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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묘 Jun 09. 2020

좋은 날이 꼭 올 거야

스테로이드 중단 및 회복기

 

 루푸스 치료를 위해 10알로 시작했던 스테로이드는 컨디션에 따라 개수를 줄여갔고, 복용 9개월 만에 끊게 되었다. 스테로이드 복용 중 가장 힘들었던 부작용을 뽑자면 당연 하체부종과 문페이스, 탈모였다.


허벅지, 종아리 할 거 없이 빵빵하게  만들었던 부종은 그 정도가 심해져 발등까지 영향을 끼쳤다. 걸을 때마다 발등 위에 물 주머니가 움직이는 것처럼 출렁거렸고, 높아진 발등 때문에 한 겨울에도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조금이라도 쪼이는 옷을 입으면 피가 안 통해 다리가 굳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기에 추위를 막기 위한 스타킹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매일 통이 큰 바지를 찾았고, 마구잡이로 옷과 신발을 사들였다. 시기가 우울증과 겹쳤었는데, 분풀이용으로 퇴직금의 30% 이상을 쓸 만큼 쇼핑 중독자가 되었다.


얼굴을 달덩이처럼 동그랗게 만들어버렸던 문페이스는 부작용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이었다. 주변 사람들과 모든 연락을 끊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날마다 부어오르는 얼굴은 가족들도 어색해할 정도였다. 액체류 섭취가 많은 날에는 다음날 부기 때문에 눈도 뜨지 못했고, 그런 모습을 거울로 보자니 한숨만 나왔다.


원래도 없던 머리숱이 한 움큼씩 빠졌었다. 움직이는 곳마다 바닥엔 머리카락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고, 밤마다 청소하는 게 일이었다. 겉 머리카락을 들춰내면 안쪽엔 휑하니 살이 보였다. '난 참 속 안 머리도 없어(소갈머리)'라며 씁쓸한 장난을 던지곤 했다. 대체 다시 자라긴 하는 건지, 불안한 마음에 가발 사이트만 연신 기웃거렸다.


이러한 부작용들에 적응 아닌 적응을 하고 있을 때쯤 드디어 약을 줄이기 시작했다.






 스테로이드는 약의 개수를 줄이는데도 부작용이 나타났다. 바로 무기력증. 약에 의해 각성되듯 움직였던 신체활동들이 그 개수가 줄어듦에 따라 무리가 오는 것이다. 따라서 스테로이드를 줄이는 과정은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10알 - 9알 - 8알 - ....... - 2알 - 1알 - 반 알 - 이틀에 반 알 식이다.


스테로이드를 줄이기 시작하자 몸의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5알쯤으로 줄었을 때, 사무실에서 몇 개월 만에 낮잠이 들었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 것이다! 항상 약 기운 때문에 억지로 움직였던 터라 '10분이라도 낮잠 한 번 자보고 싶다..'라며 투덜거렸는데, 드디어 이루어졌다. 낮잠이 이렇게 개운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던 순간이었다.


그 뒤로 밤에 잠이 드는 시간도 점점 빨라졌다. 전에는 보통 새벽 5~6시쯤 잠들었다면, 약을 줄일수록 한 알에 1시간씩 당겨졌다. 점점 원래의 생활 패턴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불안하고 초초하기만 했던 새벽 시간들이 잠으로 대체되니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다. 제시간에 잘 수 있다는 걸로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지독스러웠던 하체 부종도 점점 완화되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양 발 위에 아령을 올려놓은 것처럼 무거웠는데, 한결 가벼워졌다. 오히려 스테로이드의 다른 부작용 '근육 약화'로 인해 그간 다리에 있던 알(근육)들이 쫙 빠지면서 치료 이전보다 더 얇아졌다. 인생에서 가장 짧은 치마를 입을 정도였다. 원래도 하체비만이어서 스트레스였는데, 이때는 처음으로 다리가 너무 얇은 거 아니냐며 살 좀 찌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웃픈(웃기고, 슬픈)'상황이 되었다.


