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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Sep 30. 2024

죽은 화분을 살린 시어머니




결혼한 뒤 수경재배로 식물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스파티필름은 잘 자라는 편이었고 개운죽이나 행운목도 잘 자랐다. (행운목은 물에 닿는 기둥 부분이 썩어서 결국 흙에 심었다)


가장 아낀 식물은 스노우 사파이어였다.


스노우사파이어는 수경재배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식물들 중 나름 화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다. 초록 잎 위에 내려앉은 밝은 초록 무늬는 꼭 정교한 보석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연히 백화점에서 수경재배로 스노우사파이어를 꾸며놓은 걸 봤는데 식물의 자태가 화사하면서도 우아해 한참 바라보았다.


그후로 꽃집이 보이면 눈으로 스노우사파이어를 찾았다.


동네에는 파는 곳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주문해 수경재배를 시작했다. 처음엔 잘 자라는듯했지만 키만 웃자랄뿐 잎들이 말리면서 힘없이 늘어졌다. 유명한 일제 영양제를 사서 물에 넣어주었는데 잠시 잎들이 살아나나 했더니 다시 웃자라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나자 스노우 사파이어는 잎도 줄기도 비실비실해졌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삶.  어쩌면 죽은 것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래도 욕심에 본줄기는 집에 두고 새끼 친 작은 줄기를 빼내 신문지에 쌌다.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어머니, 이것 좀 키워주세요.”


살려달라 하지 않고 키워달라 했다. 살려달라 하면 살린 뒤 돌려달라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분명 이 식물을 살려내실 건데, 얌체같이 다시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두 아들이 군대에 가면서부터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셨다. 남편 말로는 식물을 자식보다 아끼신다고 했다. 식물의 잎 하나라도 떨어지게 하면 혼이 난다고.


내가 처음 시댁에 인사갔을 때 놀란 것은 거실을 반 넘게 차지한 화분들이었다. 겨울엔 집에 들여놓고 봄여름엔 밖에 내놓으시며 애지중지 키우셨다.


어머니집에 갈때면 아파트 복도 끝에서부터 꽃향기가 났다.


작년부터 어머니는 약을 먹지 않으면 거동하기 힘드실 정도로 허리디스크가 악화됐다.


큰 화분들을 옮길 힘이 없으셔서 하나 둘 처분하셨다. 처분하다 보니 삼사십 개 정도 된다고 하셨다. 대부분 이십 년 넘게 키운 것들이었다.


어머니 집에는 이제 화분이 거의 없다. 거실이 휑하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 집에 화분이랄 게 없는 줄 알았다. 어머니께 드린 스노우 사파이어에도 관심이 사라져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것이 잘 살고 있다고만 들었고, 화분을 처분할 때 다른 사람에게 주셨겠거니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머니집 베란다 창가에서 반가운 얼굴을 봤다. 내가 드린, 죽어가던 꼬마 스노우사파이어였다.


그것은 어머니가 품기로 결심한 작은 화분들 틈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웃자라지 않은 탄탄한 줄기. 윤기나는 초록 잎 위에 새겨진 무늬는 특유의 보석같은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식물을 잘 살려내실까. 어머니가 키운 화분들 중에 화단에 버려진 것을 살려낸 게 많다고 하셨다. 그 화분들 중엔 20년 동안 무럭무럭 자라 천장까지 닿은 것도 있었다.


식물은 동물보다 키우기 어렵다. 식물은 말이 없다. 물이 부족해도 어딘가 병이 들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늘 들여다보고 식물의 상태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 물을 많이 줘도 안되고 너무 방치해도 안 된다.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은 심성이 곱고 꼼꼼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돌보기에 능한 사람이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식물 키우는 마음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늘 곁에 두고 지켜보면서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적절하게 손길을 보태야 한다. 부지런히 사랑해야 한다.


어머니의 두 아들도 그렇게 자라났다. 그리고 나도 시집온 뒤 어머니 품에서 그렇게 자라나고 있다.


어머니의 손길을 배워 내 두 딸도 잘 키워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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