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옛날 사람들 생각이지. 딸둥이가 어때서. 요즘엔 딸 낳고 싶어하는 사람 많아.
“그래도 네 시댁은 안 그럴 걸. 딸 둘보다 아들 둘이 낫지.”
아빠에게 쌍둥이 성별을 이야기했을 때 들은 말이다. 그런 아빠는 딸만 셋을 낳았다. 아들을 낳으려다 자식 셋을 갖게 된 경우였다. 엄마도 아빠와 이혼하면서 아들이 없어 이렇게 됐다고 한탄을 했다. 정작 두 사람이 갈라진 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는데도, 부모님은 아들을 갖지 못한 것이 자신들의 큰 결격사유라도 되는 듯 여겼다.
그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까. 나는 아들보다는 딸을 갖고 싶었다. 나이 들어 같이 여행도 다니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15주차 2차 기형아 검사 때 받은 초음파에서 의사 선생님이 둘다 아들 같다고 했을 때, 나는 내가 얼마나 딸을 갖고 싶었는지 깨달았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딸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19주차 초음파 검사 때 둘 다 딸로 판정이 났다. 하지만 또 욕심이란 게 끝이 없어서 남매였음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외동이면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었다. 아이가 태어나주는 것만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뱃속 아이가 둘이라고 하자, 욕심이 생겼다. 아들이 좋을까, 딸이 좋을까. 내가 원하는 성별을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아이들 성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처음부터 쌍둥이를 가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듯이.
아쉬움도 잠시, 내 아이들이 딸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장점이 더 많이 보였다. 여자형제만 있는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매들과 무척 가깝게 지낸다. 우리 딸들도 커서 친구보다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 엄마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이 험한 세상에 둘이 남아 의지하고 의좋게 살았으면 싶었다.
우리 아이들의 성별이 정해지니, 아들에 대해서도 생각이 바뀌었다. 아들둥이도 성별이 같으니, 커서도 의좋게 지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바라는 건 부모의 욕심이고, 같은 성별의 형제가 아이들에게는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짜 정답은 시어머니가 해주셨다.
“아들이든 딸이든 무슨 상관이냐. 태어나주기만 하면 그게 축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