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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Oct 17. 2019

쮸와 나

엄마 사랑해

아기가 태어나고부터 매일 이마에 뽀뽀를 해 주거나, 귓가에 '사랑해'하고 속삭이곤 했다.

임신 중에 아이에게 주려고 일기를 한 권 썼는데, 그때 약속(?) 했던 것 중 하나가 사랑을 듬뿍 주겠다는 거였다. 사랑을 듬뿍 받아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아이는 자주 괴로워했다.

안아주려고 다가서면 뿌리치고 고개를 숙이거나, 도망쳤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항상 활짝 웃으며 안아주었다.


아이가 5살 때, 어린이집에서 발표회를 한 날이었다.

작은 소극장을 빌려서 차례대로 공연을 했는데, 무대복은 보호자가 갈아입혀서 기다렸다가 순서가 되면 무대 뒤편으로 보내야 했다.


무대의 오른편이 대기실이었고, 공연이 끝나면 왼편 끝으로 나오는데 앞서 공연한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자리를 잘도 찾아갔다. 객석이 어두웠기 때문에 공연이 끝난 후 자리를 찾는 아이들은 무척 시끄러웠다.

하필 대기실에 가까운 쪽으로 자리를 잡았던 나는 아이 공연이 끝나자마자 반대쪽으로 가야 했다.


무대 뒤편에서 객석으로 올라오는 아이를 보았는데, 같은 반 아이들이 어둠 속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자기 혼자 남자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친구들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아이는 딱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공포를 느낀 것처럼 울음을 터트리려는 순간, 나는 달려가 아이를 번쩍 안고서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하고 토닥거렸다. 아이는 곧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이 일을 계기로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음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전과는 다른 더 돈독한 신뢰감.


이후 아이는 종종 나에게 "엄마~ 귀여워~", "엄마~ 사랑해~", "엄마, 최고~" 하며 끌어안아주거나, 자기 볼을 내 볼에 지긋이 갖다 댈 때도 있다. 양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자기의 물건(빼앗기면 안 되는)을 나에게 맡기기도 한다.


이렇게 예쁘게 표현해 주는 아이에게 더 인정받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그동안 나는 어떤 의무감으로 일방적인 사랑을 주는 입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에게 사랑고백을 받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공천포에서 만난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

언젠가 날씨 좋던 날, 언니와 사촌, 나와 아이가 함께 공천포 바닷가에 놀러 갔었다.

자기 아이들과 먼저 와있던 여자분이 쮸에게 "이거 게야... 한 번 볼래?"하고 자꾸 말을 걸어오셨다. 

"아이가 자폐라 말을 잘 안 해요."

내가 멋쩍게 웃어 보였는데,

"안녕하세요? 주형이 어머니. 저 모르시겠죠..."

당황했었다.

"저 주형이 유치원 담임 보조였어요."

"아! 예! 안녕하세요?"

"주형이 많이 컸네요. 잘 지내셨죠?"

"예~ 잘 지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저 사실 주형이랑 어머니 때문에 학교 일 그만두었어요... 제주도에 아이들과 잘 지내보려고 내려왔는데, 이 일 하다 보니 저녁엔 피곤해서 우리 아이들한테는 화를 많이 냈거든요. 그런데, 주형이 데리러 오는 어머니는 매번 활짝 웃으시는 거예요. 아이도 생각보다 무척 밝았고요. 그래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부끄럽기도 했지만, 더없이 뿌듯하기도 했다.


유치원에서 공개수업을 한 날이었다. 주차에 시간이 좀 걸려서 10분 정도 늦었는데, 아이가 울었던 모양이다.

보호자 자리에 앉아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달려가느라), 수업시간 내내 아이가 은근슬쩍 뒤에 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마치 학창 시절 좋아하는 아이를 남몰래 보던 그런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아이의 사랑을 받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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