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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Aug 04. 2024

희망과 절망사이

첫 진단을 받고 조직검사를 받은 후 결과를 보기 위해 병원을 향하고, 지방에서는 오진일 경우가 많다는 주변의 희망을 실은 말들에 온 인맥을 동원해서 어렵사리 잡은 신촌세브란스의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처음엔 오진이기를,

다음엔 췌장암이 아니기를,

다음엔 적어도 4기나 말기만 아니기를,

다음엔 수술만이라도 가능하기를...


내가 살고 있는 울산대학병원의 종양내과교수님을 만났던 날이 기억난다.

꼼꼼하게 설명해 주시는 모습의 교수님의 말씀이 너무 신뢰가 가서,

교수님의 입에서 내뱉어지는 그 단어들, 말들의 무게감이 너무 버거워서,

그래서 더 두려웠다.

암진행이 너무 되어있는 상황이고, 수술도 불가한 회의적인 상황이라 굳이 힘 빼서 서울까지 항암을 하시는 건 에너지 낭비라며, 여기든 서울이든 지금 처방할 수 있는 약은 비슷하다며 그래도 젊으시니까 하고 싶은 건 후회 없이 다 하고 싶으신 마음 이해한다며.

'잘 다녀오세요'라는 얘기에...

나는 그때,

완벽한 절망을 마주했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힘들게 항암 해서 1년 살고, 아무것도 안 하고 6개월 사는 거면 나 항암 안 할래."




15년 전쯤 시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정신없는 3일장이 끝나고 화장터에서 아직 화장의 온기를 머금고 있는 어머니의 유골함을 받아 든 남편은 얼굴에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휘청거렸었다.

15년 전에 봤던 그 모습이 남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다.

운전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앉아있는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

나보다 더 깊고 깊은 절망 속에 갇혀버린 듯한 눈빛.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가는 사람은 오히려 홀가분할지 모르겠다.

남은이는 이를 악물고 슬픔을 견디고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고통 속에 남는 것에 비하면.

남편의 모습을 보고 다시 말을 했다.

순간, 이러다가 정신을 잃어 사고가 날 것 같기도 했고.

"아, 아니다 오빠. 이제 다시는 나 나약한 말 안 할게, 어떤 항암이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무조건 버텨볼게."

"그래, 진짜 그런 말 좀 하지 마. 당연히 힘들 거지만 당연히 죽는 건 없는 거야. 뭐든 해봐야지. 6개월 선고받고 몇 년씩 잘 사는 사람들도 많다던데. 하기도 전에 그런 소리 하지 말자."

눈물 맺힌 남편은 그제야 안심한 듯 앞을 바라보고 운전했다.

힘든 항암이 될 걸 알면서, 버티라고 조금이라도 내 곁에 있어달라 얘기하는 오빠도 미안하고 두려웠을 것이다.

암의 전조증상인 통증이 시작될 때부터 언제나 자신이 뭘 해줘야 할지 몰라서 서성이고 힘들어하던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더 이상 무기력한 감정과 절망을 줄 수는 없었다.


그날 그 순간 이후,

더 한 결과를 마주했을 때도 난 한 번도 울지 않았고 절망하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내 삶을 뿌리째 절망 속으로 빠뜨리려는 이 암과 싸워서 이겨내어야겠다는 투지만이 아주 깊게 자리 잡았다.


CT촬영 순서 기다리며... 병원에서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틀 후,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추가검진을 받고 우리나라 췌장암권위자 교수님과 진료를 봤을 때 췌장암 3기로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선항암 치료 후 종양의 크기를 좀 줄여 수술해 보자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당일 오후, 종양내과 교수님을 만나 추가 CT 촬영을 하고 그다음 주에 진료를 볼 때 최종 담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은 당연히 불가한 상황이었고, 최악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언급하시는 것에서 또다시 절망이 씨익 웃으며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으나...

난 절망을 마주 보며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달라질 건 없다.

누구나 죽는다.

어떤 암도 위험할 수 있다.

유방암도 위암도 간암도 췌장암도 담도암도.

생존율이 어떻든 결국은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다.


오로지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 부정확한 상황에 적응해나가야 한다.

매일매일의 컨디션을,

이 항암약이 나에게 잘 맞기를,

항암치료 부작용이 크지 않기를,

항암으로 암세포가 줄어들기를...


언제나 희망을 생각하려 한다.

쉽지 않을 것도 않다.

오히려 거세게 싸워보고 싶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꿈을 꾸고 살았던 것 같다.

참 열심히, 삶을 사랑하며...

그리고 그 안에는 늘 희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엄청난 희망의 힘이, 긍정의 힘이 필요할 때다.


수십 번도 넘게 본 내 인생영화.

'쇼생크탈출'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떠오른다.

'hope is good thing, maybe the bes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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