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열정의 도시
올드카의 엔진음, 바람에 실려오는 음악 소리.
쿠바가 내게 속삭인 건 단순한 휴식 그 이상,
새로운 관점이었다.
나는 늘 빨간 스포츠카를 몰고 잘뚫린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었다.
그 질주 끝에 강렬한 자유가 있을 거라 기대하며.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고속도로보다는 국도가 더 많았고, 때로는 돌아가는 길도 있었다. 스포츠카 대신 SUV를 탔고,
바닥을 스치는 풍경보다, 창밖 위에서 펼쳐지는 세상에 더 익숙해졌다.
경쟁과 효율이 정답이라 믿었던 나에게,
쿠바는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인생에는 답이 없어. 주변을 돌아봐.
천천히, 자유롭게 말이야. 우리는 그렇게 살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의미를.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여행이 될 줄은 모른채.
코로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나에게도, 전 세계에게도.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오랜 비행으로 피로를 풀기 위해 방에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정전. 어둠 속에 익숙해질 즈음, 다시 불이 켜졌다. 그러나 그 불은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꺼졌다.
불이 나가기 전 깜빡이는 전등처럼 말이다. 너무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냥 잠을 자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전기포트를 찾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포트.
결국 프런트에 물어보았다. 너무도 당황스러운 답변. 전기포트 대신 세면대에서 50도 넘는 뜨거운 물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한참 고민을 하다 그냥 숙소를 나왔다.
문득문득 잡히는 전화 신호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세계와 단절된 느낌,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하는 느낌이었다.
그 불편함은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시간을 멈춘 듯, 지금 이 순간만을 바라보게 하는 환경. 오랜만에 오롯이 한곳에 집중하는 경험을 했다.
말레콘 해안도로 위 부서지는 진푸른 파도와, 강렬한 태양빛 아래 즐기는 삶.
안에서 보니 사람들은 촛불 아래 웃음을 피우고, 밖에서는 기타 선율과 노랫소리가 춤추었다.
예상치 못한 불편이 오히려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쿠바, 느긋하지만 강렬한 리듬이 온몸에 배어
있었다.
우리는 하바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다녀오기 전에 그랬다.
수많은 도시들 중 왜 하필 쿠바의 수도일까?
다른 곳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오직 그곳에서만 가능한 경험 때문이겠지.
파란 하늘과 뭉게 구름이 그림의 한 폭 같은 그곳.
그 모든 풍경이 낯설지만 묘하게 아름다웠다.
이 곳에는 다양한 컬러의 사람들이 사는 듯 했다.
카톨릭 성당에 들어서면, 내가 예상했던 하얀 제단보다 다채로운 토착 신앙의 의복과 장식이 더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색과 빛, 사람들의 표정까지,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이 도시에는 화폐조차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같은 나라 안에서 두 개의 경제가 동시에 움직이는 신기한 풍경이었다.
쿠바의 삶은 늘 제약과 어려움을 안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웃음,
음악과 춤, 카페의 향기 속에서 강렬하게 빛난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하바나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내는 이유일 것이다.
400년 스페인 식민지, 36년 미국 영향력, 66년 사회주의— 겹겹이 쌓인 시간 속에서 하바나는 화려함과 소박함,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스페인식 대저택과 파스텔빛 궁전,
마피아의 중심지였던 역사적 나시오날 호텔,
그리고 그 옆에는 혁명 이후 생긴 소박한 집과 체 게바라의 구호가 나란히 서 있다.
찬란한 샹들리에 아래 낡은 소파,
느릿하게 달리는 올드카,
카페마다 흐르는 즉흥 살사와 기타,
골목 가득한 벽화.
사치와 소박함, 이전 귀족의 꿈과 노동자의 현실이 한 프레임에 공존한다.
혁명광장을 누비는 올드카는,
쿠바의 영광과 현실,
반전의 미학을 한 장면에 담아낸다.
혁명 전에 타던 1950~60년대 미국산 올드카들은
폐쇄된 경제와 쿠바인의 창의성이 만나
탄생한 살아있는 '예술품'이다.
