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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으로 브랜드를 말하다

영국 셀프리지스(Selfridges) 백화점의 컬러 전략

by Dreaminnovator



색으로 기억되는 도시, 런던의 백화점

런던의 거리를 천천히 걷다 보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다양한 색의 쇼핑백이 시선을 끈다. 노랑, 보라, 초록, 그리고 진한 빨강까지. 그저 쇼핑을 마친 흔적일 뿐이지만, 색을 들여다보는 순간 어느 백화점의 쇼핑백인지 직감적으로 떠오른다. 런던을 대표하는 백화점들은 단지 물건을 파는 공간에 그치지 않고, 색으로 브랜드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네 곳—셀프리지스(Selfridges), 리버티(Liberty), 하비 니콜스(Harvey Nichols), 해롯(Harrods). 이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각기 다른 고유의 색채 전략을 구축해왔다. 예를 들어, 밝고 선명한 노란색의 셀프리지스 쇼핑백은 활기찬 도시의 에너지를 품고 있으며, 딥그린 컬러의 해롯 백은 고급스러움과 전통의 무게감을 함께 전달한다. 보라빛 리버티의 쇼핑백은 한눈에 ‘예술적 취향’을 연상시키고, 하비 니콜스의 세련된 톤은 현대적 감각을 앞세운다.

이처럼 백화점마다 고유한 색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유도하는 전략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감각과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컬러 아이덴티티가 단지 브랜드 인지를 돕는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색의 쇼핑백은 현재가 세일 기간임을 은근히 암시하기도 한다. 마치 색 하나만으로도 백화점의 분위기, 계절, 심지어 구매의 타이밍까지 알 수 있는 일종의 ‘시각 언어’인 셈이다.

런던의 백화점들은 색을 통해 말하고, 색으로 감각을 설득한다. 그들의 색은 단순히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기억을 자극하는 장치이자 브랜드의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그 색을 골랐고, 또 어떻게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켰을까? 그 전략의 디테일을 들여다보는 일은, 색이 브랜드와 감각 사이를 어떻게 매개하는지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셀프리지스 백화점

런던의 대표 백화점 셀프리지스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쨍한 레몬 옐로우 쇼핑백이다. 마치 서울 사람들에게 '카카오'의 노란색이 익숙하듯, 런던 시민들은 이 색을 보는 순간 자연스레 '셀프리지스'를 연상한다. 노란색 하나로 도시와 브랜드를 연결 지은 셀프리지스의 컬러 전략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셀프리지스 백화점 로고

'현대 백화점'의 개념을 처음으로 디자인하다

1909년, 해리 고든 셀프리지는 런던 중심가에 새로운 개념의 백화점을 열었다. 그가 꿈꾼 공간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었다. 셀프리지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고객의 감각과 경험, 욕망을 자극하는 무대를 설계하고자 했다.


당시 대부분의 매장에서는 상품이 유리 장식장 속에 갇혀 있었고, 고객은 점원의 허락 없이는 제품에 손도 댈 수 없었다. 그러나 셀프리지는 이 틀을 과감히 깼다. 상품을 테이블 위에 자유롭게 배치해 누구나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단순한 진열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소비자 중심의 철학을 보여주는 실천이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성 고객에 대한 셀프리지의 세심한 배려다.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화장품은 쇼걸들이나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백화점 1층 입구에 향수, 립스틱, 액세서리 등을 전면에 배치했다. 이러한 배치는 당시 여성들에게 화장과 아름다움이 금기가 아닌 당당한 표현이 될 수 있음을 암묵적으로 전하는 제스처이기도 했다. 백화점은 곧, 여성의 욕망과 자율성을 공간적으로 해석한 장치가 된 것이다.


1909년 셀프리지스 백화점 향수 코너 (오른쪽) & 의상 디스플레이(왼쪽)


1910년 셀프리지스 홍보물


여성 고객만이 아닌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합니다.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며,



"나는 비행기에서 담배와 같은 어떤 상품도 판매할 준비가 되어 있다. I am prepared to sell anything from an aeroplane to a cigar."는 그의 신념을 강하게 드러냅니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진열품은 바로 최초로 영국해협을 항해한 루이스 비에롯 (Louis Bieriot)의 비행기입니다. 백화점 안에 비행기를 전시하여 사흘간 150,000명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1909년 7월 최초로 영국해협 항해 비행기 전시



비행기도 파는 백화점

해리 고든 셀프리지는 말한다.


