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성세윤

링로드를 한 바퀴 돌아, 정확히 여정을 시작했던 케플라비크 공항에 도착했다.
9일간의 여정. 인간이 평균 29,000일을 산다면, 고작 삶의 0.3%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그 여정은 오디세이만큼이나 역동적이고 흥미로웠다.


그 어느 것도 기대대로 흘러간 적은 없었다. 예기치 않은 눈보라와 비바람에 길을 잃기도 했고, 또 다른 행성처럼 낯설고 극적인 풍경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오로라와 은하수에 가슴이 뛰기도 했다.

길 위에서 나는 수없이 바뀌었다. 이국의 바람과 얼음과 파도, 그리고 별빛이 나를 조금씩 깎아내고 다듬었다. 하늘빛이 변하고 바람의 결이 바뀌듯, 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이슬란드는 예상보다 적게 보여주기도, 훨씬 더 많이 보여주기도 하며 내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처음 이곳을 여행지로 정할 때는 단순히, 어디든 가보자는 마음이었다. 뚜렷한 기준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내가 아는 세계와 전혀 다른 환경을 원했을 뿐. 어쩌면, 현실로부터 멀어지고 싶다는 막연한 간절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발을 앞두고 마음이 흔들렸다. 일정도 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고, 숙소도 예약하지 않은 상태였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취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밀려오는 불안과 외면하고픈 불편함을 뚫고, 강풍을 뚫듯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고, 첫 목적지였던 키르큐펠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프로스트의 말처럼—그 하나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무 생각 없이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새 주제를 얻고, 형식을 갖춰 하나의 산문이 되듯, 여정도 그렇게 이어졌다.

여정은 멈춤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협곡에서.
밤하늘을 가득 메운 오로라 아래서.
부서지는 얼음 조각 앞에서.
쉼표를 찍듯, 나는 여러 번 멈춰 섰다.

그리고 그 멈춤마다, 놀라운 풍경과 신선한 깨달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밀물과 썰물처럼, 들숨과 날숨처럼, 자극된 감각과 깨어난 사고가 매 순간을 생생하게 했다.
그 속에서 나 역시 조금씩 새로워졌다.

그렇게 링로드 위에서 나는 매일, 새로운 나를 만났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에게 길을 터주었다.

이제 링로드를 떠나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할 시간이다.
생경한 풍경과 변덕스러운 날씨를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일상은 이전처럼 무료하고 반복적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슬란드라는 새로운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부딪히며, 나 자신 또한 새롭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이란, 결국 새로운 나 자신이 아닐까.

익숙하지만 낯선,
일상적이지만 새로운,
또 하나의 미래가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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