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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Sep 18. 2020

(7) 태국 : 치앙마이

lagom

2017년 7월 12일

마크마놉은 은정과 내가 살아온 나날을 합친 나날보다 더 오래 산 능구렁이로, 심리전에 능했다. ‘한 번만 더 하면 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말하겠어.’라는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히게 얌전하게 행동했고, 방심하고 있으면 빠르게 어깨를 주물렀다(squeeze). 그렇다고 우리가 당하고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은정과 나는 웃는 낯으로 마크마놉 면전에서 그에 대한 하드코어 한 앞담화를 주저하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앞담화에 어느 정도 속이 후련해졌던 건지, 마크마놉이 충분히 위협적이지 않았는지 우리는 해결책을 찾기보다 은정은 그가 나를, 나는 그가 은정을 더 좋아한다며 마크마놉이라는 시한폭탄을 서로에게 떠넘기기에 더 바빴다.

오전에 산책을 다녀와 호스텔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본 마크마놉은 우리라서 정말 저렴한 가격에 투어를 하게 해 주겠다며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아마 인원수를 채우려고 그랬을 것이다. 딱히 할 일도 없던 우리는 그렇게 치앙마이 그랜드 캐년에 가게 됐다.

미국 서부의 광활한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그랜드캐년. 웅대한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작은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비가 와 일부만 개장한, 치앙마이 그랜드캐년은 너무나 초라했다. 이곳은 7m 높이에서 절벽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고, 다이빙을 결심한 난 구명조끼를 입는다. 초조하게 은정과 함께 내 차례를 기다렸다. 줄이 줄어들지 않아 앞을 보니 겁먹은듯한 한 사람이 절벽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야단을 떨고 있었다. 뒷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눈치채고 옆으로 비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내 차례다. 겁이 났지만 그 사실은 나만의 비밀이다. 망설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었다. 하강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천천히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입수. ‘별거 아니군.’이라고 생각하며 은정에게 손을 흔들어 나의 무사함을 알린다. 그물 모양으로 엮어놓은 밧줄을 타고 힘겹게, 정말 힘겹게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갔다. 위에서 보니 편하게 걸어 올라올 수 있는 잘 닦인 길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올라오느라 진이 빠져 다이빙은 한 번으로 끝내기로 한다.

절벽 앞에서 고민하던 사람의 자주색 수영복은 끝끝내 기능성을 선보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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