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생각하는 방식이 나는 참 좋다. 얼마 전 어머니는 우리집에 놀러오셔서 거실에 누우셨다. 허리 디스크가 심하셔서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가 서로 편한사이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어머니는 거실에서 뒹굴거리시며 이야기하셨다. (며느리 앞에서 이렇게 편하게 뒹구시다니. 우리 어머니는 좀 귀여운 면이 있다.)
“나는 동네 나가면 얼굴 아는 사람들 한테는 다 인사 한다. 그 이유가 뭔지 아니?”
갑자기 왜 인사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렇다.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안동에서 태어나셨다. 경기도로 시집 오기 전까지 안동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부모님은 안동에서 많은 땅을 가진 부자였다. 그 시절 사회적으로는 양반과 천민의 계급이 사라졌지만, 안동이라는 마을에서는 아직 문화로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양반집 막내딸이었다.
“식사 하셨는교.”
안동에서는 이 말이 인사말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는 머슴에게도 배위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여 이렇게 인사했단다. 그러면 어머니의 어머니, 즉 나의 시할머니는 우리는 양반이다. 네가 인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왜 고개를 숙이느냐며 고개는 숙이지 말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학교에서는 양반과 천민이 없다고 배운 것이었다. 어머니가 고등학생쯤 되자 시할머니는 어머니를 앉혀놓고, 이제 양반과 천민의 시대가 사라졌으니 인사를 하라고 하셨단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해도 양반 입장에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텐데, 시대를 읽고 그것을 받아들인 시할머니도 나는 대단하다고 느꼈다.
여기에 어머니는 이렇게 내게 말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게 아니다. 양반과 천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의 값어치는 돈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야.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돈이 많든 적든,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이 다 인사한다.”
겉으로는 네,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경탄했다. 역시 어머니는 현명하시다. 나는 이 가족이 어머니의 힘으로 장성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은 가족구성원 모두가 함께 이룬 열매이지만, 어머니의 현명함이 없었다면 이렇게 화목한 가정이 만들어졌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내 어머니상의 롤모델은 어머니다. 어머니 같은 엄마가 되어야지. 아이들을 위해 더 현명해져야지. 돈과 성공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게 아니라고 가르쳐야지. 그리고 남편의 공에 대해서도 잘 이야기해줘야지. 아이들이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존경하도록 키워야지.
어머니처럼 넓은 품을 가져야지. 아이들이 세상 밖에 나가서 당당하게 살고 힘들면 돌아와 기대어 쉴수 있도록 넉넉한 마음을 지녀야지, 하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