아라: Parking pour la plage 혹은 Black Beach Restaurant


뷰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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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은 주차장 바로 밑에 있다. 해변으로 내려가 동쪽으로 가면 할사네프셀리르 해식동굴에 갈 수 있고 레이니스드란가드 해식기둥도 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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