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rry Sep 16. 2020

(5) 태국 : 치앙마이

numb

2017년 7월 10일

현재의 시점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치앙마이에서 뭐했어?’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다. 난 5개월 전 치앙마이에 방문한 이력이 있으며 크게 관광명소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리고 (맙소사) 은정은 관광에 연연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혹여나 우연이라도 관광지에 가게 될까 돌다리도 두드리며 조심조심 걷는 사람처럼 굴었기에 가능했다.

예를 들어, 이날 우리는 느지막이 구시가지 시내로 나왔고, 나는 무심코 지난겨울에 방문했던 한 카페가 괜찮았다며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이를 접수한 은정의 머릿속 치앙마이 카페는 이곳이 유일해지는 식이었다. 치앙마이에 머문 약 일주일의 시간 동안 은정과 나는 장댓비가 내리거나 말거나 그 카페에 출근도장을 찍었고, 서너 번째 방문부터는 직원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렇다. 은정은 우직하고 한결같은 인물이었다.

호스텔에서 빈둥, 카페에서 빈둥, 빈둥빈둥 대다가 저녁거리를 사서 호스텔 식탁에 자리 잡았다. 맥주의 빈자리를 느끼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맥주를 사고 신나 빠르게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와중, 은정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복숭아뼈 언저리에 못이 박힌 것 같은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재빨리 플래시를 켜 주변을 비춰보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끝끝내 답을 찾지 못해 찝찝한 마음을 달래며 호스텔로 돌아왔다. 노트북을 켜고, 맥주를 까고, 한 모금이나 마셨을까. 은정은 집중할 수 없어 보였다. 마비감이 느껴진다며 두 손을 앞에 내밀고 자신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이윽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정쩡하고 이상한 걸음걸이를 선보인다. 그의 주량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난 재차 술에 취한 게 아닌지 확인했고,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렸음에도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아니,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있었다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날이 저문 터라 가까운 응급실로 무작정 걸어갔다. 운이 좋게도 문은 열려있었고, 이에 더해 응급실의 당직 의사는 당장 닉쿤 대신 투피엠에 투입돼도 손색없을 정도의 미모, 그리고 직업으로 미루어보건대 부와 지성을 겸비했다고 유추되는 인물이었다. 은정은 그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고 다시 아까의 걸음걸이를 선보였다. (이제 상황의 심각성을 알겠는가.) 이 두 사람을 지켜보는 난 정말 행복했다.
 
진단: 무엇에 의한 공격이었는지 정확한 진단 불가
처방: 항생제
은정의 진단: 태국 독거미의 공격으로 인한 근육 마비 증상

별거 아닌 해프닝처럼 끝났지만 은정의 오른쪽 발목의 흉터는 정말 수년간 남아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