“I am prepared to sell anything from an aeroplane to a cigar.”

('나는 비행기에서 시가까지 뭐든 팔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1909년 7월, 영국해협 횡단에 성공한 루이스 비에롯의 비행기를 백화점 한가운데 전시하자, 단 3일 만에 15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려들었다. 이는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고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으로서의 백화점의 역할을 강화한 사건이었다.


iTV에 방영한 미스터 셀프리지스(Mr.Selfridges)


드라마로 되살아난 백화점의 비하인드

시간이 흘러, 셀프리지의 도전과 실험은 다시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다. 2013년 iTV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셀프리지스(Mr. Selfridges)*는 창립자의 이야기를 극화한 작품으로, 미국인 사업가가 보수적인 영국 사회 한복판에서 백화점을 열며 겪는 갈등과 혁신의 서사를 그려낸다.

단순한 전기 드라마를 넘어, 이 작품은 셀프리지가 시대를 앞서 어떻게 고객 중심의 사고방식을 공간과 경영에 녹여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진열 방식의 변화, 여성 소비자에 대한 재해석, 새로운 마케팅 전략까지—드라마 속 장면들은 셀프리지 백화점이 ‘현대 유통의 상징’으로 자리잡기까지의 여정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소비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넘어, 그 시대의 가치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셀프리지는 바로 그 거울을 처음으로 설계한 사람이며, 그의 비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셀프리지스의 노란색 바탕에 검정로고 쇼핑백 (왼쪽) & 백화점 상품권 카드와 포장 (오른쪽)

셀프리지는 언제부터 노란색으로 말하기 시작했을까?

오늘날 셀프리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선명한 레몬 옐로우 컬러다. 도시의 풍경 속에서 눈에 띄는 노란 쇼핑백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셀프리지를 직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백화점은 언제부터 브랜드 정체성과 색을 이토록 강하게 연결짓기 시작한 걸까?


1996년은 셀프리지가 다시 한번 런던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 해였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엔 늘 노란색이 있었다. 브랜드의 얼굴을 바꾸고, 기억을 자극하며, 도시 풍경을 물들인 색. 셀프리지는 단지 상품을 팔기보다, 색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을 선택한 백화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립된 세 가지 전략은 단순한 이미지 변신을 넘어, 셀프리지를 다시금 도시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만든 핵심 축이 되었다.


첫 번째는 제품과 타겟 고객의 재정립이었다. 당시까지도 셀프리지는 가구, 조명, 침구 등 홈퍼니싱 제품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변화는 필연적이었다. 보다 젊고 감각적인 고객층을 타깃으로 설정하고, 이를 반영한 패션 중심의 브랜드 큐레이션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상품 구성의 변화는 백화점의 얼굴을 바꾸는 일이기도 했다.


두 번째 전략은 바로 컬러를 통한 이미지 전환이다. 셀프리지는 도시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노란색’과 깊이와 절제를 암시하는 ‘검정색’을 브랜드의 상징색으로 공식화했다. 이 두 색의 조합은 단순한 시각적 대비를 넘어서, 셀프리지가 추구하는 밝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단어가 아닌 ‘색’으로 전달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마지막은 퓨처리즘 콘셉트의 도입이다. 변화는 매장 외관에서도 가시화되었다. 특히 맨체스터에 오픈한 셀프리지스 분점은 무려 15,000개의 금속 디스크로 구성된 외관 디자인으로 도시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통적인 백화점의 외형을 탈피한 이 파격적인 시도는 셀프리지를 단순한 유통 공간이 아닌, ‘도시의 미래를 제안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재정의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셀프리지스 백화점 전면 야간


셀프리지는 어떻게 도시 속에 색을 심었을까?

런던 도심을 걷다 보면, 화려한 색을 입은 건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영국은 도시 미관을 유지하기 위해 건물 외관의 색상 사용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때문에 강렬한 브랜드 컬러를 외벽에 직접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셀프리지는 어떻게 그 상징적인 ‘노란색’을 도시 풍경 속에 녹여낸 것일까?

