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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끼묘 May 24. 2020

안녕, 루푸스

루푸스, 루푸스신염 확진



  어지러움증이 절정으로 치달아 근무시간에 엎드려 있기를 며칠째. 동료직원이 류마티스 내과를 추천해주었다. 동료도 류마티스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비슷한 증상이 몇 개 겹쳤던 것이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곧바로 병원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조퇴를 하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 그 길도 나에겐 순탄하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겨우 도착한 병원. 증상이 복합적이라 제대로 된 병명이 나오기 전에는 아무 약도 지어줄 수 없다고 한다. 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


'아.. 일주일을 또 어떻게 참지..?'라는 생각을 하며 병원 문을 나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쾅-.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참아왔던 눈물이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렇게 소리 없는 눈물만 흘리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해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동네 작은 병원을 간 터라 응급실이나 입원실은 없었고, 급한 대로 처치실에 있는 작은 침대 위에 누워있고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검사 결과 날. 일반인 평균의 20배가 넘는 단백뇨가 나온다고 했다.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이 외의 여러 수치들도 좋지 않았고, 당장 대형병원으로 가라며 소견서를 작성해주셨다. 도대체 내 몸 안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덜컥 겁이 났다.


대형병원에서 또 한 번의 검사가 이루어졌다. 혈액 튜브 10통 정도의 피를 뽑았는데, 한 통씩 채워질 때마다 제발 아무 일 없게 해 달라며 속으로 기도했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데까지 또 일주일.. 대체 무슨 병이기에 이토록 맘 조리게 하는 걸까.



 괘씸했다.  







 약 한 달간 날 괴롭혔던 증상들의 병명이 나왔다. 전신 홍반성 루푸스. 속이 다 시원했다. 생소하지만 병명을 알았으니 치료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았었나 보다.


 루푸스는 원인 모를 난치병이었다.








 신장내과에 협진이 들어갔다. 변기 안을 가득 채웠던 거품뇨들이 뭔가 큰 문제를 일으켰나 보다. 신장 조직검사를 끝내고 최종적으로 나온 최종 진단명은 루푸스신염 4.

 

루푸스는 뭐고, 루푸스신염은 또 뭘까?. 처음 듣는 병명에 혼자만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첫 루푸스 확진을 받았을 때부터 조직검사 결과까지 약 3주. 그 시간 동안 루푸스에 대해 많은 걸 찾아봤지만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의사 선생님께 병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가닥도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내린 진단명에 나와 부모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정적만 흘렀다. 그리고 이어진 의사 선생님의 계속되는 설명에 조금이나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전신 홍반성 루푸스. 사전적 정의를 빌려 말하자면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피부, 관절, 신장, 폐 등 신체 어느 곳에서도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 증상이 매우 다양해 '천의 얼굴'이라 불리고 있다. 아직 확실한 원인과 치료법도 없는 상태에서 확진자수만 급증하고 있고, 확진자 대부분이 가임기의 젊은 여성인 것으로 보아 여성호르몬과 관련이 있다는 짐작 정도만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또한 루푸스신염은 내 면역체계가 나의 신장을 '적'으로 판단 후 공격하여 염증을 일으킨 것이다. 루푸스신염은 신장 조직검사를 통하여 1~5군으로 분류하는데, 그중 4군이 '미만성 사구체신염'으로 가장 많이 나타나며 예후가 좋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가 루푸스신염 4 군인 것이다.


 무엇이든 중간만 하면 좋으련만, 안 좋은 건 꼭 일 순위이다!








 드디어 잡힌 치료계획. 루푸스신염 4군은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며, 10알의 스테로이드와 함께 '싸이톡산(cytoxan)'을 투여하기로 했다. 싸이톡산은 항암제로 면역억제의 기능이 있어 루푸스신염에 많이 쓰이고 있는 치료제라 한다. 정맥 속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 2시간가량 일정하게 주입하는 방식으로 수액을 맞는 것과 동일하다. 항암제이다 보니 셀 수 없는 많은 부작용이 있어 우선 소량만 주입해보자고 하셨다. 2주에 1번씩 2박 3일의 입원을 통해 총 6번을 맞기로 했다.

 

 평소 답답한 걸 워낙 싫어하는 성격이라 하루도 집에 못 있는데, 입원이라니.. 벌써부터 숨이 막혀왔다. 항상 꿈꿔왔던 나의 20대 중반. 25살 10월~12월, 3개월 동안 나의 입원 생활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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