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여행의 매력, 나에게 주는 선물
어떤 도시는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어떤 도시는 유독 긴장하게 된다.
처음 가본 스트라스부르는 나에게 언젠가는 한 번 만나본 친구같이 편안하면서도 셀레이는 느낌이였다.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긴 여정에 지친 나는 가까운 숙소를 예약한 나 자신을 칭찬했다.
'어쩜 1분 안에 이렇게 완벽한 호텔을 발견하다니!!'
물론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모던하면서도 개성이 있는 호텔은 깔끔하고 조용하지만, 관광지와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랑드 일(Grande Île)로 향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영화 한 편을 간직하듯,
나에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그렇다.
알자스의 거리를 걷는 순간, 마치 그 영화 속 한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영감을 준 이곳.
파스텔톤 목조주택과 르네상스풍 건물들이 얽힌 골목을 걷다 보면,
따스한 아이보리 벽과 갈색 목조가 교차하는 집들 사이로
여자 주인공 소피가 운영하던 모자 가게가 눈에 띈다.
도시 중심으로 향하자, 강이 만들어낸 작은 섬, 그랑드 일(Grande Île)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은 도시의 심장이자, 골목골목마다 역사적 매력이 가득하다.
골목을 걸으며 느껴지는 달달함과 따스함,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운하를 따라 걷다보면 ‘쁘띠 프랑스’를 마주했다.
좁은 운하 위로 반사되는 목조 주택들의 격자무늬는 마치 오래된 그림책 속 삽화처럼 다가왔다.
독일 속담에 “만약 스트라스부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면, 더 아름다운 곳에 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Wenn Straßburg vom Himmel gefallen wäre,
hätte es nicht an einem schöneren Ort fallen können.)”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창가에 놓인 붉은 제라늄 꽃들은 바람에 살랑이며 운하 위로 고개를 내밀었고,
물 위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햇살은 집들의 따스한 색감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바람에 실려 오는 빵 굽는 냄새와 나무의 은은한 향,
멀리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와 웃음소리는 도시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혼자있어 더 자유로웠고, 혼자라서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소피가 스스로의 감정을 마주하듯, 나도 내 안의 묵은 감정을 종이에 한자한자 적어 내려갔다.
그 과정에서 문득, 영화 속에서 소피가 경험한 변화가 그려졌다.
저주로 인해 노인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대담해지고 자기 삶을 솔직하게 살아가는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돌보며,
공동체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사는 법을 익힌다.
예상치 못한 여정을 거치며, 나도 어느 순간 마치 소피가 되어있는 듯했다.
그 길 위에서 나만의 속도로, 내 안의 이야기를 하나씩 마주하며 새로운 색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쁘띠 프랑스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서자,
붉은 사암으로 장엄하게 서 있는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1220년에 착공되어 1439년에 첨탑까지 완성된 이 고딕 양식의 걸작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다. 유럽에서 수많은 성당을 보았지만, 이곳만의 특별함은 달랐다.
햇살에 따라 붉게, 황금빛으로 변하는 외벽은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었고,
거대한 장미창은 꽃잎처럼 퍼져나가는 빛으로 내부를 물들였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스테인드글라스와 섬세한 조각이 만들어내는 숭고한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정오가 되면, 마침내 1842년에 제작된 천문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와 달이, 인형들이 행렬을 이루고, 닭이 세 번 우는 장면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인간의 상상력과 신앙이 만들어낸 장관처럼 다가왔다.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과 예술, 신학이 한데 어우러진 문화적 상징이자, 보는 사람들에게 우주의 질서와 신의 창조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무대였다. 태양과 달의 움직임, 별자리, 일식과 월식까지 정밀하게 표시되는 천문 정보는, 마치 과거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그대로 느끼는 듯했다. 12시 30분, 12사도의 행진과 삶의 여러 단계를 상징하는 오토마타 쇼가 시작되었다. 아쉽게도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그 정교함은 상상에만 맡겼다. 종교적 신비감과 인간 중심적 사고, 기계적 정교함이 어우러진 이 시계는, 르네상스 시대의 결정체였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천문 시계 앞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시간과 우주가 동시에 내 안에 스며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과학과 예술, 그리고 신앙이 한데 어우러진 걸작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경이로움이 그대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나는 성모의 상 앞에 오래 머물렀다.
나의 소망과 염원을 담아 촛불을 켰다.
그리고 차분히 마음을 맡기며 기도했다.
여행을 떠나면 나는 늘 그 도시의 일상에 스며들려고 한다.
