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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Sep 20. 2020

(8) 태국 : 치앙마이

the king of fruits

2017년 7월 13일 

여행은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들인 나와 은정 사이에도 첨예한 갈등을 빚어냈다. 한번 여행을 와 본 사람으로서, 첫 해외여행을 하는 은정에게 무언가 더 좋은, 더 나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나의 욕심이 그  갈등의 발단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 싶은 은정과 달리 난 불러주는데 하나 없어도 눈 뜨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허나 밖에 나가서 크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삼십 분을 걸어 아침으로 죽 한 그릇을 먹고 돌아온다거나, 사원을 기웃거리며 주황색 옷을 입은 애기 승려들을 구경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래도 누워서 바라보는 호스텔 천장보다는 나을 거라는 섣부른 판단에 나는 은정을 다그치고는 꿈쩍하지 않는 은정을 보며 괴로워하곤 했다.

은정은 원하는 바가 확고했고, 오후 한 시 이전에 호스텔을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딱히 어찌할 방도가 없던 나는 그를 인정하고 오전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보내곤 했다. (마크마놉은 방 창문, 살랑이는 커튼 사이로 가만히 서서 은정을 훔쳐보다 걸리며 그도 오전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음을 알게 했다.)

어제 영국에서 온 남녀 무리 예닐곱 명이 호스텔에 체크인했고, 마크마놉은 이들의 투어 프로그램에 우리를 끼워 넣으려고 노력했다.

은정은 대나무같이 꼿꼿하다. 교통편이 없어 가지 못하는 외지,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까지 방문해 볼 수 있는 것에 더불어 우리에게만 적용된다는 특별 할인가에 넘어간 나와 달리 은정은 호스텔에 남겠다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다. 굳이 방까지 찾아와 은정을 설득하는 마크마놉에게 은정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자신은 발목을 가리키며. ‘I hurt my ankle.’라고 말한다. 그의 발목 언저리에는 며칠 전 벌레에 물린 상처가 있다. 말썽장이이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듯 마크마놉은 ‘으이구~’라는 표정으로 은정을 때리는 시늉을 한다.

트레킹 투어 아침. 차량 운전자에게 결제 영수증을 내놓는다는 걸 실수로 (마크마놉이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옆 옆 호스텔에 맡긴 빨래 확인증을 줘버렸다.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운전자, 즉 가이드는 마크마놉에게 그 종이를 건넸고, 마크마놉은 그 종이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과 함께 너희라면 빨래는 무료로 해줄 텐데 왜 자신에게 묻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속으로 앞으로는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후다닥 차에 올라탔다.

영국인 무리에 스페인 사람 두 명, 그리고 나. 혼자인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가이드는 나를 특별히 잘 챙겨줬다. 산길을 걷다가 5분에 한 번씩 ‘이 나무 앞에 서봐라.’라며 내 사진을 찍어주곤, 뒤돌아 그 사진을 나머지 사람에게 보여주며 ‘너희들도 찍을래?’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정중히 거절했다. 수치다. 나중에 사진을 확인하던 난 울먹이며 은정에게 사진 속 내 모습과 실제 내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받은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일명 ‘난쟁이 똥자루’ 사진이라고 명명된 그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크마놉은 우리가 눈에 보이면 말을 걸거나, 먹을걸 주곤 했다. 그가 준 전통과자를 두어 개 집어먹고 있으니 과일을 사러 야시장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평소 야시장을 가고 싶던 나는 그 제안은 뿌리칠 수 없었다. 신선한 두리안, 두리안의 기운을 상쇄시켜줄 망고스틴. 그 자리에서 껍질을 벗겨낸 두리안은 정말 천상의 맛이 맞았다. 흐뭇해하는 마크마놉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그런 맛이었다. 시간을 되돌린대도 그곳은 마크마놉과 함께라도 또다시 갈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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