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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묘 May 26. 2020

나으려고 먹는 약 맞아?

스테로이드 부작용


 루푸스 치료를 위해 처음 먹게 된 소론도의 양은 10알. 몸무게에 따라 최대로 먹을 수 있는 양이 달라진다고 하는데, 나는 최대치 었다. 그 당시 스테로이드 약에 지식이 없었던 터라 몸이 보내는 신호대로 행동했고,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인생 최대의 몸무게를 찍었다. 밥 먹을 힘도 없어 억지로 끼니만 때우곤 했는데, 약을 먹은 후 식욕이 왕성해져 쉴 틈 없이 먹어댔다. 잘 먹기 시작하니까 가족 모두가 좋아했고 병이 다 나은 거처럼 행복했다. 아파서 삐쩍 말랐던 몸에 드디어 살이 붙기 시작했고, 덕분에 힘도 넘쳤었다. 5kg짜리 귤 한 상자를 마치 과자봉투처럼 한 손으로 흔들며 집에 들어와 엄마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입 안에 침이 과하게 돌기 시작했고,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었으며 배부른 느낌도 전혀 없었다. 밤/낮 할 거 없이 폭식이 시작되었다.

 

 문페이스(moon-face). 터질 것 같은 얼굴.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빵빵해졌다. 동그란 양 볼과 코, 호빵맨이었다.

무쌍의 한을 가지고 살았는데 이때는 간혹 쌍꺼풀도 생겼었다. 턱과 목의 구분은 사라졌고, 목 뒤부터 어깨까지 단단한 살들이 자리 잡았다. 하루하루 꽉 찬 보름달로 변해가는 느낌. 사진을 찍는 게 두려웠다. 포토샵도 문페이스 앞에선 그림판이 된다고나 할까? 소용이 없었다. 외형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작용으로 스테로이드를 먹기 싫은 첫 번째 이유가 되었을 정도이다. 이름만 귀엽다. 달덩이 얼굴.


 불면증. 잠들기 위해 침구도 바꾸고,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디퓨저와 자연의 소리도 시도해봤지만 다 허사였다. 밤만 되면 더 또렷해지는 정신이 두려울 정도. 잠이 들지 못하는 시간만큼 내 병에 대한 불안함은 커져만 갔고, 해가 뜨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길어야 1~2시간? 아침식사 후, 다시 10알의 스테로이드를 먹으면 나는 약에 각성이라도 된 듯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장 두근거림. 하루는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차올랐다. 처음 겪는 상황에 덜컥 겁이 났다. 심장이 짓누르듯이 아파왔고, 힘이 다 빠져버려 택시에 내려서는 그 자리에 몇 분을 서있었다. 스테로이드 때문에 기운이 넘치다가도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컨디션 때문에 외부활동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증상이 밤만 되면 유독 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고혈압. 스테로이드 고용량 복용으로 인해 고혈압이 생겼다. 한 번은 자다가 갑자기 코피가 터졌었는데, 40분 동안이나 지속됐다. 코에서 덩어리로 나오는 피 때문에 수건 한 장을 다 적셨고, 현기증도 심해져 급한 마음에 응급실까지 갔다. 그리고 혈압을 재봤더니 최고혈압이 190까지나 올라가 있었다. 약을 복용하기 전에는 저혈압이었는데, 약의 무서움을 또 한 번 느꼈다.


 부종. 특히 하체에 집중되었다. 아빠 다리를 하고 있으면, 양쪽 허벅지에 발가락 모양대로 살이 패일 정도였다.

종아리에 찍힌 발자국

이렇게 한 번 눌린 살은 돌아오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항상 소금물에 담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찌뿌둥함이 늘 나와 함께했다. 마치 바닷물을 잔뜩 먹은 스펀지 같았다. 그리고 부어오른 살들은 아무 감각이 없었는데, 이 또한 날 소름 끼치게 만든 부분이었다.


 탈모. 원래도 머리숱이 없어 긴 머리는 상상도 못 했었는데, 내 머리까지 건드리다니 야속했다. 머리카락은 민들레 씨가 흩날리듯 작은 충격에도 우두두 떨어지곤 했다. 머리를 안 감고는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던 성격이었지만, 빠지는 머리카락이 두려워 3일에 한 번씩 감았다. 가장 이쁠 2~30대 여성에게 주로 발병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적인 모습들을 모두 앗아가는 루푸스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우울증. 분명 이전보다 덜 아프려고 먹는 약인데, 온갖 부작용이 날 더 지치게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의 변화가 찾아왔다. 이게 과연 나한테 맞는 약일까?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치료 이전이 더 편안했다. 버거운 하루를 잠들어서라도 잊고 싶은데, 이 빌어먹을 약은 내게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매일이 지옥이었다. 약으로 버티는 삶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졌으며, 이렇게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또 남들이 웃는 모습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저 사람들은 뭐가 저렇게 좋다고 웃어? 그리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 뭔지 모를 억울함에 울분이 터져버렸다. 노래에서 흘러나오는 하이톤의 목소리들이 내 귀를 마구 찌르는 것처럼 느껴져 날 더 예민하게 만들곤 했다. 이때 깨달았다. 시끌벅쩍한 노래가 신나는 이유는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들었기 때문이란 걸.

신나는 노래를 듣는다고 기분이 절대적으로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 감정과 동일한 슬픈 영화, 드라마, 음악들을 가까이하게 되었고, 결국 우울의 늪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스테로이드성 약물은 놀라운 양면성을 보여준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감염증 유발, 내분비계, 소화기계, 정신/신경계, 근/골격계, 눈, 혈액, 심장, 피부, 과민증 등 신체의 어느 곳에서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스테로이드가 내분비 장애, 류마티스성 장애, 피부/알레르기/안과/위장관계/호흡기계/혈액/종양/부종/신경계 질환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치료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피부질환을 개선하기도 하지만 피부에 여드름, 가려움증 등 새로운 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는 알 수 없는 약.


 루푸스 생활 4년 차. 단백뇨가 꾸준히 나왔기 때문에 아직 관해기(일반적으로 완화가 5년간 계속될 때)에 접어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복용 여부에 따라 내 나름대로 활성기/관해기 기준을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각 2번의 활성기와 관해기를 거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3번째 활성기를 맞았다.


 과연 이 약이 날 낫게 하는 게 맞을까?라는 의문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은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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