오래된 미국 올드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드카는 주로 관광객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올드카는 경제 봉쇄와 수입 제한 속에서
쿠바인들이 직접 냉장고 철판으로 외관을 덧대고,
트랙터 엔진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이 차들은 단순한 빈티지 소품이 아니라
생존과 창의성의 상징이었다.
현실은 관광에 필요한 택시와 렌트카로는
현대차와 도요타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 머나먼 땅에서 달리는 우리 나라 차를 보며
뿌뜻함과 반가움의 미소를 짓는다.
하바나 브라운(Havana brown).
박사학위를 하던 시절,
이 컬러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예상치 못한 도시에서 따온 이름이라서였을까. 하바나라는 도시에 막상 와보니,
그 이름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름만 들어도 자연스레 쿠바의 달콤한 시가와
은은한 향이 떠오르지만, 그 유래는 조금 의외이다. 이 색은 짙은 갈색 고양이 털빛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털빛이 하바나 최고급 시가의 나무빛과 꼭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초콜릿 같기도 하고,
은은한 연기 속에 스며든 갈색 가루 같기도 한 색. 단순한 이름 하나에도 쿠바의 역사와 문화가 겹겹이 배어 있어, 괜스레 더 친근함이 느껴진다.
하바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관광 가이드.
전 세계에서 오는 관광객에게 팁을 받으며, 새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다는 이유이다.
가이드들의 하루는 색으로 채워졌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전하는 다양한 색을 느끼면서 말이다. 역시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돈이 중요했던가.
자본주의는 금빛의 욕망과 손에 쥔 달러의 초록빛—모든 색이 ‘성공’과 ‘희망’을 속삭였다.
하지만 그들의 진짜 꿈은 달랐다.
눈에 보이는 색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여권의 색’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들은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고 한다.
스페인, 멕시코… 과거가 현재에 가져다주는 자유와 가능성.
그 여권 하나면, 바다를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쿠바 사람들에게 삶의 제한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희망이었고, 조금씩 다가오는 자유의 문이다.
그리고 그 문을 향한 갈망은, 오늘도 하바나의 골목마다 살아 숨쉰다.
하바나 구시가지 골목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폭발하는 색과 열정이 나를 맞이했다.
작은 판화 작업장, 골목 갤러리, 앤틱 마켓—모든 공간이 ‘색의 향연’ 같았다.
작품 속에는 현실의 무거움과 음악의 자유로움, 사회주의와 살사의 리듬이 뒤섞여 있었다.
물감과 종이가 귀해도, 그들의 감성은 멈추지 않았다. 카드보드 박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부족한 재료마저 예술로 채워버리는 힘을 보여주었다.
하바나에서 처음 발을 디딘 시장. 가이드가 급하게 외친다.
“둘 다 페소지만, 같은 페소가 아니야! 잘 봐야해!! 아님 바가지 쓸지도 몰라!”
순간 멈칫했다. 같은 이름의 화폐가 두 개라니, 이해가 쉽지 않았다.
쿠바에는 내국인이 쓰는 일반 페소 CUP(Cuban Peso)와, 외국인·관광객용 달러를 대신하는 페소 CUC(Cuban Convertible Peso)가 공존한다.
CUC 페소는 달러와 1:1로 환율이 고정되어 있고, CUP 와는 24배 차이가 난다. 사회주의 국가니까 가능하겠지.
그래도 이 미술품 시장에서는 두 화폐 모두 받아준다. 체제의 벽과 경제적 제약, 현실과 꿈—예술 앞에서는 모든 경계가 흐려진다.
쿠바에서의 시간 덕분에
이제 나는 삶의 쓴맛도, 달콤함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내 여행 사진첩 한 귀퉁이에는
느리게 음미할 줄 아는 자유와 평화,
돈으로 살 수 없는 순간들이
언제나 선명하게 살아 있다.
쿠바는 나에게 정답 없는 삶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었고,
멈춰 있던 나를 다시 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