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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May 03. 2024

내가 시어머니를 존경하는 이유(1)


“난 뭘 감추고 그런 거 잘 못해. 너도 속에 있는 말은 참지 말고 내 앞에서 해라. 알겠지?”


결혼을 하겠다고 한 뒤 예비시댁에 인사 갔을 때, 어머니는 그렇게 말했다.


뭐지, 결혼하고 나면 내 앞에서 막말 시전하시겠다는 선전포고인가. 주변 사람들과 드라마를 통해 시집살이의 악명은 익히 알고 있었다.


만만한 며느리는 되지 않을 거야. 착한 며느리 코스프레하다보면 점점 더 시어머니한테 맞춰야할 테니까. 그렇게 다짐했다.


*


그로부터 8년. 나는 어머니와 누구보다 친하다. 우리가 통화를 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나는 어머니의 가족사를 모두 알고, 어머니도 내 가족사를 모두 아신다. 우리는 친모녀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한다.


8년 동안 내가 겪은 어머니는 누구보다 현명한 사람이었다. 뭘 감추지 못한다는 것은 털털한 성격을 뜻했고, 속에 있는 말을 내보이라는 건 그만큼 수용력이 넓은 분이라는 의미였다.


어머니는 막말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며느리가 시댁에 오면 불편할까, 혹시라도 생각없이 한 말에 상처받을까 늘 염려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셨다.


한번은 치마를 입고 시댁에 간 적이 있었다. 다음 번 갔을 때 어머니는 새로 산 고무줄 바지를 내놓으셨다. 내가 앉기 불편해 보여서, 시댁에 치마 입고 왔을 땐 편하게 이 바지를 입으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나를 위한 ‘며느리 전용 바지’였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게 아니면 제사 때 부르지 않으셨다. 내가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일년에 제사가 적어도 6번 이상 있는 것 같다. 계모 밑에서 자란 아버님은 배다른 형제들과는 연락을 끊으셔서, 제사는 오직 맞며느리인 어머니가 도맡아 하신다. 그렇지만 며느리에게 한번도 연락한 적이 없으시다. 내가 참석한다거나 도우려하면 손사래를 치신다.


시댁에서 설거지도 결혼 8년만에 처음했다. 아기들을 데리고 시댁에서 한 달 지낼 때 처음으로 싱크대 앞에 서 봤다. 어머니는 시댁을 방문한 며느리에게 절대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어머니가 시집살이를 호되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시댁에서 명절이나 제사 음식을 할 때 요리를 못한다며 구박 받고 자존심 상하는 일을 많이 겪으셨다고 했다. 결혼하면서 시댁의 지원은 한푼도 받지 못했는데, 아버님의 계모이자 어머니의 시어머니는 어머니에게만 일을 시키셨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신이 겪은 상처를 되물림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자기가 그 일로 힘들었는데 왜 내 며느리에게 힘든 일을 시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구박받은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한다,는 시집살이의 원칙을 깨신 것이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잘해야 며느리가 남편에게도 잘한다고 여기셨다. 결국 나도 아들을 위해서 너한테 잘 하는 거야, 라며 웃는 어머니는 정말이지 솔직했다. 그러면서도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 때문에 서운하지 않았다.


내가 어머니를 존경하는 건 무엇보다 어머니의 인품 때문이다. 늘 자신의 공보다 아버님의 공을 입에 올리셨다. 그래서 두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하며 자랐다. 이건 어머니가 현명한 방식으로 만든 가정의 분위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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