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묘 Jun 16. 2020

잊고 살아야, 사라지는

나만의 루푸스 치료법


  "언젠간 좋은 날이 꼭 올 거야, 힘 내보자!"


 외래 진료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 항상 해주셨던 말씀이다. '정말 그런 날이 오긴 올까?'라는 의심과 확신을 번갈아 하며 약 1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나에게도 좋은 날이 왔다.


루푸스 치료제인 스테로이드를 줄이는 과정에서 부작용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고, 외관상으로도 부기가 모두 빠져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루푸스 확진 이전의 삶을 돌아보면,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삶을 살아왔다. '휴식=게으름'이라는 고지식한 생각에 빠져있었고, 때문에 언제나 바쁘게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절대 피해를 줘서는 안 돼!'라며, 내 몸이 힘들어지는 한이 있어도 타인을 우선시하곤 했었다.


그런데 루푸스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를 먼저 챙기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더불어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절대 영원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루푸스 확진 이후 처음 맞는 평온한 일상에 제일 먼저 도전했던 건 '화장'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화장을 하나 안 하나 똑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한다 해도 어울리지 않다는 소리만 들었다. 그래서 '이럴 거면 귀찮은 거 뭐하러 해!'라며 화장에는 손을 놓아버렸는데, 그 덕에 일명 똥 손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문페이스로 얼굴이 빵빵 해졌을 때는 진작 이쁘게 좀 꾸며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었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는 얼굴이 너무 불쌍해 보였기 때문이다.


문페이스로 인한 부기가 빠질 때쯤 회사 근처 메이크업 학원을 알아봤다. 등록한 강의는 '데일리 메이크업'으로 일상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화장법이나 모임용 화장법 등을 1:1로 알려주는 수업이었다. 1번에 10만 원이나 하는 강의료가 부담되긴 했지만, '나를 위한 투자야!'라며 3회를 등록했다.    


메이크업 강의 때는 풀 메이크업에 머리스타일까지 만져주곤 했는데,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몇 개월 전의 나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이전보다 생기 넘쳤다. '진작에 나한테 신경 좀 쓸 걸..' 이라며 씁쓸한 미소도 지어봤다.


 "한참 꾸미고 이쁠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서.."라며 말을 잇지 못하셨던 어머니께서 보면 딱 좋아하실 모습이었다.


메이크업 강의가 끝나면 항상 친구를 만나곤 했는데, 약속 장소는 주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영화도 보고, 밥을 먹는 등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아픈 걸 잊곤 했다. 그리고 이런 일상들이 쌓여 <나만의 루푸스 치료법>이 되었다.  



  몇 개월 동안 끊었던 지인들과의 만남도 다시 이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대화는 주로 그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이유들을 설명하곤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던 지인들은 고맙게도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라며, 그간 내 수고를 위로해주었다.


반년 넘게 루푸스신염으로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고, 불어버린 몸에 거동도 불편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래서 이런 상태로 누군가를 만나는 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피하기만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어려움이 있을  본인들을 찾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니, 문득 지인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팠던걸 모르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도 가져보고 싶었다. 몸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몇 개월간 거울로 봐왔던 모습이 강하게 남아서인지 어딘가 계속 기운 없고 아파 보였다. 그 당시 만나던 친구들에게 "나 아직도 아파 보여? 다시 붓는 거 같지?"라는 말을 입버릇 처럼 했을 정도였다.


 "하나도 안 아파 보여, 그리고 넌 원래 이뻐서 괜찮아"라며 말해주는 착한 친구들 덕에 안심을 하긴 했지만, 알 수 없는 결핍에 항상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볼링 동호회를 가입하게 되었다. 몸을 쓰는 체육 동호회여서 그런지 동호회 사람들 모두 건강해 보이고 활기 넘쳤다.


그리고 동호회 분들이 볼링장에 상주하고 있었는데, 컨디션에 따라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회사가 끝나면 볼링장으로 하나 둘 모여 무거운 볼링공을 훅-훅 굴리고, 기본 4~5게임씩 하는 동호회원들의 체력은 나에게 건강해야겠다는 자극제가 되었다.


동호회 활동이 익숙해지고, 개인적인 얘기를 주고받던 중 우연히 새로운 걸 알게되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이 있었는데, 최근에 백혈병 투병을 끝내고 동호회에 들어온 거라고.그분도 바쁘게만 살아오다가 아프고 나니 본인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삶을 즐기려 가입했다면서 말이다. 


 내 눈에는 건강하게만 보였던 분들이 다들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을 갖고 있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은 동호회분들도 "네가?"라며 아픈걸 전혀 몰랐다고 한다.