 스테로이드로 인해 부종이 심할 때는 온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아무 느낌이 없게 된다. 통증, 가려움 그 어떤 감각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부기가 빠지면서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몰려왔다. 침대에 눕기만 해도 등이 싸하게 아파왔고, 의자에 앉으면 엉덩이부터 허벅지까지 눌리는 부분이 통증으로 느껴졌다. 샤워할 때 몸에 비누칠하는 것도 아파서 순식간에 끝내버리곤 했다. 그리고 꽉 막혔던 피가 뻥 뚫리는 거처럼 '찌릿찌릿'한 느낌이 지속되었는데, 이런 게 혈액순환이라는 거구 나를 알 수 있었다.


 문페이스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문페이스는 얼굴이 부으면서 면적도 넓어 보이고, 옆에서 봤을 때 입 안 가득 음식물을 넣은 것처럼 볼이 빵빵해져 코가 파묻혀 보인다. 이상하리만큼 부은 얼굴은 어깨를 기준으로 위, 아래의 밸런스를 어색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으면 항상 '대두 컷'같이 얼굴만 확대되어 보이곤 했다.


문페이스로 가장 소름 돋았던 건 세수 후, 기초화장품을 바를 때다. 얼굴과 손이 부종 때문에 아무 느낌이 없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얼굴 밑으로 잡히는 턱살, 목도 감각이 없어 마치 다른사람 몸에 나의 '혼'만 갇어둔 거 같았다.


그런데 이런 문페이스도 웃픈 부분이 있었는데, 피부가 좋아 보인다는 거다. 꼬깃꼬깃 접힌 풍선에 바람을 넣으면 짱짱하게 펴지듯이, 피부도 마찬가지였다. 빵빵하게 부풀어버린 얼굴은 덩달아 주름 하나 없이 쫙 펴지게 되었고, 탱탱해지기 까지 해서 내가 봐도 놀랄 정도의 피부를 유지했었다.


문페이스는 회복 속도가 더뎠는데, 스테로이드를 3알 정도로 줄였을 때부터 티나게 빠지기 시작했다. 부어있던 얼굴을 몇 개월간 봐서 그런지 점점 뚜렷해지는 얼굴 윤곽이 어색해지기도 했다.


그 당시 다니던 요가 원장님께서는 짧은 시간에 몇 kg을 뺀 거냐면서 다이어트 비법을 물어보신 적도 있다. 약 때문에 잠시 부었던 거라 설명하자 "역시, 그 얼굴이 너무 안 어울린다 싶었어."라고 답하셨다. 부종과 살찜은 남들이 봤을 때도 확실히 티가 나는 듯했다.



 가장 놀라운 회복을 보여준 건 탈모였다. 싸이톡산 항암제로 인해 가속화되었던 탈모 증상은 스테로이드를 줄이는 과정에서도 계속되었다. 한창 머리가 빠질 때는 '이러다 골룸이 되는 건 아닐까? '하고 겁에 질려있을 정도였다.


스테로이드를 줄이고 탈모 증상이 잠잠해 들었을 때, 잔머리가 폭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키위나 복숭아의 털처럼 짧은 머리카락들이 탈모로 인해 빠져 버린 속 머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내 잔머리들은 겉 머리까지 뚫고 나와 정수리에서 분수대처럼 솟아올랐다. 잔머리의 힘은 또 얼마나 강한지, 스프레이를 써서 강제로 눌러봐도 하늘로 더 힘차게 뻗었다. 그런 잔머리 분수를 만지며 "내 애기 머리들이야~"라며 가족들한테 자랑하며 웃어 보였다.


20살 때부터 갑자기 얇아진 머리카락에 숱도 줄어들어 항상 단발만 고집해왔었다. 거기에 약으로 인한 탈모까지 겹쳐서 '이제 평생 긴 머리는 못하겠구나'라며 우울해있었는데, 반전이 생겼다.


