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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Sep 08. 2024

엄마 없음이 드러난 순간들

부모님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한 건 내가 초등학교 육한년 때부터였다.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집안 공기가 달라졌다. 그 공기는 보이지 않는 휘발물질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작은 마찰이라도 일으키면 불시에 불길이 온집안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걷는 것도,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엄마 아빠의 전쟁이 길어질수록 돌봄의 손길도 내게서 멀어져갔다.

누구도 나를 관리해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안 누군가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밥을 했다는 것이다. 그건 아빠일 때도 있고 엄마일 때도 있고 언니일 때도 있고 나일 때도 있었다.

나는 그저 최대한 친구들 집을 떠돌다가 집에 늦게 들어갔고 방에 틀어박혀 공부를 했다. 집에 있는 밥을 꺼내 먹고 건조대에 있는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어릴 때부터 집안살림은 엄마가 도맡았기 때문에 나는 살림이란 건 잘 알지 못했다. 학창시절엔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고 급식을 먹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니, 차이는 있었다. 친구의 집에 놀러갔을 때 친구 어머니가 홍삼을 달이고 있었다. 입시 준비로 지친 딸을 위해 만드는 것이었다. 그게 무척 부러웠다. 베싼 홍삼이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보살핌과 정성이 질투났다.

그 시절 내게 꿈이 있다면 수험생 딸이 늦게 까지 공부할 때 엄마가 오렌지 주스 한잔을 가져가주는 것이었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그런 마음을 결코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집밖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은 모두 우리집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겉으로 드러날 때가 있었다. 비슷비슷했던 학창시절이 끝나고 성인이 되어서였다.

대학시절엔 부러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고 아르바이크도 열심히 해서 생활비를 벌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대학 땐 아무리 꾸며고 모두가 어딘지 어설프게 마련이어서 나의 틈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보살핌의 부재가 드러난 건 이십대 중반, 사회생활을 할 때였다.

“너 블라우스가 많이 구겨졌네. 이런 건 빨래를 한 직후에 탈탈 털어서 옷걸이에 걸어서 말려야 해. 그럼 다림질 안 해도 돼.”

인턴 과정이 끝나고 정직원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친한 여자 선배가 내게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정말 놀랐다. 나는 내 블라우스가 구겨져 있는 줄도 몰랐다. 집에 있는 사람 모두가 내 옷차림에는 관심이 없었고 나조차도 그랬다. 나는 늘 건조대에 있는 옷을 아무 생각없이 끌어내려 입고 외출했으니까.

혹은 옷이 옷장 속에 있다고 해도 마른 옷을 걷어 옷장에 넣은 누군가(그건 나 자신일 수도 있었다)는 옷이 구겨져 있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부부싸움으로 인한 엄마의 우울증, 엄마의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보살핌의 부재. 그리고 엄마가 우리집을 떠난 이후까지 나를 보살핀 사람은 없었고, 내가 어설픈 몸짓으로 내 깃털을 고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건 내가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닌 게 그게 처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내 그래왔고, 선배가 그 말을 꺼낸 그 순간 그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엄마없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엄마가 있었다면 자식이 출근할 때 구겨진 블라우스를 입고 나가게 뒀을까. 적어도 우리 엄마가 멀쩡했을 때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옷을 탈탈 털어 말리거나 그래도 구겨져 있으면 다림질을 해서 옷장에 넣어놨을 것이다. 늘 자식의 옷차림과 먹을 것에 관심을 쏟던 엄마였으니까.

반면 아빠는 그 무수한 시간 동안, 엄마가 없는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옷은 빳빳하게 다려 입었다. 나는 아빠가 자신의 옷을 다리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그러면서도 자식의 옷은 한번도 다려준 적이 없었다.

선배에게 구겨진 블라우스에 대해 들었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그렇지만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후로 절대 구겨진 블라우스를 입지 않았다.

비슷한 일은 또한번 있었다. 일하던 와중에 실내에 들어갈 일이 생겼는데, 업무차 알고 있던 지인이 내게 말했다.

“양말에 구멍이 났네요. 일을 너무 열심히 하시나봐요.”

나는 내 양말에 구멍이 나 있는줄도 몰랐다. 오래 신고 신어서 뒤꿈치가 닳은 양말.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니 이 일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들은 엄마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적어도 나라면 자식을 구겨진 옷을 입고 다니게 하지 않는다. 빨래를 하고 갤 때 구멍나거나 오래되어 역할을 다한 옷은 버린다.

아무리 감추려 애써도 엄마의 부재를 완벽하게 감출수 없다. 설령 다른 사람은 몰랐을 지라도, 나는 그게 엄마의 손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 일이라는 걸 안다.

엄마가 되니 엄마의 손길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된 후 나는 엄마의 손길을 아이들 뿐 아니라 나에게도 준다. 나를 위해 옷을 탈탈 털어 걸고 구멍나거나 헌 옷을 버린다. 나를 위해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는다.

이제 나는 나를 보살필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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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소속 직업 에세이스트

‘글쓰기’ 덕분에 행복한 사람. 느리지만 꾸준히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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