 성공이었다!




 

 아픈 걸 잊고 지내는 건 주변 사람들의 역할도 컸다.


 루푸스 확진 초창기에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과한 걱정은 오히려 날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몸도 안 좋은 애가 어딜 돌아다녀!"


 "밖에 음식은 먹지 말고 무조건 집 밥만 먹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데 넌 성격이 너무 예민해! 성격을 좀 고쳐봐!"  



등과 같이 내 행동에 제약을 두는 말들. 그런 말 안에서 나는 점점 더 아픈 사람으로 낙인찍혀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기꾼([꺼져버려,루프스]에 나오는 약 팔이)을 만나게 되었고, 가족의 과한 걱정이 날 마치 죽을병에 걸린 사람처럼 몰아간다며 소리쳐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퉁퉁 부은 몸으로 아버지와 여행 TV 프로그램을 보던 중 갑자기 서러워져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빠 나는 이제 여행 못 가겠지..?", 라고.


 뒤이어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셨다.


 "왜 못가? 갈 수 있어. 빨리 나아서 가면 되는 거지." 라며.



그리고 아버지 말대로 나는 루푸스 확진 이후 5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루푸스로 인해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건 간단했다. 무리한 걱정보다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네가 왜 못해?'라며 툭툭 던졌던 말. 그런 말들이 오히려 '나도 할 수 있어!'라며 용기가 되었다.



 또 일명 쫄보인 날 위해 내 몸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별 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게끔 도와준 남자친구의 역할도 컸다.


 "나 아무래도 이상해. 갑자기 속도 울렁거리고 살도 막 찌는 거 같고 약 부작용인가?"라는 내 말에.


 "밤마다 그렇게 먹으면, 누구나 그래." 라던가.


 

 "여행 후유증이 너무 심해. 여독이 장난 아니야. 내가 면역력이 약하니까 이러나 봐"에


 "너처럼 돌아다니고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냐!?"라고 답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심각하게 생각했던 몸 상태도 저런 대답을 듣고 나니 꼭 '엄살'을 부리는 거 같았다. 실제로 '엄살쟁이'라 불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걱정돼서 진지하게 얘기했던 증상들을 아무렇지 않다 하고, 오히려 내 행동을 문제 삼는 게 속상했었다. '왜 몰라주지?' 라면서.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나에겐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뒤에서는 온갖 검색을 해봤다는 걸.


이런 행동들은 나에게 생기는 증상들이 굳이 '루푸스'때문이 아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별 거 아닌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그래서인지 전에는 몸의 작은 변화에도 예민해지고 걱정했는데, 점점 나 자신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여행 후에도 연달아 잡힌 약속들을 소화하느라 갑자기 신경통이 왔다면? 전 같았으면 걱정하고 설레발쳤을 거다. 그런데 이젠 내 몸과 대화를 시도한다. '뭐야? 왜 이래?? 힘들어?!'. 그럼 이내 통증으로 반응이 온다.


 '... 알겠어 당분간 자중할게...' 몸의 신호에 대한 내 대답이다. 이렇게 몸과 소통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약 5년의 루푸스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은 루푸스는 '잊고 살아야, 사라지는 '이라는 거다. 루푸스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스트레스'가 꼽힌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으로 불리는데, 루푸스에서는 유독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루푸스에 걸렸다는 자체로도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다 보면 좋은 수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루푸스 환우 카페에서 본 글이 있는데, 루푸스로 인해 시어머니에게 모진 소리를 듣는다며 올린 거였다. 글의 내용은 본인이 아파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니 시어머니가 '공주병'에 걸려왔다며 구박을 했다는 거다. 그 글을 보고 난 '어? 맞아. 딱 공주병이네!'라는 생각을 했다.


루푸스는 여성들에게 주로 발병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고 그러니 무리하는 일도 하면 안 되는.. 딱 공주병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가족들에게 먼저 


 "난 진짜 전생에 공주였나 봐~ 이쁜 거만 보고 들으면서 살 거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혹시나 루푸스를 앓는 지인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이 된다면 '시간'을 선물하라 추천하고 싶다. 보통 건강식품을 떠올리겠지만 의사 허락 없이 먹지 못하는 식품은 되려 <먹지 못하는 미안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 루푸스임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딱이다.


 매일 오가는 집-병원이 아닌, 잠시 마음을 환기할 수 있도록 산과 바다가 보이는 곳의 카페, 식당 그 어디든 좋다.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들로 시간을 채워간다면, 그 순간만큼 루푸스에서 벗어난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 자부한다.


 

  



 






 

이전 08화 꺼져버려, 루푸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