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푸스와 함께하는 삶
앞선 글에 이어 지금 마지막 페이지를 쓰기까지는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가볍게 지나갈 거라고 믿었던 세 번째 활성기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단백뇨로 인해 그 기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처음 3~4g으로 시작했던 단백뇨는 4년의 시간 끝에 1g 미만으로 줄어들었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이번 년 초중간부터 갑자기 높아지기 시작했고 5g이란 최고의 양을 찍어버렸다. 엎친데 덮친 것일까? 루푸스 확진 이후 내내 안정적이었던 신장 수치까지 말썽을 일으켜 나와 송교수님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다행히 신장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3~4g의 단백뇨는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
루푸스 확진을 받은 후, '혼자만 이상한 나라에 와있는 기분'이 지속되었다. 루푸스에서 '완치'라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평생을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정보는 어떤 게 진짜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모호했으며, 같은 진단명을 가지고 있는 지인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 불안했고, 지독하게도 외로웠다.
그리고 이러한 외로운 생활 속에서 마음을 달래주었던 건 '글 쓰기'였다. 어렸을 적부터 노트에 짧게나마 끄적이던 습관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꼭 커서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해왔었다. 하지만 취업을 하고 당장의 하루하루를 버텨내느라 자연스럽게 꿈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아니 아예 까먹고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런데 그 꿈을 의아하게도 루푸스를 앓고 다시 꾸게 되었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가장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다. 밉고 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운 루푸스이지만 그 덕에 다시금 꿈을 찾았다는 거에 조금이나마 고마운 마음도 든다.
인터넷에 수많은 글들이 있었지만 루푸스 확진부터 치료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내용은 찾기가 드물었다. 처음에는 루푸스를 앓고도 과연 정상 생활이 가능한지, 지금 겪고 있는 약의 부작용들이 회복되기는 하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루푸스를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온통 물음표 투성이었다.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 루푸스를 겪어오면서 경험해온 일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우울하게 보내는 시간이 반 이상은 줄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루푸스를 통해 다시 꾸게 된 꿈인 만큼 그와 관련된 글을 써보기로 했고, 지금 그 마지막 페이지를 작성하는 중이다.
루푸스에 대해 전문적인 정보가 알고 싶어 이 글을 읽으셨다면 늦었지만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처음부터 루푸스 확진을 받고 이후에 겪어온 모습과 그 당시 느꼈던 감정 변화 위주로 글을 작성했기 때문이다. 루푸스는 '천의 얼굴'이라고 불릴 만큼 그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로운 게 그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은 일부러 배제하게 됐다.
그렇기에 루푸스 확진을 받은 이후 치료과정에서 느꼈던 두려움, 외로움, 절망, 우울 그리고 희망, 의지, 믿음 등을 보다 숨김없이 작성할 수 있었다. 루푸스 확진을 받고 하늘이 내린 벌이라며 모두와 단절해버리려고 했을 때부터 그래도 덕분에 잃어버린 꿈을 찾았다고 조금이나마 고마워하는 모습까지 말이다.
그리고 루푸스 확진을 받은 후, 희귀 난치병이란 말에 미리 겁먹고 앞으로 행복할 수 있는 많은 날을 부정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되고 싶은 것이 이 글의 최종 목표이다.
5년의 루푸스 생활을 겪으며 느낀 건 희귀 난치병 루푸스라 하여 특별할 건 없다는 거였다. 평소에 관리만 잘하면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소화하는데 지장이 없으며, 병이 없다 해도 관리는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푸스 신염으로 먹는 거에 예민하고 소심해졌을 때 남자 친구한테 투덜거린 말이 있었다.
"나는 평생 이렇게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관리하며 살아야 하나 봐."라고.
항상 '맛있는 거 먹고 싶어'라는 말을 달고 사는 내가 시무룩하게 말하자 남자 친구는 대답했다.
"너한테 안 좋은 음식은 다른 사람한테도 안 좋을 거야. 그런데 그걸 먹는 사람들은 건강을 소비하고 있는 거고, 그걸 참을 줄 아는 너는 건강을 축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며.
누구나 하고 싶고, 누구에게나 맛있는 건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꾸준한 관리를 통해 아무 대가 없이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그 대가를 미리 치르고 꾸준히 관리하는 사람 그리고 당장의 건강에 대한 자만심으로 관리를 소홀히 하다 갑자기 대가를 치르게 된 사람의 모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나는 컨디션이 좋으면 3~6개월에 1번, 나쁘면 짧게는 2~3주에 1번씩 외래진료를 통해 계속해서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큰 병이 생기지 않게 미리 검사한다. 번번이 긴장되고 번거롭기도 한 과정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한다면 마음이 편해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걸 보면 아무래도 루푸스는 하늘이 내린 벌이 아니라 제 몸을 챙기지도 못할 만큼 열심히 살아온 우리에게 잠시 쉬어가라는 눈치 없이 과격한 하늘의 배려인 듯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서툰 나의 글을 읽어주는 많은 분들에게 정신력이 강하다는 댓글을 종종 받았다. 과연 내가 그럴까..?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는 덤덤히 글을 적고 있지만 실은 무섭다. 더 솔직히 말하면 단백뇨가 5g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핑 돌았을 만큼 루푸스를 완전히 모른척하기는 아직 무리인 것 같다. 외래진료 때마다 컨디션에 따라 변하는 수치들은 5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매 순간 날 긴장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스트레스가 최악이라 언제나 둥글둥글하게 지내려고 노력 중이지만,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예민함은 어쩔 수가 없다. 또 커피가 루푸스에 나쁜 걸 알지만 몸에서 강력하게 카페인을 필요로 할 때는 모른 척 한두 잔씩 마시기도 한다. 이렇듯 병원 진료 때마다의 긴장은 외부 영향이나 일상생활에 따라 언제든 쳇바퀴처럼 반복될 수 있는 상황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이 순간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갈 거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조금만 더 흘러준다면 나는 더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해 잘 견뎌낼 거라 장담한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