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완 Jul 26. 2024

처음으로 죽고싶다고 말했던 날

내 안의 어린아이를 만나다




부모님의 이혼이 내 상처의 근원일까. 곰곰 생각해보곤 한다.


이혼 가정의 자녀도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상처가 아닐 수 있다. 편부모 밑에서도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라면.


엄밀히 말하면, 내 상처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것에 뿌리내리고 있다.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이혼했고, 엄마는 나를 두고 떠났으며 아빠는 계속 여자를 만났던 거라고.


사랑받지 못한 아이. 그 사실이 부끄러웠다. 학창시절 나는 공부도 열심히하고 친구들과도 열심히 어울리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교복을 입고 안경을 쓰고 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모범생이기도 했다. 공부는 그럭저럭했고 말썽 한번 피우지 않았다.


집이 불화할수록 나는 외부에서 똑부러진 아이처럼 행동했다. 모든 일을 스스로 잘 해내는 아이. 흠 잡을 데 없도록 갖은 애를 썼다. 그래야 내가 사랑받지 못한 아이라는 것을 감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님이 이혼한 스물 한살 때 그 감정은 극에 달했다. 집이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지면서 나는 외부에서 완벽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아버지가 등록금을 주지 않아서이긴 했지만) 과에서 성적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밤 늦게까지 동기들과 어울려 술도 잘 마셨다. 잘 놀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 나는 그런 아이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웃는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나의 그늘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가서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밝고 일도 열심히 하고. 집안의 우환은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내가 삼십대 초반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가정을 꾸리고 비로소 안정을 찾았을 때였다. 이상하게도 술이 많이 마시고 싶었다. 친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몸을 가누기 어려울 때까지 술을 마셨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나는 무언가를 각오하고 있었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술을 더 마시자, 내 안에 봉인돼 있던 어둠이 불쑥 밖으로 나왔다. 나조차도 잘 모르고 있던 그 어둠은 뜻밖의 말을 했다.


“죽고 싶어.”


나는 죽고 싶었던 적이 한번도 없다. 힘든 상황일 수록 정신을 차리고 더 잘살아가려 했다. 죽고 싶다는 말은 나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내 입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친구는 놀랐고, 왜 그러느냐고 했다. 왜 그러는지 말해보라고. 이상하게도 나는 화가 났고, 친구에게 화를 냈다. 완벽한 술주정이었다.


다음 날 집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여한이 없었다. 뭔가 해야할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는 내가 무서웠다고 했다. 얘가 좀 이상해진 것 같다고 걱정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왜 그날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죽고 싶다. 그건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는 말을 현재형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당시의 나는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그 말은 내 안의 어린아이가 한 말이었다. 부모님이 싸우기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의 내가. 어린 나는 부모님의 싸움을 지켜보며 두렵고 불안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드러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것이 거의 20년이었다. 그때의 내가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야 알았다.


그즈음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 슬픔을 이야기했다. 우리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엄마는 알코올중독이고 아빠는 여자를 만났다. 아빠는 내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는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온전히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결함있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할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그해에 나는 많이 울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울고, 친구와 이야기하다가도 울었다. 슬퍼서 운 게 아니었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안쓰러워서, 그동안 몰라준게 미안해서 울었다.


그럴 수록 내 안의 슬픔이 잦아들었다. 어느 날은 혼자 있는데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한번도 혼자 있을 때 콧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는 걸. 그리고 내가 겪은 감정이 가면우울증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무 힘들고 우울했지만 그걸 겉으로 내보인 적 없었다. 나아가 나 스스로도 알아준 적이 없었다.


내가 나의 슬픔을 진심으로 알아준 순간, 내 안의 어린아이를 안아준 순간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이전 04화 헤어진 엄마 아빠에게도 사연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