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너무나 많은 순간 엄마가 필요하다. 내 인생에 잔소리 해줄 사람도, 세상에 상처받아 돌아왔을 때 안아줄 이도, 아무 조건없이 사랑을 줄 이도 엄마다.
엄마의 역할은 엄마밖에 못 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 남편도 가족들도 엄마만큼 아이를 잘 들여다보지 못한다. 몸과 몸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잠을 자다가도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눈이 번쩍 떠진다. 아이들이 신생아였을 때는 다른 방에서 자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태아가 탯줄로 엄마에게 연결되어 있듯 아이들은 태어나서도 보이지 않는 탯줄로 내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뉴스와 주변을 보면, 그리고 나의 친모를 보면 그렇지 않은 엄마들도 있다. 그건 환경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육아는 한 사람의 정신을 극단으로 내모는 일이 자주 있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가진 사랑과 관심 전부를 요구한다. 잠은 세 시간 이상 자지 못하고,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가는 시간도 허용하지 않는다.기본욕구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또는 다른 문제로 괴로움을 받는다면 그 스트레스가 정신적 문제로 올 수 있다.
엄마가 안정적으로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엄마는 아기에게 모든 것을 쏟아준다. 아기가 자라면서 사춘기에 접어들어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게 되면 가장 서운해 하는 이도 엄마다. 그만큼 엄마와 자녀는 끈끈하다.
그 사실을 알기에 출산을 미뤘고, 쌍둥이를 낳고 나서도 때때로 아득하게 무섭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작은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 그 돌봄 속에는 얼마나 큰 고통과 희생이 들어 있을까.
엄마가 되어 많은 것을 주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이 많으려면 또 사랑을 많이 받아야한다. 받아본 사람이 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두려웠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와 엄마가 연결됐던 끈은 일찌감치 끊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끊어지지 않았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더 많이 엄마 생각을 한다. 그리고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아마 이것은 죽을 때까지도 연결되어 있을 거라는 걸 깨닫는다. 그렇지만 그 끈으로는 어떤 사랑도 받을 수 없다.
나도 잔소리 듣고, 힘들 때 기대고,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고 싶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해주게 될 것처럼. 주변이 아무리 내게 사랑을 주어도 엄마 사랑은 다른 영역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이 영역이 조금씩 채워지는 걸 느낀다. 바로 나의 쌍둥이 딸이 내게 사랑을 줄 때다. 아기들이 내 얼굴을 만질 때, 내 손을 가만히 끌어다 입맞출 때, 웃으며 짝짝꿍을 할 때. 엄마 괜찮아 다 괜찮아, 하고 말하는 것 같다.
내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의 샘을 아기들이 작은 손으로 채워준다. 내리사랑은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기도 하는 것이라고. 엄마 없이도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