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짐을 풀고 일몰 시간 즈음 셀야란드포스를 향했다. 날씨는 이미 포기한 상태였지만 간간이 구름을 뚫고 비치는 햇살이 인상적이었다.
폭포에 가는 길 문득 벌판을 누비는 말들이 시선을 끌었다.
아이슬란드 토종말은 서기 900년경 노르웨이 인들이 들여온 말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후 천 년 넘는 시간 동안 아이슬란드 섬 안에 고립된 채 살아오며 외부 혈통과 단절되어 독자적인 품종으로 자리잡았다. 조랑말보단 크고 일반 말보단 작은 체구, 다양한 색상, 그리고 풍성한 갈기와 꼬리털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사람을 겁내지 않는 온화한 성격이었다. 야생의 들판 위에서도 그들은 유유히 순하고 조용하게 무리지어 있었다.
하늘엔 짙은 회색 구름이 부풀어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내리 비쳤다. 역광에 검은 실루엣으로 비친 말 무리가 언덕을 지나갔다. 현현하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건 꼭 찍어야겠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이 장면을 제대로 담으려면 좀 더 멀리 가서 초망원으로 말과 배경을 압축해 담아야 했다. 하지만 원하는 위치엔 차를 댈 곳이 없었다. 말들이 언제 이동할지 모르는 상황, 햇살 역시 금세 사라질 수 있었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시속 90킬로로 달리는 차 안에서 최적의 촬영 지점을 판단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차를 멈춰 세우고 뛰는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 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언덕을 향해 달렸다. 이미 말 무리는 언덕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때였다. 한 마리가 무리를 이탈해 언덕 위에 멈춰섰다.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이 갈라지듯 햇살이 쏟아졌고 말은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 듯 앞발을 들고 하늘을 향해 몸을 곧추 세웠다. 생베르나르 고개에서 나폴레옹을 태웠던 그 말처럼 말이다.
구름 사이로 내리비친 황금빛 햇살, 앞발을 치켜든 말의 실루엣.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으며 카메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젠장. 카메라에 체결되어 있던 건 500mm 망원렌즈가 아니라 16mm 광각렌즈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렌즈를 교체할 겨를도 없이 급히 셔터를 눌렀지만 그마저도 실패였다. 뷰파인더 안엔 텅 빈 언덕뿐. 말은 사라졌고 무리 또한 언덕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움직이는 피사체와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시간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그 흐름을 끊고 가장 인상적인 1/100초를 포착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찰나를 내 눈과 손으로 붙잡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경이로운 경험이 또 있을까.
놓쳐버린 순간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언덕도 빛도 말도 사라진 자리에 홀로 남아 그런 생각을 했다.
셀야란드포스에 도착했을 땐, 하늘은 여전히 개지 않았다. 구름 아래 폭포는 묵묵히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가늘고 우아한 줄기로 흘러내리는 듯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물줄기는 하늘이 찢긴 듯 거세게 쏟아졌다. 우레 같은 소리에 다른 모든 소리는 묻혔다.
들었던 대로 폭포 뒤로는 좁은 길이 뚫려 있었다. 마치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 같았다. 폭포 뒤에서 바라본 세상은 거꾸로 뒤집힌 풍경이었다. 물의 장막 너머로 본 들판과 구불구불한 길, 그리고 흐린 하늘. 마치 세상과 나 사이 한 겹의 투명한 막이 내려진 것 같았다. 세상이 세상에서 분리되고 내가 나에게서 분리되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몽상에 잠겨 있던 나를 얼음장 같은 물방울이 깨웠다. 생각은 멀리 날아가려 했지만, 감각이 붙잡아끌었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은 폭포수를 소나기처럼 쏟아부었다. 물보라와 안개가 섞인 수분 덩어리가 바람을 타고 사선으로 휘몰아쳤다. 젖은 해초처럼 얼굴에 들러붙는 머리카락, 귓가를 파고드는 바람. 폭포 뒤 세계는 온통 물살에 침투당했다.
일몰 시간에 맞춰 폭포 뒤로 떨어지는 해를 담고 싶었지만,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 탓에 카메라를 꺼내기도 어려웠다. 간신히 물살이 덜 닿는 움푹한 공간을 찾아 들어가 겨우 한 컷을 담았다.
