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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화 Mar 04. 2024

감수성에도 계보가 있다면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세상에 3월이라니요, 필화 님. 말이 되나요 이게.

1, 2월에 뭘 했는지 돌이켜봤는데... 일을 안 한 건 아닌데 뭔가 그럴듯한 성과를 내진 못했네요. 이게 다 기나긴 겨울방학 덕분이 아니겠는가, 입술을 지그시 물고 말해 봅니다. 네, 저는 이렇게 매번 남탓을 하는 지지리도 못나고 비겁한 종자입니다.



두 주에 걸쳐 소개해주신 책, 꼭 읽어 보겠습니다. 문장들이, 그 안에 담긴 가치관과 철학이 강인하고 아름다워서 마음에 파도가 일어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찰나에 마음이 크게 울렁이는 감각도 오랜만이었지 싶고요.



저는 지난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은 새로 산 책을 읽기보다는(물론 안 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흑) 책꽂이에 장기투숙하고 있던 책들을 살펴보다 끌리는 한 권을 읽는 독서를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었지만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 책들을 오디오북으로 듣기도 하고요. 그렇게 듣고 있는 책으로는 <꿀벌과 천둥>이 있어요. 일본 작가들이 천재를 참 좋아하잖아요. 제가 아는 것만도 천재 피아니스트가 등장하는 작품이 벌써 세 갠데요, 많이들 아시는 <노다메 칸타빌레>, <피아노의 숲>, 그리고 이 책이 있군요. 그런데 앞의 두 작품에 비해 이 소설의 인상은 벌써 희미해졌어요. 정말 즐겁게 읽었던 기억만이 선명하고요. 그래서 오디오북으로 다시 듣고 있죠.



그러고 보니, 제게 질문을 하나 하셨었죠? 이 순간은 이 책과 함께 살아왔다, 고 할 만한 책이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제 평생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고등학생 시절, 저를 단단히 붙잡아 준 책들이 있었죠. 하나는 작년에 대한민국의 304050 세대를 추억의 바다에 흠씬 젖도록 던져 넣었던 <슬램덩크>고요. 다른 하나는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 시리즈였습니다. 무섭고도 애잔하고, 무진장 재미있었던 소설이었죠. 공포 소설이니까 행여라도 읽어볼 생각은 마시고요. 이 소설 덕분에 저는 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 하나였던 바흐의 칸타타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를 한동안 못 들었을 정도였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이야기할 것이 있는데- 이것은, 뭐랄까. 잡지인데요, 저의 10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잡지였습니다. 지금 이걸 이야기하는 이유는 오늘 말씀드릴 책과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고요. <르네상스>라는 순정만화 전문 잡지였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로 강력하게 제 인생에 깊이 연관돼 있냐면, 제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버지가 맨해튼 32번가의 고려서적에서 퇴근길에 매달 이 잡지를 제게 배달해 주셨던 ... -_- ...(어제 그저께 필화님께 아버지에 대한 불평을 좀 했는데... 음... 기분이 묘하군요) 기억이 납니다. 인터넷도 해외 배송도 없던 시절인데도, 덕분에 저는 제법 풍족한 문화생활을 했었네요...


여하간! 이 잡지는 걸출한 대형 작가들이 대단한 작품들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마련해 준 대단한 공로가 있죠. <르네상스>의 굉장했던 점은, 단순히 근사한 남주가 귀염뽀짝 혹은 절세미인인 여주와 만나서 사랑하고 기타 등등, 그런 전형적인 로맨스의 문법에 충실한 작품 뿐만 아니라 그 교과서적인 프레임을 넘어서서 지금은 SF/FAN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장르의 기틀을 마련했던 작품들을 게재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실험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작품들을 대거 연재했다는 것인데 아시다시피 ‘잘 팔리는’ 아이템이 뻔히 있는데, 리스크를 안고라도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 그런 작가들을 지원했다는 점이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팔리는 작품만 지원해서 결론적으로 양산형 작품만이 남아 시장이 소멸하게 두기보다, 시장의 다양성을 만들어 나갔다는 거죠. 물론 이것은 당시의 만화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태동기였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요. 어쨌거나 작가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하는데, 시장과 유통처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신선한 작품이 나오지 않는 데는 작가의 책임도 있겠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거대한 자본의 힘이... 생각보다 정말 많이 큽니다. 그래서!(할 말이 많지만 넘어갑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강경옥, 신일숙, 김혜린, 원수연, 김진, 이정애 이런 대단한 작가들이 출현합니다. 제가 언급한 작가들의 공통점이 무엇이냐, 바로 그 잡지에 연재를 한 이력이 있는 분들이고, 대작가의 반열에 오를 만한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작품을 모른다 하실 수는 있어도 <풀하우스>, <바람의 나라>, <리니지>를 모를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이 나라에? 하지만 순서대로 원수연, 김진, 신일숙 작가님이 원작자이신 건, 절반이나 알면 다행이지 싶네요.






묵혀두었다 읽었던 책은 바로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라고 합니다.


이제야 제가 줄줄이 옛날옛적에 폐간된 최초의 순정만화지며 작가들 이야기를 줄줄이 했던 이유를 아시게 되었네요. 사실 저는 저 ‘순정’이라는 용어에도 엄청나게 불만이 많은 사람이긴 한데, 순정 자체는 좋은 말이니 그냥 지금은 지나가죠(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자는 말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 강조하고 가겠습니다 그게 바로 나야 나).




많은 훌륭한 순정문화들에는 당대의 고민이 어떤 형태로든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아라크노아』 역시 전반적으로 사회의 변화, 민주화, 자유 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인 「기타맨」은 특히 억압받는 세계에서 예술가란 무엇인가, 이들이 이끌어 내는 ‘사람들의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절실하게 호소해 온다.


“캡틴이 말하기를 ‘절대 자유에의 추구’, 그런 죄명 아닌 죄명은 어느 시대에서도 죄명이 될 수밖에 없다 했다.” -140쪽




이런 명문이, 이젠 틀에 박힌 말이지만 가슴이 웅장해지는 그런 명대사들이 속출했던 작품들이 군웅할거하는 시대였단 말입니다...(입틀막). SF에 대한 여러 정의들을 차입해 볼 때, 순정만화라는 일견 풋내나 보이는 장르가 얼마나 대단한 사고실험과 철학적 논제와 사회적 이슈를 던져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작품들을 일일이 언급하다가는 밤을 새도 이 편지가 끝나지 않으니까, 그냥 전혜진 작가님의 이 책을 읽어주세요. 오, 간결한 결론이네요. 왠지 기쁘다.





오늘 편지가 좀 길어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말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거니까... 이해해 주실 거죠?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요. 늘 이런저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 우리의 정신적 평안을 휘저어놓곤 하지만 그래도 지지 말아요, 우리. 이 말을 써놓고 보니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가 떠오르네요. 한 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지난주에 뭐 읽으셨는지도 알려 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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