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 ~ 1라운드
2010년대 중반, 유럽과 미국 등지가 ‘탐폰세’ 폐지를 위한 움직임으로 들썩였다. 탐폰세는 생리용품에 부과되는 부가세, 소비세, 사치품세 등의 세금을 통칭하는 용어다. 패드형이 아닌 탐폰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서구 국가에서 명명되어 ‘탐폰세(tampon tax)’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5년 경 탐폰세 폐지 운동이 거세지며 캐나다와 미국 일부 주, 영국 등에서 전면 폐지가 이루어졌으며, EU는 생리용품에 최소 5%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표준 규정을 2022년까지 삭제할 예정이다. 한편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 독일, 멕시코, 중국 등 많은 나라들이 현재에도 생리용품에 5~27%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1]
국제 사회를 휩쓸었던 ‘탐폰세’ 논쟁은 한국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주제인데, 흥미롭게도 그 이유는 한국이 이러한 문제를 앞서 겪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대부분의 국가보다 10년 이상 앞선 2003년, 생리대에 붙는 10%의 부가가치세를 면세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2004년부터 생리대는 면세 대상이 되었다. 생리대 가격 절감이라는 근본적인 목적이 제대로 달성된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생리 운동사에서 법제도를 변화시키고 전국민적인 인식 전환을 이끌어낸 성과는 분명 기념비적이다. 2004년 생리대 면세가 이루어지기까지, 다사다난하고도 흥미로운 과정을 살펴보자.
사건의 발단
2002년 여름, 한국여성민우회는 생리대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캠페인을 실시했다. 앞서 전국 8개 도시(서울, 고양, 김포, 군포, 춘천, 원주, 광주, 진주) 거주 여성 대상 생리대 인식 설문조사를 실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거리에서 가격인하 캠페인을 열거나, 토론회 및 기업과의 간담회를 개최하고, 정부에 건의문을 제출하는 등이었다. 민우회는 ‘생리대 부가가치세 면세’가 시급한 과제임을 느끼고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며, <우리가 생리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라는 글을 게시하며 공론화의 배경을 설명하고, 그 필요성을 주장했다.
“생리대와 관련된 관심은 1990년대 중반부터 여성학을 전공하는 그룹에서 ‘월경’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 연장선에서 생리대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특히 2001년의 제3회 월경 페스티발에서 주최측은 생리대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를 계기로 여러 언론매체에서 생리대의 안정성 및 가격의 문제점 및 대안적 생리대에 대한 보도를 통해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중략) 우리는 생리대와 관련하여 여성의 입장에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생물학적으로 평생의 상당 기간을 생리하는 여성에게 있어 생리대는 생활필수품이라는 인식 속에서 생리대 부가가치세 면제를 요구한다. / 이는 일상의 불평등, 생활 속의 불평등화된 제도들 중 대표적인 세금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이를 통해 성인지적(姓認知的) 정책의 패러다임을 도입, 확산하는 데 기여하려 한다. 성인지적 정책이란 남성과 여성의 특성과 차이를 반영함으로써 정책의 효과가 양성간에 형평성과 평등을 가져오도록 하는 정책을 말한다. (중략) 생리대 캠페인이 평생의 1/8을 생리를 하는 여성들에게 건강의 문제, 안전의 문제를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동시에 여성건강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 여성의 일상조건과 그것이 건강에 미치는 상관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에 누구보다 많은 피해를 받는 여성들을 위해 일상성에서의 건강증진 활동이 모색될 필요성이 있다. / 성인지적 관점에서 여성건강에 미치는 제 요인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2]
1라운드: 영세율안
앞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92.6%가 ‘여성의 필수품으로서 부가가치세가 면세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캠페인의 영향으로 생리대 면세에 관한 관심이 커지자, 재정경제부는 “생리대는 하나의 상품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이를 일축했다. 부가세 면제 대상은 “대다수 국민이 이용하고 있어 과세할 경우 가격 및 물가 상승이 동반되는 특정 재화나 용역(농산물 등 생활필수품이나 의료, 서비스용역)”에 국한한다는 것이었다.[3] 가임기 신체라면 누구나 사용해야 하는 생리대의 산업 규모를 고려할 때, 재정경제부의 입장에서 이로 인한 조세 수입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한편, 2002년 당시의 조세특례제한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가가치세는 조세부담의 역진성(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조세 부담을 지는 것) 및 사회복지적 차원에서 면세하거나 영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 면세대상범위에 ‘미가공식료품과 농·축·수·임산물, 수돗물, 연탄, 무연탄, 여객운송역’ 등과 같은 기초생활 필수품과 용역, ‘국민주택, 의료보건용역·교육용역·보험용역’ 등과 같은 국민후생을 위한 재화 및 용역이 포함되어 있으며, 영세율 적용의 경우는 주로 수출거래에 대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사회복지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자료를 두고 민우회 측은 일회용 생리대 면세 정책이 여성 생필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역진성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재생산을 위한 ‘모성보호’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함을 지적했다. 민우회가 마련한 토론회(2002.8.21)에서는 모성을 “생리, 임신, 출산 등 생명의 재생산을 위해 여성만이 가진 본래적인 기능”이라고 규정하고, 관련법에서 취업여성에 대한 모성보호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을 넘어 모성 그 자체에 대한 보호가 이루어져야 함이 이야기되었다. 또한, 성에 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더라도 수직적 형평성, 즉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동일한 가격을 지출해 저소득층의 납세비율이 높아짐을 문제삼는 입장도 있었다. 같은 토론회에서 생리대 가격 인하의 효과를 내려면 면세가 아닌 영세율 적용(제품 생산단계 전반에서 부과되는 세금을 없애는 것)이 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분석이 등장했다.
논의 끝에 2002년 10월, 민주당 정범구 전 의원 외 22인이 생리대에 영세율을 적용시키는 내용의 ‘여성용 위생용품(생리대)에 대한 영세율안’을 발의했다. 당시 정 의원은 생리대는 모든 여성이 사용해야만 하는 필수품이라며 여성복리후생을 위하는 방향으로 법안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개정안 취지로 내세웠다.
그러나 영세율안은 2002년 정기국회의 법안심사소위회(이하 법안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후 전체회의를 거쳐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되어 법 체계와 형식에 대한 심사를 받고 본회의에 상정될수 있다. 입법 문턱에서 가로막힌 셈이었다. 재경부 관료들은 ‘분유’, ‘약’, ‘콘돔’ 등이 과세되고 있음을 근거로 해당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펼쳤다.
[1] 탐폰세 관련 정보는 출판 서적에 상세히 기술됩니다.
[2]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0011389
[3]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00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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