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all about ‘with whom’ not ‘where’
저렴한 물가, 이국적인 분위기에 크게 감명받고 첫 태국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그 해 여름방학에, 이번에는 은정과 함께 태국으로 향했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던 은정은 출국 전 날, 내일 만나는 곳이 김포공항이 맞냐고 물어온다. 그는 장난이 아니었다.
2017년 7월 5-6일
하지만 그는 용감했다. 비행기에 입국신고서를 두고 내려 긴장하는 나를 대신해 당당하게 공항경찰에게 새 종이를 요구해 받아온 그의 듬직한 모습을 보며, 공항을 채 나서기도 전에 그에게 의지하기 시작했다.
방콕의 한 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풀자 여행의 설렘에 간지러웠다. 첫날부터 은정은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여행을 가면 가장 예쁘고, 때로는 새 옷을 챙기기도 하는 “요즘 애들”과는 달리, 타국 여행은 그가 한국에서는 차마 입을 수조차 없었다는 옷들을 입을 기회였던 것이다. (물론 나도 짐 쌀 때 손에 잡히는 천 조각들을 모아 왔다.) 유쾌하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해가 진 후에 여행자들의 성지라고 불리며 카오산 로드로 나갔다. 이미 난 몇 번이고 지나친 거리지만 은정과 함께 걸어 볼 생각에 들뜬 마음이다. 하지만 그 들뜬 마음도 구름 떼 같은 인파만 보면 굳어지는 나의 본성을 이기지는 못했나 보다. 은정은 카오산 로드를 지날 때마다 내 표정은 그가 옆에서 수년간 봐 온 표정 중 단연 가장 무서웠지만, 그 구간을 벗어나기만 하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고 알려줬다.
호스텔 로비에서 쉬던 우리에게 한 한국인 청년이 말을 걸었다. 카오산로드로 나가기 전, 중국인들과 함께 둥그렇게 둘러앉아있었던 청년이었다. 그의 이름은 천성린(가명). 남다른 친화력을 자랑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세상을 사람이었다. 예술을 전공하는 그는 영어, 중국어를 할 줄 모름에도(근데 중국인들과 친목을 다지고 있었다니!) 모두의 친구인 그런 사람 말이다. 그가 전날 밤 카오산로드에서 찍었다며 보여준 사진들은 충격적이었는데, 모두 같은 구도로 찍힌 사진들의 왼쪽 구석에는 그의 얼굴이 고정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외국인들이 얼굴이 계속해서 바뀌는 사진들이었다.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선물용으로 꽃이 들어간 투명 립스틱을 사러 간다는 천성린과 함께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섰다. 그를 보내고 은정과 나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더운 날은 미술관이 최고다. 관람을 마치고 트립어드바이저의 조언에 따라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한 음식점에 들어섰다. 먹기도 전에 후각을 사로잡는 익숙한 지린내, 입 안에 넣는 순간 더욱 진하게 풍겨오는 그 풍미에 우리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의젓한 모습을 유지하던 은정은 무너져 내리며 정말 못 먹겠다는 말을 고장 난 장난감처럼 반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