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선생님과의 신뢰
두 번째 루푸스 활성기는 처음에 비해 여유가 있었다. 10알의 스테로이드로 다시 시작된 치료였지만, 이전의 경험을 생각하며 부작용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스테로이드로 인해 왕성해지는 식욕과 몸의 붓기. 이 두 가지를 잡기 위해 모든 간식을 끊어버렸다. 이전에는 닥치는 대로 먹어대서 인생 몸무게에 도달했었는데, 이번에는 철저한 식단관리를 했던 것이다.
정해진 3번의 식사 외에는 절대 먹지 않았으며, 저녁 7시 이후에는 물도 최소로 먹었다. 그러다 보니 전보다 부종이 확실히 줄었다. 간간히 다리와 복부에 물 주머니를 달고 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전에 비하면 이 정도는 감사할 정도였다.
또 요가와 가벼운 산책으로 무리하지 않는 한에서 계속 움직이려 했다. 이런 노력은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었고 동시에 우울증도 잡아주었다. 그리고 루푸스 우울증을 유발하는 첫 단계인 불면증.
전에는 잠이 들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곤 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몸이 지쳐가는데, 잠까지 들지 못하니 하루하루가 끔찍할 뿐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스테로이드를 먹을 땐 이 또한 즐겨보기로 했다.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진 거라 생각하고, 잠이 들지 않는 새벽시간을 독서와 영화를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다 보니 잡생각이 사라져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지난번 스테로이드 복용 때 가장 두려웠던 건 '부작용이 회복되긴 할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됐었다. 하지만 1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부작용을 모두 회복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간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약을 줄이고, 부작용이 줄어들면 제일 먼저 뭘 할까?' 라며 회복 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버텼었다.
그렇게 나는 스테로이드 10알에서 7알, 5알 빠른 속도로 약을 줄여나갔고, 첫 번째 활성기보다 적은 부작용으로 스테로이드를 끊을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약을 줄이고, 몸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주치의 선생님과의 상호 신뢰였다.
류마티스내과에서 루푸스신염을 치료하기 위해 신장내과로 협진을 받았었다. 신장조직검사를 통해 내가 가장 예후가 안 좋다는 '루푸스신염 4군'임을 제일 먼저 알려주신 송교수님. 부모님과 처음 내 병명을 들었을 때 우리는 그 누구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었다.
결과를 받기 전부터 제발 루푸스 신염 4형 만은 피해 가자 했는데, 루푸스 확진 때도 그렇고 나의 기대는 언제나 철저하게 무시당했었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송교수님께서는 부모님과 나를 번갈아 보시더니 한 마디 하셨다.
"제가 환자분보다 더 어린 딸이 있어요. 딸을 보살핀다 생각하고 잘 치료해볼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라고. 이 한마디가 5년이 지난 지금도 나와 가족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아마 송 교수님은 모르실 거다.
외래 진료는 정말이지 번번이 긴장되고 외로운 일이었다. 주기적으로 숙제 검사를 하듯 채혈을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약의 개수가 정해지게 된다. 그래서인지 채혈하기 전날에는 부쩍이나 예민해지곤 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병원에서 달래주는 건 송교수님 뿐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면 언제나 활짝 웃으시며 반겨주셨다. 대기환자가 많아 진료시간이 길어져도 내 진료를 서두르신 적은 없었다. 항상 밝은 표정의 송교수님께서 유일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는 순간은 검사 결과를 확인할 때이다.
송교수님은 5년 동안이나 외래진료 때마다 쏟아지는 나의 질문에 "하면 안 돼"라는 말을 하신 적이 없는 분이다. 아무래도 신염이다 보니 먹는 것에 제약이 많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맛있는 거 많이 먹어도 돼"와 "맛있는 거 적당히 먹어야겠다."로 상태를 알려주셨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오로지 나에게 맡기셨다.
