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운드 ~ 앞으로의 과제
2라운드: 부가세 면제안과 ‘전선’의 확대
영세율안이 가로막힌 후에도 생리대 면세를 위한 움직임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후 전체회의를 거쳐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되어 법 체계와 형식에 대한 심사를 받고 본회의에 상정될수 있다. 입법 문턱에서 가로막힌 셈이었다. 재경부 관료들은 ‘분유’, ‘약’, ‘콘돔’ 등이 과세되고 있음을 근거로 해당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펼쳤다.
그러나 생리대 면세를 위한 움직임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2002년이 공론화를 시작하는 해였다면, 이듬해에는 ‘유아용 기저귀’ 품목까지 논의 대상이 되었다. 90년대부터 출산율이 하락해 2001년 합계출산율이 1.30에 이르는 초저출산 시대를 맞이한 시대적 배경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관련 입법 시도가 재차 이루어졌다. 결국 2003년 7월 31일 한나라당 나오연 의원 외 여야 의원 23명은 국회에 생리대와 유아용 기저귀에 대한 부가세 면제를 요구하는 부가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제품 제조 및 유통 전반에 ‘영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이 아닌 10%의 부가가치세를 제외하고,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수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언론은 이를 생리대 부가세 면제 논란의 ‘2라운드’라고 지칭하며 관심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논쟁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오마이뉴스’의 박형아 기자는 재정경제부와 여성민우회에 접촉해 양 측의 의견을 정리했다. 우선, 재경부가 “생리대는 생활필수품은 맞으나, 면도기, 약품, 장난감, 고무장갑, 돋보기 안경 등 다른 생활필수품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는 입장을 펼쳤다. 민우회는 이에 대해 생리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모성권’과 관련해 보호되고, 지원해야 하는 문제이며, 생리대는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물품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또한,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이 생리대에 부가세를 부과한다’는 재경부 입장에 대해서는 ‘모성보호 관련 정책이 보다 잘 마련되어 있는 나라와 한국의 단순한 비교는 불가능하며, 한국이 다른 나라의 정책변화를 견인해낼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사회를 원활히 유지시키는 맥락 속에서 해당 이슈가 이해되야 함을 강력히 주장했다.[1]
다사다난한 법안 통과 과정
2003년 국회에 제출한 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의 전망은 지난해와는 달랐다. 대표발의자인 나오연 전 의원은 당시 국회 재경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재경부에 관한 심의 및 의결을 담당하고 있었다. 김정숙, 박근혜(전 대통령이 맞다), 이연숙 등 3인의 여성 국회의원도 발의자에 포함되어 있었으며,[2] 당시 환경부 장관은 전 한국여성민우회 회장이자 초대 여성부 장관을 역임했던 한명숙 전 총리였다. 이러한 맥락에 힘입어 생리대 면세에 대한 기대감은 커져갔다.
2003년 11월 17일 열린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는 해당 법안을 일부 수정해 가결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강봉균 전 의원은 “개별 품목에 대한 부가세 면제는 세율체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생리대(여성용 위생용품)에 대한 부가세 면제는 합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만, 유야용 위생용품인 기저귀에 대한 면제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소위원회에서 가결된 개정안은 이어지는 21일 재경위 전체회의를 마찰없이 통과했다. 이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개정안은 2003년 12월 22일, 재석의원 185인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민우회는 영세율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을 한계로 지적하면서도, “여성들의 경제적 부담이 연간 약 90억-150억 정도 줄어들게 되었”으며, 1인 당 비용으로 환산 시 미미하나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켜 사회를 유지하는 모성의 기초가 되는 생리를 긍정하고 드러내며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논평을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3] 개정안은 이듬해인 2004년 4월 1일부터 적용되었다. 더 이상 생리를 한다는 이유로 부가세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었다.
영세율 적용을 위하여
2000년 초반 전국 소비자 물가지수에 맞추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던 생리대 소비자 물가지수는 2003년 이후 한풀 꺾여 미세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6년을 기점으로 상승을 시작해 2010년대 중반 다시금 전국 총지수를 따라잡았다. 부가세가 면세된지 10여 년만의 일이었다. 전면적인 세금 폐지와 제조사 담합 철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제적인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임은 생리대 면세 관련 담론이 시작되었던 초기부터 예견되었다.
결국 생리대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생리대 원료공정 단계부터의 세금을 면제하는 영세율 적용이 필요하다. 또한, 2003년 당시 법안소위에서 좌절되어 이루어지지 못했던 기저귀에 대한 면세는 여전히 사회적 과제로 남아있다. ‘면세’ 대상이었던 생리대에 영세율을 적용하고, 적용 대상이 되는 품목을 확대하려는 법안은 김희선 전 열린우리당 의원,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 의해 수 차례 발의되었으나 표류 중이다.
[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37633
[2] 16대 국회 여성의원은 13명으로, 전체 당선자의 6%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였다.
[3] http://www.womenlink.or.kr/archives/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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