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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아서 병난 여자 Oct 24. 2021

글을 쓰면 착해져요

  우리가 어린 시절에 썼던 일기를 생각해보면 대부분 ‘~해야겠다’로 끝나곤 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엄마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 어쩜 그렇게 각종 다양한 다짐을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딱히 끝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이런 ‘다짐형 마무리’를 쓴 것도 있지만, 그 마음이 거짓이 아닌 것 또한 확실합니다. 글을 쓰면 저절로 그런 마음이 들게 되거든요. 


  엄마가 된 다음에는 또 얼마나 숱한 다짐들을 했습니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대한 ‘육아’라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늘 낙제생이 되고 맙니다. 가장 잘 풀고 싶은 문제인데, 살면서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린 적이 없다 말입니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눈물로 얼룩진 일기를 쓰곤 했죠. 내일은, 부디 내일은 아이에게 화내지 말고 더 잘해줘야겠다는 그런 다짐이 적힌 일기 말입니다. 그렇게 매일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이런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은 글이 갖고 있는 논리적인 속성 때문입니다. 원래 ‘생각’이란 녀석은 뿌리도 없이 태어나 다리도 없이 멀리 가게 마련입니다. 생각으로는 모든 일이 다 말이 되거든요. 그래서 어느 한 생각에 깊이 함몰되어 있으면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서 오늘 아이 등원길에 평소 안면이 있는 동네 엄마를 만났습니다. 분명히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녀가 본 체 만 체 쌩~하니 지나가는 겁니다. 아. 인사를 무시당했을 때의 그 개떡같은 기분이란...! 그래서 그때부터 ‘왜 그녀가 내 인사를 무시했지?’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됩니다. ‘에이, 못 봤겠지’라고 애써 좋게 시작하지만, ‘설마? 그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못 봤을 리가? 분명히 봤어’로 바뀌고 나중에는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고민하다가 ‘원래 저렇게 네가지가 없는 사람’으로 결론내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생각이란 녀석이 이렇게 아무 방향으로나 잘 튄다니까요. 


  막상 그때의 일을 글로 적어둔다면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글을 쓰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라고 스스로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오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거죠.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니, ‘아. 다음엔 이래야겠다’라는 다짐으로 끝나는 일도 많아지는 겁니다. 


  후배 A에게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겼습니다. 너무 믿고 좋아하던 사람이었던만큼 그 배신감도 상당해서 며칠을,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날 지경이었습니다. A가 저에게 했던 모든 말들, 행동들을 곱씹고, 저에게 보낸 문자들을 몇 번씩 다시 읽으면서 그 안에 숨어있는 아주 작은 거짓말도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어찌나 기를 썼는지요. 


  생각 속에서 A는 완벽한 연기자, 가식적인 위선자, 거짓말쟁이에 배신자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이 나이 먹도록 세상 물정 모르고 착한 완벽한 피해자였죠. 누구에게든 일러바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이런 일이 있었어요. 세상엔 이리도 나쁜 년이 있네요!’ 그래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있단 말입니다. 글을 쓰면서 저는 A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가 내 생각처럼 그리 나쁜 년은 아니며, 며칠 밤을 잠 못 들게 했던 분노는 A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피해 의식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마주게 된 것입니다. 


  ‘A가 나에게 엄청나게 큰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 그게 거짓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걸 말하고 말고는 A에게 달린 일이지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이리 배신감을 느낄 일은 아니다, 아무리 그걸 거짓말이라고 여긴다 쳐도 A가 한 모든 말이 거짓말이라고 여길 하등의 이유는 없다’ 머릿 속에서는 마구 마구 뻗어나가던 막장 드라마 같던 생각들이 글로 쓰고 나니, 훨씬 더 현실적으로 정리가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글을 쓰면 이해의 폭이 넓어집니다. 타인 뿐만 아니라 나를 향한 이해까지도. 그래서 저는 말하는 겁니다. 글을 쓰면 착해진다고요. 게다가 읽는 사람마저 착해지게 만드는 것, 그것 역시 글이 가진 힘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설거지를 할 때면 꼭 생각나는 어느 글의 구절이 있습니다. 글을 쓴 사람도, 시인지 수필인지도 모르지만 특히나 투명한 컵을 씻을 때면 그 구절을 되뇌이곤 했습니다.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이라는 구절입니다. 족히 20년도 더 전에 읽은 글인데도 유리컵을 닦을 때마다 그 구절이 생각나면서 ‘내 마음도 깨끗하고 착하게 닦아야겠다’ 이런 조금은 교과서적인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를 향한 미움을 닦아내곤 했습니다. 물론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된 다음에는 ‘왜 컵을 물 한 번 마시고 개수대에 놓는 거냐’며 식구들을 향한 원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이죠. 


  오랜 세월, 너무 당연하게 직업으로 글을 쓰며 살아오다 보니, 정작 ‘글을 쓰면 뭔가 좋아요?’ 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곤 했습니다. 좋은데, 분명히 좋은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이제야 저는, 멋들어진 대답은 아니더라도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글을 쓰면 착해져요. 그 착한 마음이 나를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하게 하죠. 세상에 착한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덧) 지금 찾아 보니, 오랜 세월, 나를 조금은 착하게 만들었던 그 구절은 ‘냄비의 얼굴은 반짝인다(송유미)’라는 시다. 전체 구절은 ‘그러나 물만 마시고도 씻어두는 유리컵만도 못한 내 마음은 더럽혀지고 때묻어 무엇 하나 담을 수가 없다’ 이다. 다시 읽어본 시 전문이 또 한번,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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