ᆢ안아 주기ᆢ
아침부터 아이의 마음이 상했다. 학교에 안 가는 주말이니 잠에서 깨자마자 티브이를 볼 계획이었나 본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티브이를 볼 시각을 놓쳤다. 우리 집에는 주말에 오전 시청 시각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소파 위에 웅크린 채로 아이는 들릴락 말락하게 볼멘소리를 붓고 앉았다. 울퉁불퉁해진 마음을 징징거리는 소리로 드러내면 엄마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걸 아는 아이가 혼자서 삭이고 있었다.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는지 잠을 자던 방으로 쏙 들어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저 혼자서 진정해 보려고 애를 쓰는 게 대견하면서도 외로울까 싶어 퍽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엄마의 따뜻한 포옹 한 번이면 아이의 모난 마음이 동글동글 보드레한 조약돌로 바뀐다는 걸 알기에, "안아 줄까?"라고 물었다. "응." 밀당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이의 순박한 대답이 기다렸다는 듯 날아왔다.
아이를 품에 들이고는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는데 순간 나에게는 이런 경험이 없었다는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찐하게 안아 본 경험, 뼈가 녹아내릴 만큼 뜨거워서 마냥 행복하기만 한 포옹. 며칠 전 수업 중에 한 학생이 했던 말이 내 가슴속에 몰래 내려앉았다가 아이를 안고 있는 지금 비눗방울처럼 떠올라 빵 터진 건지 모른다. "엄마가 언니 편만 들어서 엄마랑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꼭 안아줘서 다 풀렸어요." 엄마가 안아주니까 쫑알쫑알 자기의 속내를 엄마한테 말하게 되더란다.
이른 휴가로 강원도 친정에 다니러 갔다가 다시 돌아오던 날, 배웅하러 나온 엄마를 내가 꽉 안아 드렸다. 어릴 적에 못 받은 게 아쉽긴 한데, 다시 생각해도 가슴 한복판이 아리도록 아쉽긴 한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내 부모를, 내 아이를, 내 남편을 내가 꼬옥 안으면 내가 안긴 게 된다. 진심으로 온 힘으로 꽈악 안으면 심장이 뜨거워진다. 나를 좀 안아 주세요. 삐죽삐죽 내 안에 돋친 가시들이 몽글몽글한 몽돌이 되도록 말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안아주기부터 해야겠다.
ᆢ들려주기ᆢ
은혜 갚은 까치 전설이 있다.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다가 까치를 공격하는 구렁이를 활을 쏘아 죽였는데, 그날 밤에 선비를 칭칭 감은 또 다른 구렁이한테서 까치가 선비를 구했다는 내용이다. 종에 제 몸을 부딪쳐 종소리를 울려 선비를 구하고 까치는 죽었단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일일 교사로 우리 교실을 방문했던 나의 어머니가 저 이야기를 그렇게도 맛깔스럽고 생생하게 우리 반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었다. 제 새끼를 잡아먹으려는 구렁이를 필사적으로 막는 어미 까치를 흉내 내느라 요란스럽게 '깍깍깍깍'하고 까치 소리를 내면서 뺑뺑뺑 제자리를 도는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훤하다.
가족들한테 저녁밥을 차려 주고 나서 입맛이 없던 나는 밥 한 술 뜨지 않고 홀로 책이나 읽으려고 마음 가는 대로 책을 집었는데, 저 설화가 떡 허니 담겨 있었다. 책을 보려고 내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니, 지금처럼 기분이 착 가라앉은 때마다 나는 왜 책을 찾을까 싶었다. 폰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티브이를 켤 수도 있는데, 나는 늘 책으로 손이 간다.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닌데, 지금은 좋아한다고 자신한다. 내 아이들이 더 어렸을 때, 아침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 위해서 집을 나섰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간 건 점심때가 훌쩍 지나서였다. 동네 도서관의 문이 열리자마자 자리를 잡고는 책 속으로 푹 빠져 들었었다. 집안일이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 등의 복닥거리던 일상의 신발을 쓱 벗어 놓고 고요한 문자의 향연을 향해 걸어 들어가면 나를 둘러싼 세상이 정막으로 휩싸이고 정막은 곧 나의 벗이 되었다.
그렇게 책을 가까이 두기 시작한 뒤부터는 모처럼 시간이 생기면 언제나 책으로 손이 갔다. 그런데 은혜 갚은 까치라는 구절을 보는 순간 국민학교 교실에 서 계신 나의 어머니가 불현듯 떠올랐고,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어머니 덕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절대로 잊힐 것 같지 않았던 기억인 타고난 이야기꾼 나의 어머니에 대한 저 추억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에 다녔던 고향의 교회에서도 주일마다 구연동화처럼 실감 나게 성경 말씀을 들려주었다. 나의 할머니도 나를 품고 주무시던 날이면 어김없이 옛날이야기로 밤 시간을 물들이셨다.
내 기억의 저만치 먼 너머에서 별만큼이나 반짝이는 두 눈으로 어머니와 교회 선생님과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채 침을 꼴깍 삼키기도 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기도 했던 '어린' 내가 두 눈을 더 동그랗게 뜨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 내가 책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어린'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