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열린 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태생이 관종이다’
강원국 작가님의 이 말을 읽고 많이 찔렸습니다.
‘아! 나는 글을 통해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은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내숭을 떨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관심받고, 사랑받고, 주인공이 되고 싶었으면서 아닌 척, 연기하는 글을 쓰던 날들이 있었는데, 이 문장을 읽고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누구나 다 관종이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보여주는 작은 관심이나 애정이 싫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마다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음악을 통해서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도 있고, 사진을 찍어서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림 역시도 좋은 방법입니다.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것으로 자신을 알리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성비 면에서 가장 확실한 게 바로 글쓰기입니다. 글을 쓸 때는 별다른 재료도 필요 없습니다. 노트북 하나면 됩니다. 다른 것처럼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글쓰기가 최고의 무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미 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쓰면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저렴하고, 시간도 들지 않고, 진입 장벽도 낮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평한 문이 아니겠습니까.
글쓰기의 장벽이 워낙 낮다 보니 ‘개나 소나 책 내는 세상’이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세상엔 책을 낸 사람보다 못 낸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걸요? 게다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정작 책을 낸 사람들은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못 하는 걸 안 한다고 말하는 여우가 따로 없습니다.
그럼에도 물론 여전히 글쓰기가 어렵다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지나친 부담감이 있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사실 어떤 형태로든 이제껏 글을 쓰며 살아왔습니다. 직장에서는 보고서를 제출했을 것이오,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았고, 아기 엄마들은 어린이집에 알림장을 써서 보내기도 했을 겁니다. 그런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글짓기입니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라고 생각하면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멈칫거리게 되고 ‘글쓰기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오죽하면 백지 공포증이라는 말도 생길 정도라고 하죠.
글쓰기가 어려운 사람들이어도 누구나 말은 하고 살아갑니다. 사실 글과 말은 그 형태가 다를 뿐,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한다는 의미에서는 뿌리가 같습니다. 다만 글은 말을 할 때 사용되는 비언어적 요소 없이 순전히 문자로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합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일’이 말에서는 가능하지만 글에서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을 읽는 사람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이건 이 뜻이고, 그건 요 뜻이야’라고 알려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법’이라는 규칙이 더 강하게 적용될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담이 가고 어렵게 느껴지게 되는 거죠.
처음에 어떤 글을 어떻게 시작할지 모를 정도로 부담감이 크다면, 제일 먼저 편지 쓰기로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사실 글은 따지고 보면 일종의 말이고, 편지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말글’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편지는 딱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말하듯이 쓰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실제로 제가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일반적인 에세이에서는 그다지 잘 쓴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는데 편지글 형식의 글을 쓰자 굉장히 돋보이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체 자체가 부쩍 자유로워졌고, 이미 독자를 상정한 글쓰기였기 때문에 편지를 받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한 명의 독자를 둔 편지 쓰기를 통해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글쓰기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게다가 글쓰기는 진입도 쉽지만 성장도 쉽습니다. 피아노를 10년 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긴 쉽지 않겠지만, 글쓰기는 한 권의 책으로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차후에 본인이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기준이 높아지면서 글쓰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누구나 쉽게, 지금 당장 내 손에 쥘 수 있는 무기로 글쓰기만 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을 너무나 명백합니다. 세상이나 주변 사람이 거는 딴죽에 흔들리지 말고, 스스로를 불신하지 말고 당장 글쓰기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