"이건 논문감이야! 내가 논문 하나 작성해볼까 봐!"


 성인이 된 후 쭉 다니던 미용실 원장님께서 하신 말이다.


보통 빠진 머리카락만큼만 회복되는 게 정상인데, 나는 그 이상으로 나오고 있다고 했다. 기존의 머리카락과 새로 나온 잔머리의 길이를 맞추려고 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르러 갔었는데, 그때마다 원장님은 머리숱을 보며 신기해하셨다.


심지어 머리 길이를 어느 정도 맞춘 후에는 숱을 치는 상황까지 생겼다. 약을 끊은 후에는 파마도 했었는데, 보통 사람보다 한 면에 2~3개의 그루프를 더 사용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29년 만에 처음으로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뽐내고 있다.







 "언제쯤 편하게 잘 수 있을까요?", "부기가 빠지긴 하나요?",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긴 할까요?"

 

 외래 진료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던 질문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루푸스, 그리고 처음 먹어보는 스테로이드와 수많은 부작용들까지.


 '처음'이란 명사 앞에 나는 겁쟁이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불면증 개선을 위한 수면 유도제, 부기를 빼기 위한 이뇨제 등 의사 선생님께 약을 더 요청해서 먹고는 했다. 위장보호제도 약은 약이라며, 약의 개수와 부작용에 민감하셨던 의사 선생님과는 반대의견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의사 선생님 말대로 수면 유도제의 부작용도 연달아 왔다.


 수면 유도제를 먹는 날이면, 잠들었던 자세 그대로 눈을 뜨곤 했다. 정말이지 '기절'수준이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두통은 점심시간 이후까지도 지속됐다. 우울한 감정은 하루 종일 유지되었고, 밤이 되면 습관처럼 또 약을 먹고 강제 기절 상태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데 이것도 내성이 생기는지 약을 먹어도 잠이 오지 않기 시작했고, 그 시간만큼 두통은 날 더 괴롭혔다.

 

 이렇듯 약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연달아 오는 부작용들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쯤 되니 '내 몸은 약 없이는 스스로 버틸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게 되었고, 두려워졌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약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다. 내 몸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스테로이드를 줄이면서 오는 현상들에 대해서는 되도록 참아보려고 했다. 무기력증, 온몸 통증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못 버티겠다고 약을 먹었을 텐데, 이번엔 비상약으로 챙겨준 약들도 최소한으로 먹으며 버텼다. 그렇게 9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스테로이드 0알을 만들어냈다.


 

 그간 외래 진료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던 질문이 민망할 정도로 나는 회복했다. 위에 언급한 몇 가지 외에도 고혈압, 부정맥(심장 두근거림) 등의 증상들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스테로이드를 처음 먹기 시작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있고 회복은 어떻게 되는지 미리 알았다면 이렇게 겁을 먹진 않았을 텐데 아쉬울 뿐이다.


 현재 뚜렷한 루푸스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스테로이드는 꼭 필요한 약이다. 9개월의 시간 동안 스테로이드의 무시무시한 부작용과 그 회복을 직접 경험해보며 어느정도의 두려움은 떨쳐낸 듯 하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스테로이드를 또 복용하게 된다면, 전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치료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복용하지 않는게 최선이긴 하다.


 약을 먹으며 아직 오지도 않은 부작용을 미리 걱정하는 것, 또 부작용이 왔다고 해서 회복은 될까? 하는 생각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 치료에 '악'이 되기 마련이니, 언제나 중요한건 마음가짐이란걸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매 진료때마다 반복되는 나의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항상 같은 답을 하셨다.


 "약 줄이면 원래대로 다 돌아와 걱정하지 마! 얼굴 부어도 이쁜데 왜 그래~"

 

  그리고 내 손을 토닥이며 말해주셨다.


 "언젠간 좋은 날이 꼭 올 거야, 힘 내보자!"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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