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완 Mar 16. 2024

엄마가 되자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이 나왔을 때도, 대학교에 다닐 때도, 취직을 했을 때도, 결혼을 했을 때도 내가 어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까지고 배움 속에서 살고 싶었다. 학문도 배움이고 인생도 배움이지. 사람 관계도 배움이고 일도 배움이고 글쓰기도 배움이지. 그러니 난 영원히 학생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살다보니 서른 중반을 넘어서도 차림새는 늘 면바지에 맨투맨 차림이었다. 하물며 나는 지난해 남편 동생의 결혼식장에서도 고등학생 같은 일자 단발머리를 하고 나갔다.


“학생 같네요.”

누가 이렇게 말하면 무척 뿌듯해하면서

“네, 그러려고 노력 중이에요.”

하고 답했다.


무던히도 학생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발전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화장기없이 편안한 옷차림으로 다니면 어려보인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외출복도 없었고 미용실은 일 년에 한 번 갈까말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 증상은 더 심해졌다.


스스로를 학생이라고 말하고 다녔던 내 머릿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학생이니 나를 가꾸지 않아도 된다. 해야할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늘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며 어린아이처럼 살아도 된다. 그냥 하고싶은 공부만 하면 된다.


학생이라는 이름 속에 내가 책임져야할 것, 내가 관리해야할 것들을 회피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미루고 미루던 임신과 출산을 하자, 나는 더이상 학생이 아니었다.


어깨 위에 두 아이가 올라앉았고, 나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직 말 못하는 아기들을 범보의자에 앉혀놓고 아이 이름을 차례로 호명해 알려주며 마지막엔 나를 가리킨다.


엄마, 난 엄마야.  


엄마가 되자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내 아이들이 힘들 때면 언제고 기대어 쉴 수 있는 어른. 든든한 어깨를 가진 어른. 깊고 넓은 사랑을 가진 어른.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어른.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심하는 순간 내 안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내가 이룬 것은 보잘것 없고 나는 아직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던 것이 나는 그 배움을 통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울 앞에 서서 나를 자주 들여다보게 됐다. 건강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넉넉하게 입던 캐주얼한 옷 대신 원피스를 입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잠옷 대신 군살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몸에 붙은 트레이닝복을 입기 시작했다. 무조건 싼 물건을 사지 않고 안목을 키워 내게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제품을 들이기 시작했다.


어떤 모습의 어른이 될 지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내 몸에 대해, 내 삶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갖게 됐다.


세상에 대한 이해와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늘에 숨어 타인을 비판하던 나를 버리고, 사람에 대해 가치판단하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새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에 더 가까워져 있었다. 훌쩍 자라있었다.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전 13화 죽은 화분을 살린 시어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