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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Sep 16. 2020

(2) 태국 : 방콕

It’s not about the weather

2017년 7월 7일

천성린의 휴대전화 사진첩은 정말 인물사진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나의 감성이 깃든 풍경사진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소개해줬고, 그는 크게 감명받은 듯했다. 그저 예의가 바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도 수시로 멈춰서 풍경 사진을 찍기에 열중하는 그를 보고 참으로 진실된 사람임을 느꼈다. (훗날 나를 뛰어넘는 감성 동영상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의 대화는 걷잡을 수 없이 저질스럽고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성린은 좋은 사람이지만 우리의 대화에 끼워주기에는 조금 어렵겠다는 것은 우리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함께 (유명) 나이쏘이 갈비국수를 먹을 때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나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정말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화가 났냐고 묻는 성린의 말에 억울함과 동시에 인생 처음으로 표정을 개선할 필요성을 느낀다.

천성린과 헤어진 후, 나는 짜오프라야강을 건너는 통통배를 타러 갈 참이었다. 선뜻 같이 가겠다는 은정과 함께다. 유람선을 타고 싶은 마음도 여유도 없는 우리는 호객행위를 하는 아저씨들을 도도하게 지나쳐 5밧을 내고 페리보트에 올랐다. 사실 강 건너에 볼 일은 없었다. 그곳에는 큰 시장이 있었고, 그 뒤로는 놀라우리만치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시장도 구경하고, 빵집에서 빵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우기이기에 놀랍지도 않게, 순식간에 비가 내려 붓기 시작했다. 가게 앞 파라솔 밑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선착장에 갔으나 배가 없었고 웬 개 한 마리만 자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멀리서 반가운 페리보트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마침 선착장 주변에 명문 탐마삿 대학교가 위치해있으니 둘러보고 들어가자는 내 제안에 은정은 확실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를 보내고 대학가를 거닐다 다시 무섭게 내리는 비를 피해 한 카페에 들어갔다. 플레인 도넛 하나와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한참을 앉아있었지만 비는 그칠 기미가 없어 보이고, 이미 젖을 대로 젖은 터라 비를 맞으며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고, 튀어나온 보도블록에 발가락을 부딪힌 걸 제외하면 무사히 도착했다.

내 행색을 보고 흠칫 놀라며 안부를 묻는 호스텔 직원을 뒤로하고 샤워실로 직행했다. 깨끗하고 보송보송해진 것은 물론, 젖은 옷가지 빨래까지 마쳤는데도 은정의 행방이 묘연하다. 의아해하고 있는 찰나, 아까 전 나와 같은 행색의 은정이 호스텔 문을 열고 들어섰다. 호스텔 직원은 한 번 더 흠칫한다. 그는 나와 헤어진 직후, 호스텔로 돌아오려고 애썼지만 택시기사와 함께 길을 헤맸고, 헤매다 못해 직접 내려서 걸어왔다고 한다. 그렇다. 가끔은 멀리 돌아갈수록 더 빨리 도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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