스테로이드 약의 개수를 정할 때도 내가 심적으로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는지가 우선이 되었다.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앞둔 외래진료 날, 스테로이드 10알로 다시 치료를 시작하잔 말에 눈물이 고여버렸다. 내가 울보인 건 가족들보다 송교수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신다. 송교수님 앞에서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기에..
온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약으로 인해 온 몸이 퉁퉁 부은 걸 보여드리긴 싫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송교수님께서는 손을 잡아주시더니 아버지의 환갑잔치를 잘 치르고, 그 뒤부터 먹어보자며 처방전을 작성해주셨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는데, 환갑잔치 후 약 한 달 뒤에 첫 가족 해외여행이 계획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송교수님과 나는 해외여행 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개월 주기로 있던 외래 진료를 2주 단위로 줄였으며, 송교수님께서는 빠른 시일 안에 약을 줄여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나도 송교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철저한 저염식 식단과 바른생활로 컨디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렇게 여행을 3일 앞둔 외래진료 날, 송교수님께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송교수님과의 완벽한 호흡이었다.
이렇듯 송교수님은 숨 막히는 병원생활에서 나에게 여유를 주는 산소호흡기 같은 분이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치료에 있어 중요한 건 주치의 선생님의 대한 신뢰와 '병'을 치료하는 스타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약에 의존하는걸 굉장히 싫어하는 성격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몸이 스스로 치유하도록 기다려본다. 그리고 어딘가 몸이 아파서 느끼는 통증보다, 아프다는 그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아한다. 그래서 몸이 안 좋더라도 아픈 걸 모른척하는 경향이 있다.
송교수님은 모든 약에는 다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하신다. 약에 의존하여 병을 낫게 하면, 약을 줄였을 때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스테로이드를 과하게 오래 복용하면 당장의 단백뇨는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살아온 날보다 부작용을 안고 살아갈 날들이 더 많다며 최소한으로 쓰려고 하신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갖가지 증상들에 대해 "누구나 그럴 수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해주신다. 내가 쫄보라는 걸 아시는 듯하다.
또 위에서 말했듯이 송교수님은 내 행동과 식습관에 크게 제약을 두지 않으신다. 루푸스는 철저한 자기 관리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하나하나 제약을 두면 내가 의지를 잃어버릴까 하는 염려로 그러시는 것 같다. 그러니 단어를 조금씩 순화하여 '나를 믿고 맡기시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적는 이 글들에서 여러 난관을 겪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많은 이유 중 송교수님의 역할이 컸다. 외래진료를 받으러 가기 전 날, 아니 진료실을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치료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찰 때가 몇 번 있었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서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어쩌면 평생 다녀야 할 이 병원에 들어서는 걸로도 숨이 막히고, 채혈로 인해 양팔이 멍으로 가득 차 한 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다니는 내 꼴이 너무 가여워 못 봐주겠다고. 이렇게 사는 게 진짜 사는 게 맞냐고. 그냥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견딜 수 있는 만큼 견디다가 아무도 모르게 조용한 곳에서 남들에게 잊히고 싶다고. 그러니 이제는 병원에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매번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신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마다 잘 지냈냐며,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한 마디씩 해주시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위로가 되었다. 또 작은 수치 변화에도 나에게 티 내지 않으시려고 노력하며 걱정하시는 송교수님의 얼굴을 보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아팠던 증상들을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송교수님의 대답에 "네?" 하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라는 머쓱함이 가득했다. 그리고는 다음엔 약을 꼭 줄이겠다며 다시 한번 다짐하고 진료를 끝낸다.
3개월 동안 쌓여있던 루푸스의 대한 두려움을 송교수님과의 외래진료를 통해 극복하는 듯했다. 그리고 송교수님 덕에 희귀 난치병 루푸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앞으로도 송교수님은 루푸스 생활에 있어 나에게 희망을 주시는 감사한 분으로 함께하고 싶은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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