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말
그래도 엄마인데 연락해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도 아빠인데 명절에 찾아봬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언니인데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말은 나를 옥죈다. 이 말을 타인으로부터 들은 적도 많고, 나 스스로 내게 한 적도 많다.
엄마에게는 연락하지 않았지만, 결혼한 뒤 아빠 집에는 명절마다 찾아갔다. 임신한 뒤 언니와 크게 싸웠을 때는 내가 먼저 연락해 사과하고 화해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인간관계도 결국엔 가족밖에 남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그러나 내게 가장 상처주는 이들은 가족이었다.
동생의 결혼 준비 과정에서 아빠는 애인을 등장시켰고, 애인의 몰상식한 행동은 예비 시부모님을 경악하게 했다.
언니와는 또 비슷한 문제로 부딪쳤고 상처주는 말을 주고 받았다.
가족이어서 가까워지려 애썼다. 가족이어서 참으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상처 주고 상처 받고 멀어졌다.
이쯤되자 나는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두어도 되지 않을까.
가까워지려는 노력도 말고 멀어지려는 노력도 말고. 그냥 이대로. 어떠한 서운함도 갖지 않고. 그저 내 가족이 저기쯤 있구나, 잘 살고 있구나 하면서. 연락이 오면 기꺼이 받고 안부를 주고 받으면서. 거기까지.
서로의 칼날이 닿지 않는 거리. 딱 거기까지.
어쩌면 더더 멀어져도 그저 그렇구나, 하면서.
이따금 나는 아버지를 계속 보지 않다가 장례식에 가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동생이 결혼한 뒤 아버지의 애인의 존재는 더 커졌다. 아버지는 애인과 재혼을 할 것 같다. 애인과 우리 자매들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버지 집에 가는 건 더 불편해질 것이다.
동생의 결혼식 이후 아버지와 연락을 하지 않는다. 아버지도 연락이 오지 않고, 아버지는 내 두 딸이 돌이 될 때까지 얼굴을 보러 오지 않았다.
언니와는 서로 상처주는 말을 주고 받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과 연락을 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좀 서운하고 이상했지만 몇 달이 지나니 오히려 편안한 생각이 든다.
가족이라고 가까워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각자 다양하고, 다른 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가 더 행복하고 편안해질 수 있다면 이대로도 좋다.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가족과의 거리를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