시장도 가보고, 공원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마치 현지인이 도시를 살아가는 듯한 하루를 보내본다.
편안한 신발을 신고 계획 없이 걷다 보면,
뜻밖의 순간에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주택가를 걷다 우연히 ‘브라세리 드 하라스(Brasserie des Haras)’를 찾은 것처럼 말이다.
여기는 18세기 승마 아카데미였던 공간이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변신한 곳으로, 입구에 세워진 말 동상은 묵묵히 그 역사를 전하고 있었다.
홀로 앉자, 낯선 도시에서 따스한 햇살과 와인 한 잔을 즐기며 온전한 나의 모습을 찾아 간다.
비록 재료 부족으로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도
식사를 하지 못했지만 그 조차도 괜찮다.
이런 뜻밖의 상황조차 여행의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배고픈 마음에 길거리에서 설탕이 듬뿍 뿌려진 빵이 눈에 띄었다. 알자스에서는 프랑스와 달리, 빵과 페이스트리에 독일식 설탕 글레이즈(슈가 아이싱)를 넉넉히 얹는다. 지나가다 맛본 음식 한 접시 속 슈크루트에서는 독일의 향이, 와인잔 속에서는 프랑스의 여유가 스며들어, 예상치 못한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크리스마스의 수도’라 불리는 이곳.
크리스마스를 사랑하는 나에게, 스트라스부르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도시다.
겨울이면 도시 전체가 빛과 음악으로 물드는 축제의 장이 된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추운 날씨와 여유 없는 일정은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 때문이겠지.
몸과 마음은 때때로 따로 움직인다.
그럼에도 나는 운이 좋았다.
여름 한가운데에서 크리스마스를 만날 수 있었으니,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품고 있는 가게 덕분이었다.
바로 ‘대 알자스의 크리스마스(Un Noël en Alsace).’
물론 퀘벡에서도 비슷한 곳이 있지만, 여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크리스마스의 ‘느낌적 느낌’이 있다.
11월 초가 되면 크리스마스 트리를 준비하느라 마음이 들뜬다. 예쁘고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성탄절을 기다리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아무때나 모을 수 있는 곳이 더 소중하다. 어린 시절부터 매년 트리를 정성스레 꾸미던 내게, 오너먼트는 어릴 적 기억의 파편과도 같다.
가게 문을 열자, 반짝이는 트리와 오너먼트, 황금빛과 붉은빛 장식들이 눈앞을 가득 채워져 있었다.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이런 아이들을, 아무때나 갖을 수 있다니!
그래서인지, 6월에 만난 크리스마스는 낯설면서도 더 반가웠다.
내 손 닿는 미리 크리스마스.
스트라스부르와 함께 꼭 들러야 할 곳, 바로 콜마르이다.
‘리틀 베니스’라 불리는 이 마을은 알록달록한 목조주택과 물길 위로 떠다니는 작은 배들이
어우러져 마치 동화 속 삽화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콜마르는 한마디로 ‘동화책을 그대로 펼쳐 놓은 마을’이다.
콜마르는 건축과 생활, 그리고 유럽 동화의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마치 시간 속을 걷는 듯한 감동을 준다.
파스텔톤 목조 주택과 운하, 꽃이 가득한 창가,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여기는 역시 르네상스 양식의 메종 피스터(Maison Pfister)는
스튜디오 지브리팀이 영감을 받은 건축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골목을 걷다 보면 언제든 소피와 하울이 나타날 것만 같다.
이곳은 에펠탑를 설계한 건축가이자 구조공학자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도시를 걷다보면 바닥 군데군데 그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파스텔톤으로 물들어 있는 이 도시.
마치 일본 애니매이션의 한 장면 속을 걷는 듯, 평화롭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색들이 조심스레 배치되어 도시 전체가 한 편의 애니메이션 배경처럼 완성되어 있었다.
재미있게도 도시 전체가 기획적으로
아이보리 화이트와 따스한 브라운의 조합, 그리고 파스텔톤으로 알록달록하게 색들이 반겨준다.
여행이란 바로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새로운 풍경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하며.
장엄한 대성당,
운하 위 아름다운 풍경,
와인잔 속 문화가 하나로 이어지며,
내 여행은 완성이자 미완성이 되었다.
영국에서 살던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혼자만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오늘도 나는 그동안 마주한 여행을 다시 꺼내본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 삶에 또 다른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프랑스의 애프터눈 티 문화, 숨은 이야기까지 알고 싶다면 이어지는 글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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