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일출까지 셀야란드포스에서 디르홀레이를 거쳐 레이니스피아라 해변까지의 긴 일정을 마친 뒤, 여정이 마무리된 것에 대한 안도감과 동시에 하루가 이제 시작된다는 기대감이 교차했다.
그날 역시 행선지도 숙소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보통 여행이라면 불안할 법도 했겠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슬란드 날씨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대지를 거닐며 떠나는 것이 이렇게 큰 해방감을 줄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들뜬 마음으로 차에 돌아와 구글맵을 켰다. 링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난파 비행기를 보기위해 서쪽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래서 숙소는 레이니스피아라 바로 옆에 있는 비크 마을에 예약하고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스카프타펠과 스비나펠스요쿨까지 가기로 했다.
레이니스피아라에서 링로드로 들어선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작은 마을이 보였다. 비크 마을일 거라 생각하며 지나가려는데 문득 언덕에 교회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하얀 건물에 빨간 지붕. 인터넷에서 자주 보던 건물이었다. 검은 교회처럼 힐끗 쳐다만 봐도 그림 같은 풍경이 나올 것이라 직감할 수 있었다.
고민이 됐다. 차를 멈춰야 할까, 그냥 가야할까. 교회는 언덕 위에 있어 차를 세우고 찍으면 부감 때문에 좋은 구도가 나올지 의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1분쯤 내리막 도로를 따라 미끌어져 갔고 교회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래, 검은 교회만으로 충분히 봤으니 그냥 가자,’ 생각하며 계속 가려는데, 백미러에 다시 교회의 모습이 비쳤다. 지붕이 햇살을 받아 반짝 빛나는 모습이 마치 나를 유혹하는 듯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난 어느새 휴대폰을 꺼내들고 장소를 검색하고 있었다.
비크 마을 루터 교회. 꽤 알려진 명소였다. 링로드에서 빠져 마을 뒤쪽 언덕까지 가는 길은 간단했고, 교회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언덕을 오르니 다시 한 번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얀 몸체와 붉은 지붕. 비슷한 건물들을 몇 번 봤지만 이번엔 달랐다. 단순한 외관과 크기가 딱 들어맞았고, 언덕 위에 위치한 것도 좋았다. 화려한 파인 다이닝처럼 복잡하지 않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일출이나 일몰 시간대도 아닌 아침 햇살을 받은 교회 지붕은 신비롭게 빛났고 멀리 바다 안개와 해안가 절벽이 영화 속 배경처럼 어우러져 눈을 뗄 수 없었다. 쾰른 성당이나 밀라노 성당처럼 거대한 것도 아니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화려한 것도 아닌데, 이건 뭘까? 인구 300명 남짓 되는 마을의 평범한 교회가 이렇게 치명적일 수 있을까?
물끄러미 풍경을 바라보던 중 문득, 교회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교회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주변의 마을, 해변, 해식기둥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절묘한 거리감을 두고 서로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하나의 화음처럼 서로 어우러져 절제미의 감성을 연주하는 듯했다. 해변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 아파트나,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고딕풍 성당이 있었다면 이런 풍경은 결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누군가의 계획이 아니라 우연 속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르지만, 그 우연에서 의도가 느껴지고 인간을 넘어서는 신의 손길이 느껴졌다.
다음 행선지는 피아드라 글라우프 협곡이었다. 굽이굽이 멋지게 꺾인 협곡과 그 협곡을 따라 흐르는 에메랄드 빛 물줄기는 여행 전부터 꼭 담고 싶었던 풍경이었다.
도착한 건 오후 1시쯤이었다. 내가 담고 싶은 풍경은 일출, 일몰, 그리고 오로라가 비치는 모습이었기에, 이때의 방문은 사전 탐사에 가까웠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1km 정도 경사로를 오르니, 100m 깊이의 그림 같은 협곡이 펼쳐졌다. 깊고 날카롭게 패인 협곡 사이로 투명한 강물이 흐르고, 그 위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해가 떨어지거나 떠오를 때, 아니면 춤추는 오로라 빛이 하늘거릴 때 이곳은 더욱 멋진 풍경을 연출할 것 같았다.
산책로 곳곳엔 협곡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바윗길도 있었다. 그러나 세차게 불어오는 초속 10m의 바람은 나를 쉽게 마음을 고쳐먹게 했다. 풍경을 담을까 싶었지만, 어차피 다시 올 거라는 생각에 한 컷만 찍고 마음을 접었다.
붉은 빛이 들어오는 일몰이나 내일 새벽 오로라와 일출을 담을 생각을 하며, 나는 그곳을 떠났다.
아이슬란드 날씨는 언제나 예측할 수 없고 마음은 자주 흔들린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이동경로
비크 이 뮈르달 교회: Vík í Mýrdal Church (교회) 혹은 Vík Cemetery (언덕)
피아드라 글라우프: Fjaðrárgljúfur parking
비크 이 뮈르달 교회 뷰포인트
비크 이 뮈르달 교회 뷰포인트는 교회 위쪽 언덕이다. 교회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갈 수 있는데 언덕에도 주차공간이 있어 차로 올라가도 된다.
피아드라 글라우프 뷰포인트
주차장에서 산책로를 따라 1km 정도 걸으면 전망대가 나온다. 15분 거리로 가볍게 숨이 차오를 정도지만 강풍이 불면 걷기 힘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