그 해답은 건물 자체가 아닌, 조명과 쇼윈도라는 ‘움직이는 외관’에 있다.
셀프리지는 주간과 야간을 가리지 않고, 백화점 전면에 설치된 쇼윈도와 조명 시스템을 통해 끊임없이 브랜드 컬러를 노출한다. 마치 백화점 외벽이 아닌 빛과 공간이 셀프리지스를 말해주는 매개가 되는 셈이다. 그 결과, 도심의 회색빛 건축물 사이에서도 셀프리지스는 언제나 생기 있는 노란색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백화점 쇼윈도우


이러한 컬러 전략은 쇼윈도의 운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셀프리지는 연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쇼윈도에 노란색을 고수한다. 단, 딱 두 번의 예외가 있다.


1년에 두 차례, 대규모 시즌 세일이 진행될 때만이 유일하게 붉은색 쇼윈도가 등장한다. 이 짧은 변화는 고객들에게 ‘지금이 세일 기간’임을 시각적으로 알리는 신호가 된다. 브랜드 색상의 일관성을 지키면서도, 적절한 변화로 고객의 기대와 관심을 자극하는 방식이다.


12월 크리스마스 세일기간 쇼윈도우


이렇듯 셀프리지는 단지 고정된 외관으로만 브랜드를 말하지 않는다. 색을 고정하지 않고도 기억되게 하는 방식, 그 안에는 유연하면서도 강력한 브랜딩 철학이 숨어 있다.

오늘날의 셀프리지는 단일 브랜드를 넘어 수많은 브랜드가 공존하는 '하우스 오브 브랜드(House of Brands)'로 불릴 만큼 다양한 제품군을 아우른다. 그러나 그 수많은 브랜드 사이에서도 여전히 가장 확실한 셀프리지스만의 정체성은 노란색으로 기억된다. 도시의 색채 규제를 넘어서도 살아남은 색, 그것이 셀프리지스가 선택한 ‘브랜드의 언어’다.


색으로 말하는 백화점, 셀프리지스의 현재와 미래

런던 중심부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자리한 셀프리지스(Selfridges)는 단순한 백화점을 넘어선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은 패션과 문화를 접목한 유통 혁신의 실험장이자, 감각적인 브랜드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다. 셀프리지스가 이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지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컬러 전략의 일관성과 진화가 있다.

셀프리지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대표하는 색은 단연 노란색이다. 이 강렬하고 낙천적인 색은 쇼핑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혁신을 상징하며, 시대를 초월해 셀프리지스의 정체성을 전달해왔다. 그러나 영국은 건축 외관에 적용할 수 있는 색상이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어, 런던에서는 강렬한 색상의 건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셀프리지는 노란색을 일관되게 활용해 브랜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 비결은 조명과 쇼윈도의 전략적인 연출이다.


특히 셀프리지는 매 시즌 콘셉트에 따라 쇼윈도를 연출하며, 노란색 포인트를 적절히 배치해 브랜드의 고유한 색채를 유지한다. 이러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상품 진열을 넘어, 백화점이 ‘경험의 극장’이 되는 과정을 가능케 한다. 예외적으로, 연중 단 두 차례 열리는 세일 기간에는 쇼윈도 전체를 강렬한 빨간색으로 물들인다. 이는 색의 전환을 통해 고객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시기적인 특별함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전달하는 전략이다.


오늘날 셀프리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슈즈 코너를 보유하고 있으며, 4,000종이 넘는 신발 브랜드를 한 공간에 모아 선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통 채널의 기능을 넘어, ‘house of brands’ — 브랜드의 집합체 — 로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이처럼 셀프리지는 상품과 공간, 시각적 연출의 조화를 통해 소비자와의 정서적 연결을 구축해왔다. 앞으로 셀프리지는 '색으로 말하는 백화점'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며, 공간 브랜딩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 물리적인 외관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색은 여전히 감각적인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핵심 도구다. 셀프리지는 조명, 디스플레이, 시각적 연출을 통해 색의 언어를 유연하게 활용하면서도 그 메시지의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전략적 컬러 활용은 앞으로도 런던을 대표하는 혁신적인 리테일 공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Selfridges 공식 홈페이지

2. Retail Week

3. Telegraph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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