멀리 보이는 분화구 쪽 하늘엔 붉은 기운이 돌았지만 폭포와 함께 담을 수는 없었다
폭포 뒤 계단, 옆으로 난 나무 다리, 다리 끝의 산책로, 그리고 그 너머의 글리우프라뷔 폭포까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프레임에 담고 싶은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이 흐리면 흐린 대로, 지금 찍어야겠다는 충동이 솟았다.
하지만 축축한 옷과 시린 손에 움직이기조차 싫었다. 패딩 모자를 뒤집어쓰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내일 다시 오자며 자신을 설득했다.
결국 다시 오지 못했다. 야경을 담으러 밤에 오긴 했지만, 푸른 하늘과 세차게 떨어지는 폭포가 어우러진 풍경은 끝내 포착하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셀야란드포스는 가장 인상 깊은 장소 중 하나였지만, 폭포의 스케일이나 비율, 역동성을 담은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는 사실을.
취하지 못한 행동은 아쉬움만을 남긴다.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데, 왜 나는 여전히 후회할 결정을 반복하는 걸까.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하나라도 더 보고 무엇이든 해야 한다!
새벽 두 시. 다시 셀야란드포스를 찾았다. 낮엔 그렇게 붐비던 폭포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하늘엔 낮게 구름이 깔려 있었지만 그 위로 별들이 초롱초롱 빛났고, 멀리 오로라의 녹색 빛도 보였다. 낮의 폭포가 물의 성채였다면, 밤의 폭포는 우주의 문턱 같았다.
괜찮은 그림이 나올 수 있겠다 싶어 주차를 했는데, 그제야 깨달았다. 폭포 주변을 훤히 밝히는 조명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서치라이트처럼 뻗은 조명은 어둠 속 폭포를 뚜렷하게 밝혔지만, 전구빛 산책로와 별빛이 만들어낸 밤 풍경과는 부조화를 이뤘다.
결국 담을 수 있었던 건 백색 주광에 플랫해진 폭포와, 희미한 별빛뿐이었다.
오로라도 있었지만, 폭포와는 반대 방향. 함께 담을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조명 광도가 조금 더 약했더라면, 오로라가 조금 더 폭포 쪽으로 흘렀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에 셔터만 반복해 눌렀다.
헌데 사진 속에 희미한 별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폭포 너머 검은 하늘 한가운데, 작고 연한 점들이 일직선으로 흐르고 있었다. 처음엔 먼지인가 싶었지만, 그것은 분명 은하수였다. 폭포 위로는 별의 강이 흘렀고, 그 아래로는 물의 강이 흘렀다. 천상의 흐름과 지상의 흐름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동공은 확장됐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삼각대를 들고 자리를 옮겼지만, 상상 속의 그림을 담는 건 쉽지 않았다. 밝기를 폭포에 맞추면 은하수가 사라졌고, 은하수에 맞추면 폭포가 하얗게 날아갔다. 발을 동동 구르다 여러 필터를 조합해 간신히 원하는 프레임을 담을 수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반대편 하늘에서 번쩍이는 오로라였다. 밤하늘에 손을 뻗어 오로라를 폭포 위에 얹고, 광도 다이얼을 돌려 조명을 낮출 수 있다면 완벽한 풍경이 될 텐데.
오로라 한 번 보고, 은하수 한 번 보고, 폭포를 다시 바라보며 상상했다. 밤공기는 차가웠고, 폭포 소리만 시원하게 귓가를 울렸다. 적막한 공간 속에서 유유히 상상이 피어올랐다. 물줄기와 빛줄기가 흐르던 밤.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동경로
셀야란드포스: Seljalandsfoss Parking
셀야란드포스 뷰포인트
주차장에 도착하면 바로 셀야란드포스가 보인다. 산책로가 주차장에서 셀야란드포스를 거쳐 글리우프라뷔까지 갈 수 있다. 셀야란드포스에서 글리우프라뷔까지 거리는 750m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셀야란드포스 폭포 뒷편으로 들어가려면 우비나 방수자켓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